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약같은 십년환(十年丸)
좀처럼 병원에 가지 않는다. 왠만한 것은 참고 견딘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울 때 병원에 간다. 이빨이 아파 치과에 갔을 때 그랬다.
그때 주말에 이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통증관찰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주말내내 밀려 드는 통증에 관찰은커녕 하루빨리 지옥같은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뿐이었다. 월요일은 멀리 있고 통증은 초단위로 계속되었다. 지옥이 있다면 아마 이런 상황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살아 있는 지옥을 맛본 것이다.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 괴로움을 초래했다. 화살을 두 번 맞은 것이다. 육체적 고통이라는 화살은 어쩔 수 없지만 정신적 괴로움이라는 화살은 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빨통증에 장사 없는 것 같다. 제아무리 수행을 많이 했어도 강력한 육체적 화살을 맞으면 배겨나지 못하는 것 같다. 통증을 관찰하고자 했으나 통증에 지배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주말을 보냈다.
다음날 오전 일찍 치과로 달려 갔다. 결국 썩은 부위를 도려 내고 이빨을 씌었다. 또 하나의 인공 이빨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 치과에 가니 통증이 멈추었다는 사실이다. 병원과 의사의 위력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치과에서는 통증제압을 확실히 눈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다 보니 병원과 의사를 신뢰하게 되었다. 기록을 보니 십년이 넘었다. 유일하게 병원과 친한 케이스에 해당된다.
병원과 친하지 않다. 나이들수록 병원과 의사와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장수하려면 수시로 병원출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병에 들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어지간한 것은 참고 견딘다. 어제 복통도 그랬다.
어제 속이 좋지 않았다. 그제 과식한 것이 탈 난 것이다. 평소 소화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남보다 소화기관이 약한 것 같다. 그런 사실을 간과하고 건강에 대한 교만을 부린 것이다.
조금만 많이 먹어도 속이 불편하다. 봉지로 된 믹스커피를 마시면 탈 난다. 원두도 하루 두 잔 이상 마시면 좋지 않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은 된장국이다. 된장국을 진하게 끓여 먹으면 속이 편안함을 느낀다.
대체로 담백한 것이 좋다. 채식위주 식단은 부담 없다. 그러나 어떤 날 강력한 보상심리가 발동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자 한다. 그제 그랬다.
사람들은 몸에 조금만 있어도 병원에 가는 것 같다. 감기 걸려서 가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머리가 아파도 가고 기분이 나빠도 가는 것 같다.
병원에 가면 의사는 뭐라고 말할까? 일단 검사부터 받아 보자고 말할 것이다. 기계로 측정된 데이터 가지고 말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검사비용이 꽤 들어간다. 평소 근검절약하며 사는 사람도 의사의 한마디에는 고분고분한 것 같다.
대부분 병은 시간 지나면 낫는다. 이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시간이 약인 것이다. 지금 몸이 찌뿌둥하다고 하여 병원에 가면 검사비용이 들어갈 것이다. 병원도 이익을 내야 하는 영리기관이기 때문에 1% 가능성만 있어도 검사하자고 말할 것이다. 역시 1% 가능성만 있어도 수술하자고 말할 것이다. 결국 건강염려증은 병원의 재정에 기여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여간해서 병원에 가지 않는다. 이런 것은 자랑할 일이 아니다. 요즘과 같은 건강염려증 시대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공짜로 해주는 건강검진도 거부하니 더욱더 비난할 일이다.
왠만하면 참고 견딘다. 시간 지나면 저절로 낫는다. 편하게 휴식취하고 담백하게 먹고 하루밤 잘 자고 나면 그 다음날 거뜬한 경우가 많다. 병원비용을 절감한 것이 된다.
좀처럼 병원에 가지 않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몸의 항상성을 믿는다. 지금 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하루밤 자고 나면 복귀할 것이라는 믿음을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음식을 담백하게 먹고 욕심을 줄여야 한다. 몸과 마음을 청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몸에 탈이 났을 때 정상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한다면 자만을 없애야 한다. 병이 발생하는 것은 건강에 대한 교만이 생겨났을 때 그렇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뭇삶들은 건강한 시절에 건강의 교만이 있는데, 그 교만에 빠져 신체적으로 악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한다. 그가 그 사실을 관찰하면, 건강한 시절의 교만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버려지거나 약해진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질병에 종속되었으며 질병을 벗어날 수 없다.’라고 여자나 남자나 집에 있는 자나 출가한 자나 자주 관찰해야 한다.”(A5.57)
건강에 대한 교만이 있으면 막행막식할 것이다. 술 마시는 것이 대표적이다. 평소 위가 쇠붙이와 같이 튼튼한 사람이라면 매일 소주를 마실 것이다. 그만큼 건강이 받혀 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매에 장사 없다고 했다. 매일 마시는 소주에 언젠가 쇠붙이 같은 위도 뚫리고 말 것이다. 그래서 술 좋아하는 사람은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제 폭식한 것은 건강에 대한 교만도 있지만 시국에 대한 것도 있다. 시국이 내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그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폭식과 막식으로 나타났다. 담금주를 마셨다. 그 결과는 다음날 괴로움으로 나타났다.
어제 새벽 참회의 글을 올렸다. 이에 어느 페이스북친구가 인상적인 글을 남겼다. 그 페친은 "차라리 끓는 쇳물을 마실지언정 세세생생 술마시지 않으리라 확신하고 발원합니다."라고 써 놓았다. 이것이야말로 십바라밀에서 말하는 결정바라밀에 해당될 것이다.
자신과 약속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마음을 다 잡기 위해서 빠알리 경을 외우기로 했다. 십이연기와 관련된 '위방가숫따'(S12.2)를 말한다. 경을 외우는데 있어서도 대단한 결심을 필요로 한다. 결정바라밀이 되어야 무엇이든지 초월할 수 있다.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는 몸의 항상성 때문이라고 했다. 시간 지나면 복원되는 것을 말한다. 병원에 가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비약이다. 이것 하나만 있으면 든든하다. 속이 좋지 않을 때 위력을 발휘한다.
위가 좋지 않다. 대체로 소화기관이 약하다. 그러다 보니 과식하면 설사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스트레스 때문에 폭식하고 음주했을 때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 그럴 때 비상약이 있다. 바로 그것은 십년환(十年丸)이다. 나에게 십년환은 상비약이자 만병통치약과도 같다.
십년환을 안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올해 4월 서산 천장사 일요법회 모임에 참석했다가 얻은 것이다. 실로 수년만에 오랜만에 일요법회에 참석했었는데 그때 멤버들이 일부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새로 본 사람들도 있었다. 그 중에 한명은 서산시내에서 한약방을 하는 사람이었다.
한약방 하시는 분은 나이가 많다. 거의 80은 된 것 같다. 거동이 불편함에도 일요법회에 참석한 것이다. 아마 한의사 같다. 법우님은 선물로서 약통을 가져왔다. 오랜만에 와서 그런 것일까 그 약통이 내 손에까지 오게 되었다.
약은 환약으로 된 것이다. 동글동글한 것이 마치 정로환 알갱이 같다. 그러나 냄새는 나지 않는다. 속에 좋은 것이라고 했다. 이후 속이 좋지 않으면 정로환 먹는 것처럼 10-15알을 먹었다. 속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이런 일이 몇차례 반복되자 약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약통에 약이 거의 다 비워갔다. 약통에 전화번호가 써 있어서 구매하고자 전화를 걸었다. 지난 4월 그때 뵈었던 노령의 법우님이 전화를 직접 받았다. 약의 효과를 설명했다. 상비약으로 사용하고자 주문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본래는 와서 진단을 받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안양과 서산은 먼거리에 있다. 이런 어려움을 알았음인지 법우님은 약을 보내 주기로 했다.
약통을 모두 5개 구매했다. 한통에 만원이다. 생각보다 싸다. 약의 효과를 본 것으로 따진다면 배 이상 될 것 같다. 택배비를 포함하여 계좌이체 했다. 모두 스마트폰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마침내 그제 약이 도착했다. 나에게는 상비약이자 만병통치약이다. 왜 그런가? 나의 몸에 딱 맞기 때문이다. 설명문을 보니 "급체, 식체, 주체, 급성위염, 만성위염, 장염, 변비, 음주후 숙취에 효능이 매우 좋음"이라고 쓰여 있다. 나에게 딱 맞는 것이다. 특히 숙취에 효능이 좋다고 한다.
십년환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은 아니다. 서산 보광한약방에서 만든 것이다. 아마도 법우님의 비법과 노우하우가 담긴 약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인삼이 12% 들어가 있다.
속이 불편할 때 십년환을 먹는다. 한번에 10-15알 먹는다. 먹고 나면 속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나에게 된장국이 속치료제 이기도 하지만 알약으로 된 상비약이 하나 생겼다. 마치 탁발승이 진기약과 같은 필수품을 지니고 다니는 것처럼.
2021-11-1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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