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정진산행
다리가 뻐근하다. 엄동의 계절임에도 다리가 뻐근하게 걸었다. 꼭 한달만이다. 지난 1월 산행에 2월 산행을 한 것이다. 정의평화불교연대(정평불) 산행모임이다. 이름하여 ‘정진산행’이라고 한다. 이번 산행을 '스토리텔링이 있는 산행'이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왜 스토리텔링 산행인가? 가는 곳마다, 발길 닫는 곳마다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설일수도 있고 신화일수도 있다. 하나의 사건이 회자되었을 때 이야기는 후대로 내려 갈수록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된다. 몰라도 되지만 알면 좋은 것이다. 스토리텔러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연세대 정문에서 모였다. 산행 출발지가 연세대 정문인 것이다. 안산으로 해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산행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연세대 정문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가까운 것도 이유가 된다.
모두 8명 모였다. 늘 보던 얼굴들이 많다. 정평불 김광수 상임대표외 스토리텔러 최연 공동대표, 그리고 박태동, 김우헌, 정재호, 사기순 선생이 참여 했다. 몽골여인도 참석했다. 정재호 선생과 함께 온 것이다. 한몽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이라고 한다.
모임에 외국인이 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처음에는 외국인 인줄 몰랐다. 한국인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이 대체로 그렇다. 외모가 똑같다 보니 동질감이 있다. 일본인이나 중국인과는 확연히 다르다.
몽골여인은 한국말이 유창하다. 억양이 약간 어색하기는 하지만 한국말을 잘해서 한국사람이나 다름없다. 한국에서 12년째 살고 있다고 한다. 아들이 고려대를 나왔는데 지금은 몽골에서 일 하고 있다고 한다. 갑자기 모임이 글로벌화 된 듯하다.
스토리텔링은 연세대 정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한열 열사가 피를 흘린 곳에 동판으로 기념해 놓았기 때문이다. 동판에는 '이한열 피격현장'이라는 문구가 영문과 함께 표기되어 있다. 1987년 6월 9일의 일이다. 기성세대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1987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들어야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될 것이다.
일요일 오전 등산복을 입고 베낭을 맨 일단의 무리들이 백양로를 걸었다. 그런데 연세대에도 스토리가 많다는 것이다. 광혜원이 있는 역사적 유적지가 있고 이한열공원이 있다. 연세대 본관에 이르니 언더우드 동상이 있다. 언더우드라는 이름은 익숙하다.
고등학교에도 언더우드 동상이 있다. 혜화동에 있는 경신고등학교를 말한다. 그때 고1 때 1976년에 세워졌다. 학교 선생들은 이렇게 말했다. 연세대는 경신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심지어 연세대가 경신의 역사를 가져 가서 쓰고 있다고.
경신학교는 언더우드가 1886년에 세웠다. 배재학당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랜 역사이다. 고1 때 개교 9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했는데 그때 언더우드 동상 제막식도 있었다.
경신학교와 연세대는 같은 재단이다. 뿌리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당시 학교에서는 연세대가 경신에서 갈라져 나온 것임을 강조했다. 지금도 그러는지 알 수 없다.
연세대를 가로질러 봉원사에 도착했다. 불교인들은 절이 있으면 지나칠 수 없다. 봉원사에 스토리가 없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스토리가 있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있다. 놀랍게도 봉원사에는 추사의 글씨가 있었던 것이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오른 쪽에 전각이 하나 있다. 최연선생에 따르면 대원군과 인연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원군의 별장 아소정을 옮긴 것이다. 한옥은 해체해서 옮기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전각에는 추사의 글씨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청련시경(靑蓮詩境)' 현판이고 또 하나는 '산호벽루(珊瑚碧樓)' 현판이다. 이것이 어떻게 추사의 글씨인지 알 수 있을까? 현판에 '완당(阮堂)'이라는 글자가 작게 쓰여 있는 것이 증거가 된다.
아소정이 이전될 때 추사의 현판도 함께 이전되었다. 그렇다면 추사의 현판이 왜 아소정에 있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대원군이 추사의 제자였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추사의 현판 두 개가 봉원사에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은 누군가 알려 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다행히 ‘서울학교’와 ‘고을학교’ 교장을 지낸 바 있는 최연선생이 스토리텔링을 해 주어서 알게 되었다.
봉원사에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안산을 거쳐서 인왕산 정상에 이르는 코스이다. 이제 겨울도 끝물인 것 같다. 약간 쌀쌀하긴 하지만 등산하기에 딱 좋은 날씨이다. 서울 도심에 이와 같은 등산코스가 있다는 것은 서울시민들에게 축복일 것이다.
안산과 인왕산 사이에는 무악재가 있다. 무악재로 길이 끊어졌다. 그런데 2017년 연결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이를 '무악재 하늘다리'라고 한다. 일종의 생태다리이기도 하다. 동물이 지나가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하늘다리를 건너니 전망대가 있다. 서대문 형무소가 정면으로 보였다. 여기에서 한참 스토리텔링이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 이야기, 영천시장 이야기, 서대문 사거리의 난전 이야기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 몰라도 되는 것이지만 알면 좋은 것이다. 그리고 보면 서울은 어느 곳이나 역사 아닌 곳이 없고 전설 아닌 곳이 없다. 해골바위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인왕산에는 기괴한 형상의 바위가 많다. 바위에 커다란 구멍 난 것이 많은데 보통 해골바위라고 한다. 정식명칭은 선바위이다. 두 기의 선바위가 유명하다. 마치 삿갓을 쓴 형상을 말한다. 무학대사와 이성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선바위와 관련하여 조선왕조 개국 당시 갈등이 있었다고 한다. 선바위를 도성 안에 포함시키면 불교가 흥하게 될 것이라 하여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양도성은 선바위를 비켜 나서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서쪽 지역이 크게 약화된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무악재 너머 안산까지 포함하여 도성을 쌓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유교와 불교의 갈등에서 유교세력이 우세했음을 말한다.
인왕산은 무속신앙의 총본산과도 같다. 곳곳에 기도처가 있다. 바위 아래 제단이 있는 소박한 것들이다. 그러나 촛불을 켜거나 소음을 유발하는 기도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어느 기도처를 보니 암반에 사람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불상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영험 있는 장소처럼 보인다.
인왕산 정상에서 휴식시간을 가졌다. 치마바위 바로 위에 있어서 전망 좋은 곳이다. 가져온 음식과 음료를 나누었다. 그리고 발 아래 전개되는 서울 도심을 바라보았다.
경복궁도 발 아래 있고 청와대도 발 아래 있다. 저 멀리 도심의 빌딩도 발 아래 있다. 정상에 서니 세상이 발 아래 있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높은 사람 같았다.
한달만에 걸었다. 다리가 뻐근하게 걸었다. 한달동안 못한 운동을 하루 동안 다 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오늘 하루 승리자가 된 것 같다. 추위에 산행한 것이 첫번째 승리이다. 발 아래 세상을 바라보며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른 것이 두번째 승리이다. 그러나 우정 만한 것이 없다. 함께 걷고 함께 음식을 나누고 함께 대화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세번째 승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옥인동 시장에서 뒷풀이 하는 것으로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애써 힘들게 산행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이날 비용은 박태동 선생이 지불했다. 다음 3월 둘째주 일요일 산행은 남한산성이다.
2022-02-1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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