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선원에 가서 앉아 있고 싶다
미얀마, 예전에는 버마라고 했다. 아웅산 테러 정도로 알고 있었던 미얀마였다. 이제는 아련한 추억의 나라가 되었다. 미얀마는 불교를 지키는 최후의 교두보로서 나라로 본다.
미얀마에 딱 한번 갔었다. 2018년 12월 31일 간 것이다. 담마마마까 국제선원에서 머물렀다. 보름동안 위빠사나 수행도 하고 선원투어도 하고 양곤 성지순례도 했다. 그때 미얀마 불교의 진수를 맛보았다. 확실히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코로나시기이다. 언제 다시 미얀마에 갈 수 있을까?
올해 들어 처음 정평법회가 열렸다. 1월 16일 오후 7시 줌으로 열렸다. 법사는 정기선 선생이다. 법회 주제는 ‘미얀마 불교의 수용과 전개’에 대한 것이다. 당초 ‘미얀마 사태의 상황과 전망’으로 발표되었으나 수정된 것 같다.
정기선 선생은 미얀마와 인연이 깊다. 처음 미얀마에 가게 된 것은 1990년이라고 했다. 4년 동안 현지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미얀마 승가대학 학장의 유발제자로 지내면서 미얀마 불교를 체험했다고 한다. 이후 미얀마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어서 미얀마 전문가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미얀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거의 무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미얀마가 군부통치로 인하여 오랫동안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말부터 미얀마붐이 일기 시작했다. 수행의 나라로서 미얀마를 말한다. 해마다 수천명의 출가와 재가의 사람들이 미얀마를 찾았다.
미얀마는 전세계적으로 수행의 메카나 다름없다. 해마다 건기가 시작되면 전세계에서 수많은 수행자들이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얀마 국제선원에는 외국에서 온 수행자들로 넘쳐 난다. 이렇게 미얀마는 전세계 사람들에게는 수행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정기선 선생은 미얀마의 역사부터 설명했다. 주로 불교와 관련된 역사를 말한다. 미리 배포된 PPT자료에 근거해서 설명했다. 그러나 말로 전달한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강연을 듣고 대담을 하는 것인 것 모른다.
미얀마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기원전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이는 수완나부미라는 지명이 말해 준다. 오늘날 양곤 동쪽에 있는 항구도시 타톤지역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서 테라와다 불교를 받아들여서 미얀마 중부는 물론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로 퍼졌다고 한다.
수완나부미는 금의 나라(金地國)라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미얀마에 가면 황금대탑을 자주 볼 수 있다. 양곤에 있는 쉐에다곤 대탑도 황금빛이다. 성지순례 하다 보면 어디에서나 파고다를 볼 수 있는데 모두 황금색이다. 마치 초기경전에서 베자얀따 궁전을 보는 것 같다.
“그 베자얀따 궁전에는 백개의 첨탑이 있고, 하나 하나의 첨탑에는 칠백 개씩의 누각이 있고, 하나하나의 누각에는 일곱선녀가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선녀에게는 일곱 하녀가 있습니다.” (M37)
미얀마 성지는 온통 황금색이다. 전각의 용머리 장식도 금색이고 파도도 금색이다. 응아타지 사원 창가에서 미얀마 시내를 바라보았을 때 맛지마니까야에서 본 베자얀따 궁전이 연상되었다. 경전에 묘사된 궁전은 이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얀마는 확실히 황금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미얀마 역사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현지 전문가로부터 직접 전달받으니 실감나는 것 같다.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이 있다. 그것은 미얀마와 스리랑카가 서로 수계작법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다. 인도양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어떻게 가능했을까?
스리랑카불교는 오늘날 테라와다불교의 종가집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아쇼카 대왕 당시 제3차 결집과 관련이 있다. 그때 당시 빠알리삼장이 완성되었는데 아쇼카 대왕은 전세계에 담마사절단을 파견했다. 무력에 의한 정복전쟁을 포기하고 그대신 담마에 의한 정복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를 담마위자야(Dhammavijaya)라고 한다
담마위자야는 담마의 승리를 뜻한다. 담마에 의한 세계정복을 말한다. 부처님의 담마야말로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쇼카는 전세계에 담마사절단(Dhamma dūta)를 파견했는데 그 중 하나가 스리랑카이다.
스리랑카와 미얀마는 테라와다 불교국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스리랑카는 교학의 나라로 알려져 있고, 미얀마는 수행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 실라 사야도는 다르게 말한다. 미얀마는 교학의 나라로도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말했을까? 이는 미얀마에서 두 차례의 결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얀마에서 영국식민지 시절인 19세기 후반에 5차결집이 있었다. 6차 결집은 독립후 1950년대에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미얀마 불교는 사실상 테라와다불교의 종주국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세계불교를 이끌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얀마는 수행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학의 나라이기도 하다.
미얀마와 스리랑카는 인도양을 사이에 두고 교류했다. 스리랑카에서 11세기에 계맥이 단절 되었을 때 미얀마에서 사절단을 파견하여 계맥을 전수해 준 것이다. 반대로 미얀마에서 계맥이 단절되었을 때 스리랑카에서는 11세기 후반에 사절단을 파견하여 마하비하라 작법으로 계맥을 전수해 주었다.
미얀마와 스리랑카는 계맥이 끊어졌을 때 서로 전수해 주었다. 그 결과 테라와다불교 계맥이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게 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테라와다불교 계맥이 전수되었다는 것이다.
1973년 태국율사들이 우리나라 와서 스님들에게 계맥을 전달해 주었다. 수계 받은 스님들의 면면을 보면 나중에 방장이 된 스님도 있고 심지어 종정이 된 스님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스님들은 이를 부끄러워하며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정기선 선생은 미얀마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 주어진 시간내에서 빠른 속도로 설명했다. 현대사에서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로힝야 사태와 최근 일어난 군부쿠데타 사건에 대한 것이다.
로힝야 사건에 대한 시각은 다양하다. 미얀마 밖에서는 미얀마를 비난한다. 군부를 비난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불교를 비난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일까 미얀마사람들은 대단히 억울해 하는 것 같다.
로힝야 사건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는 영국식민지 시절 역사와 관련이 있다. 이이제이식으로 관리하고자 한 것도 문제가 된다. 소수민족을 이용하여 다수의 버마족을 통제하고자 한 것이다.
영국인들은 로힝야족을 인도에서 미얀마로 이주시켰다. 이에 대하여 미얀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정기선 선생의 말에 답이 있다. 미얀마 사람들은 “우리국민이 아니다.”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문제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 문제까지 얽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로힝야 사태는 영국이 미얀마를 식민지배하면서 단초를 제공한 것이다. 그럼에도 전세계적으로 미얀마를 비난한다. 엄밀히 말하면 미얀마 군부를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미얀마불교를 비난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미얀마 사람들은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하여 담마마마까 창건주 혜송스님은 “미얀마 불교가 무너지면 세계불교가 무너집니다.”라고 말했다.
작년에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다. 2021년 2월 1일 일어난 것이다. 이에 세계가 경악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불행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되었다.
미얀마에서 시위로 죽은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1,459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미얀마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미얀마 군부는 독립운동의 전통이 있다. 이런 이유로 제3세계의 군부쿠데타와 맥을 달리 한다. 또한 미얀마가 오랜 세월 동안 군부통치를 해왔다고는 하지만 이는 사회주의 체제에 의한 군부통치였다. 이런 이유로 미얀마 사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미얀마사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일까? 대부분 전문가들은 답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군부문제 뿐만 아니라 소수민족 문제까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문제로 얽히고 설켜 있어서 아무리 해도 해법이 없다고 말한다.
미얀마는 마음의 고향과도 같다. 왜 마음의 고향인가? 그것은 불교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불교가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탁발의 전통이 살아 있는 것 하나만 보아도 그렇다.
불교는 불자들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부처님 당시 불교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미얀마불교야말로 마음의 고향과도 같다. 그래서 미얀마에 가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한다.
미얀마는 아직 때가 묻지 않았다. 선원순례와 성지순례로도 확인되었다. 이를 기록해 두었다. 위빠사나 수행기와 성지순례기에 대한 후기를 써서 블로그에 올렸다. 그리고 ‘수행의 나라 미얀마에서’라는 제목으로 390페이지 분량으로 한권의 책을 만들었다.
미얀마 사태에 대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미얀마가 빨리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미얀마 선원에 가서 앉아 있고 싶다. 언제 그럴 날이 올 수 있을까?
2022-01-1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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