나의 진상은 어떤 것일까?
한번 봤을 때는 잘 모른다. 두 번 보면 구면이 된다. 세 번은 봐야 확실히 인식된다. 하나의 상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좋은 이미지일 수도 있고 좋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은 만나서 이야기해 보아야 알 수 있다. 글로만 보아서는 알 수 없다. 백날 백번 화면상으로 접해도 그 사람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글로서 또는 사진으로서 이미지 포장작업 할 수 있다. 커피점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최소한 30분 정도 얘기하면 어느 정도 파악된다. 더 잘 알려면 차를 마셔야 한다. 커피는 리필이 되지 않기 때문에 30분 마시면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차를 마시면 무한리필이 된다. 차가 매개가 되어 30분 이야기할 것을 세 시간 동안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사람에게 어떤 이미지일까? 오로지 글로만 파악된다면 글의 내용에 따라 하나의 이미지가 형성될 수 있다. 종단에 매우 비판적 얘기를 썼을 때 반종단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한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반복됐을 때 이미지가 굳어질 것이다.
종종 이미지 깨는 작업을 한다. 오로지 글로만 접하는 사람, 오로지 화면으로만 접하는 사람에게 나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를 진상이라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진상은 어떤 것일까?
나는 한마디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흔히 말하는 자영업자이다. 일인사업자이기도 한다. 직원이 하나도 없는 원맨컴퍼니 사장인 것이다. 만나면 실망하기 쉽다. 글로만 접했을 때는 신비감을 갖게 될지 모른다. 블로그에 글만 썼을 때 그랬다.
그제 정평법회때 홍선생과 대화를 했다. 한 학번이 아래지만 친구와 다름없다. 얘기하다 보니 고등학교 친구가 친구였던 것이다. 고교친구는 한해 재수했기 때문에 홍선생과 친구가 된 것이다. 이럴 때 흔히 '꼬였다'라고 말한다.
홍선생은 블로그 글을 접했을 때 누구인지 무척 궁금했다고 한다.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필명으로만 썼기 때문일 것이다. 당연히 얼굴도 공개하지 않았다. 하는 일도 공개하지 않았다. 경전에 있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썼을 뿐이다.
홍선생은 82년도에 대불련 회장을 맡았다고 한다. 불교계에서 잔뼈가 굳은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모임에 참석해 보면 대학시절 대불련 모임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사람들이 많다. 학번이 일년만 앞서도 선배가 되고 일년이 늦으면 후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년만 앞서도 형 또는 형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나는 대불련 출신이 아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것은 2015년이다. 이전에는 블로그 활동만 했다. 필명으로 글만 쓴 것이다. 처음 재가불교 활동했을 때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재가불교계에 새로운 인물이 출현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로만 접하던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자주 만나면 식상하게 된다. 알 것 다 알게 되었을 때 더 이상 호기심도 신비감도 사라지게 된다.
2017년과 2018년 두 해 동안 종단 적폐청산 운동이 있었다. 2016년 광화문 촛불 영향이 크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시기와도 일치한다. 그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재가불교 활동가들과 불교지식인들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한번 참여하면 적극성을 보인다. 재가불교 활동도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종단 적폐청산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많은 글을 남겼다. 글을 모아서 '한국불교 백년대계'라는 제목으로 책을 만들었다.
재가불교 활동의 절정은 정평불 사무총장을 맡았을 때이다. 어느 날 모임에 나갔을 때 제안을 받았다. 아마도 적폐청산 운동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갑작스런 제안에 당황했다. 간절히 원하는 분위기에서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다만 하나 조건을 걸었다. 딱 2년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떤 일이든지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이는 아마도 개발 업무를 오랫동안 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해야 한다. 전자제품 개발하는 것은 더욱 더 그렇다.
개발할 때 선배사원에게 들은 말이 있다. "삼일 동안 쑤셔서 안나오면 그만 두어라. 방법이 잘못된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여기서 '쑤신다'라는 말은 '테스트한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해외영업당당은 1센트를 더 받기 위해 피말리는 협상을 하고, 엔지니어는 1디비(Db) 성능개선을 위해 밤샘 실험한다."라는 말이 있다.
개발자 출신 블로거이고 개발자 출신 재가불교활동가이다. 개발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어서일까 한번 글을 쓰면 끝장을 보고 만다. 오전 내내 글쓰기로 보내는 것도 하나의 완성된 글을 만들고자 하기 위함이다.
개발할 때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다. 개발자는 무한책임 지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제품은 자신의 작품과 같은 것이고 자신의 자식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개선하여 일류상품을 만들어야 함을 말한다. 이런 자세는 고스란히 글에 반영된다. 글을 쓰고 나면 날자와 함께 서명하기 때문이다.
글에 서명하는 것은 무한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글에 대해서 책임지는 것이다. 그래서 십년 전에 써 놓은 글에도 오류가 발견되면 수정한다. 한번 써 놓은 글은 버리지 않고 블로그에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평불 사무총장 2년 맡았을 때는 그야말로 올인했다. 이를 완전연소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재가불교 단체에서 처음 맡아 보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 무엇보다 이미지가 훼손될까봐 두려웠다.
글과 행위가 달랐을 때 실망할 수 있다. 매일 가르침을 근거로 글을 쓰는 입장에서 맡겨진 일에 태만 했을 때 하찮고 우습게 볼 것이다. 아마 지행합일이 안된 자로 여길 것이다. 말로만 떠드는 사람으로 인식할지 모른다. 비록 떠 맡겨진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사무총장직을 맡았다고 할지라도 한번 맡겨진 일에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쩌면 재가불교 활동에 있어서 진정한 데뷔전을 치룬 것인지 모른다.
정평불 사무총장 2년 동안 그야말로 연소하다시피 했다. 매달 한번 있는 정평법회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컸다. 사실상 총무역할이기 때문에 법회 준비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것을 다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총장직을 맡은 그해 2018년 10월 달에는 꿈에 그리던 108명의 유료회원이 달성되었다.
정평불 사무총장 맡으면서 많은 일을 했다. 매달 열리는 정평법회뿐만 아니라 정평포럼, 눈부처학교, 수련회, 적폐청산참가 모임 등 쉴새 없이 진행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은 서울로 가야 했다. 물론 이 모든 일은 무보수 자원봉사 형태로 한 것이다. 동시에 생업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시하게 여기는 금요니까야모임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참석하면 반드시 후기를 남겼다.
사무총장 2년 동안 노심초사했다. 그것은 모임에 대한 것이다. 모임은 모여야 성립되는 것이다. 법회도 포럼도 눈부처학교도 수련회도 모여야 모임이 된다. 모임을 갖게 하기 위해서 수많은 문자를 날리고 수많은 통화를 했다. 이에 적극 참여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냉담한 사람도 많았다. 그 과정에서 상처도 많이 받았다. 어떤 이는 노력하는 것이 안되 보였는지 일부러 시간 내서 참석해주기도 했다.
지금은 마음에 부담되는 직책을 맡고 있지 않다. 정평불 사무총장 2년 동안 완전연소 되어 버렸기 때문일까 다시 맡아서 하라고 하면 말라서 죽을 것 같다. 사람 모으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다. 더 힘든 것은 사람으로 인하여 상처받는 것이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이든지 누군가 하나 희생하는 사람이 있어야 돌아간다. 그런 역할을 2년 동안 수행했다. 이런 노고를 생각해서일까 정평불에서는 감사패를 증정했다. 정평불 창립되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어떤 일이든지 한번 맡으면 물불 가리지 않는다. 어쩌면 이미지 관리 때문인지 모른다. 매일 가르침에 근거한 글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지행합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라는 마음으로 한 것이고 또 욕먹지 않기 위해서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모든 활동과 모든 과정을 낱낱이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한권의 책으로 남겼다. 모두 76개 글을 모아서 '재가불교 활동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으로 책을 만든 것이다.
사람들 눈에 비친 나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글로 접한 사람들은 글로서 파악하려 할 것이다. 왜 그런가? 글은 그 사람의 얼굴이고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서는 한계가 있다. 이미지 포장 작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명으로 글만 썼을 때 가장 많이 질문받은 것이 있다. 그것은 "혹시 스님아닙니까?"와 "혹시 불교학자아닙니까?"라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깨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업을 밝히고 일상에 대한 이야기도 썼다. 또 재가불교 활동도 하면서 그릇된 이미지를 깨고자 했다.
한번 이미지가 형성되면 깨기 힘들다. 사람들은 가능하면 좋은 이미지를 주고자 한다. 에스엔에스에서 글이나 사진으로 자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때로 불리한 것도 쓸 줄 알아야 한다. 때로 성찰의 글도 올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도 한계가 있다.
사람은 만나 봐야 알 수 있다. 만나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해 보어야 알 수 있다. 그것도 여러번 만나야 한다.
최소한 세 번은 만나야 그 사람에 대해 조금 알 수 있다. 지행합일이 되는지 알려면 더 오래 만나야 알 수 있다. 그들에게 나는 어떤 이미지의 사람일까?
2021-11-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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