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오염된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 21. 08:01

오염된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또다시 새벽이다. 이번에는 세 시대이다. 사유하기 좋은 시간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 사람 잘못이 아니라고. 내가 그렇게 본 것일 뿐이라고.

남 탓하지 말라고 했다. 그사람이 그렇게 보이는 것은 나의 인식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왜 그런가? 그사람은 과거의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그사람이 아닐 수 있다.

요즘 사람 만날 일이 없다. 주로 온라인에서 만난다. 에스엔에스로 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카톡방과 페이스북이 대표적이다. 모두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것이라서 대면하는 것 못지않다. 또한편으로 간접적으로 사람을 접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셀럽들이다. 유명인들을 말한다.

인터넷으로 접한 사람들을 알면 얼마나 알까? 제한되고 한정된 정보가 제공되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사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한다.

그사람 이미지는 조작된 것일 수 있다. 그사람이 만든 것일 수 있고 내가 만든 것일 수 있다. 에스엔에스에서 불리한 것은 노출하지 않고 자랑만 늘어 놓았을 때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그사람은 왜 나에게 관심 보이지 않는 것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불쾌하다. 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한번쯤 '좋아요'추천 해 줄법만 한데 침묵한다. 과연 그사람에게 잘못이 있을까?

"
세상 만물이 감각적 욕망이 아니라
의도된 탐욕이 감각적 욕망이네.
세상에 참으로 그렇듯 갖가지가 있지만,
여기 슬기로운 님이 욕망을 이겨내네.”(S1.34)

게송에서는 의도된 탐욕이 문제라고 했다. 그사람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내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임에도 그사람 잘못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사람에게진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나의 마음이 문제이다. 그사람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나의 마음이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시인 수행승 방기사 존자가 새내기 수행승이었을 때 이렇게 고뇌했었다.

"
나는 감각적 욕망에 불타고 있고,
내 마음은 그 불에 삼켜졌네.
자 고따마의 제자여, 연민을 베풀어
탐욕을 끄는 법을 말해주소서.”(S8.4, Thag.1235)

어느 날 잘 차려 입은 여인들이 승원을 방문했다. 새내기 수행승은 이런 장면을 보고서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다. 경에서는 욕정이 일어났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새내기 수행승 방기사에게 욕정이 일어났다. 꽃단장한 여인의 잘못일까? 현명한 수행승은 이내 알아차렸다. 이에 "내게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서 욕정이 내 마음을 괴롭히는 것은 참으로 나에게 해롭다.”(S8.2)라고 본 것이다.

잘 차려 입고 꽃단장한 여인에게 잘못은 없다. 그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여인을 성적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저기 매혹적인 대상이 있을 때 그 대상이 욕망이 아니라, 그 대상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에 욕망이 일어남을 말한다.

꽃단장한 여인에게 욕정이 일어난 것은 자신의 마음이 감각적 욕망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오염된 마음으로 세상을 보니 여인을 볼 때 성적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각적 욕망이 생겨난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원인인가? 수행승들이여, 접촉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원인이다.”(A6.63)

부처님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는 요인에 대하여 접촉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말은 매우 타당하다. 세상은 접촉없이는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설한 세상은 육처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자신이 만든 세상임을 말한다. 눈이 있어서 대상을 보았을 때 접촉이 발생되는데 이때 시각의식이 생겨난다. 이를 삼사화합촉이라고 한다. 이렇게 세상은 접촉으로 부터 생겨난다.

부처님 가르침은 심오하다. 니까야를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방대한 니까야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마치 촘촘한 그물망 같다. 그만큼 부처님 가르침이 체계적이라는 말이다. 육처의 가르침도 그렇다.

세상이 삼사화합촉으로 부터 발생된다는 것은 놀라운 가르침이다. 이제까지 세상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갠지스강의 모래알 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그런데 삼사화합촉으로 세상이 생겨난다니!

부처님은 눈과 귀 등 육처에서 세상이 생겨난다고 했다. 그런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이라고 헸다. 세상이 생겨난다는 것은 괴로움이 생겨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런 괴로움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니다. 이는 내탓도 아니고 남탓도 아니라는 말이다.

매순간 대상을 접한다. 눈과 귀 등으로 감각적 대상을 접하는 것이다. 그때 마다 마음이 일어난다. 마음은 대상이 있어야 일어나기 때문이다. 삼사화합촉에 따라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결국 세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은 괴로움으로 가득찬 세상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은 왜 괴로운 것일까? 그것은 사람들이 탐, , 치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삼사화합촉에 따른 연기가 회전하는 순간 마치 브레이크없이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다. 그 끝은 어디일까? 절망이다.

십이연기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나수빠야사"라는 말이다. 자라마라낭, 즉 늙고 죽는 것에 대하여 슬픔, 비탄, 괴로움, 근심, 절망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순간 절망열차를 타고 있다. 괴로움이 끊임없이 일어날 뿐만 아니라 그 끝은 항상 절망이라는 것이다. 왜 절망인가?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재생하여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있고 쾌불쾌가 있다. 그사람은 잘못 없다. 나의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오염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온통 오염된 세상으로 보이는 것이다.

저기 사람이 있다. 매혹적인 이성이라면 성적대상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특히 혈기 왕성한 젊은 사람에게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탐, , 치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마음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대체 오염된 마음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부처님 가르침에 해법이 있다. 부처님은 망상이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벗들이여,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해서 시각의식이 생겨나고, 그 세 가지를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낀 것을 지각하고, 지각한 것을 사유하고, 사유한 것을 희론하고, 희론한 것을 토대로 과거, 미래, 현재에 걸쳐 시각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는 형상에서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이 일어납니다.”(M18)

맛지마니까야 꿀과자의 경에 실려 있는 가르침이다. 이는 빠빤짜(papañca)가 일어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희론 또는 망상을 말한다.

이성을 성적대상으로 보는 것은 망상이다. 망상이 생겨난 근본 원인은 접촉에 따른 것이다. 하필 거기서 그때 본 것이 발단된 것이다. 그런데 본 것으로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상을 보았을 때 마음이 일어난다. 마음은 대상이 있어야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상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한번 일어난 마음은 이후 어떻게 전개될까? 부처님은 연기가 회전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삼사화합촉에 따른 연기의 회전이다. 니까야에서는 팔지연기로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망상이 일어나는 과정은 이와 다르다. 느낌까지는 같지만 그 이후가 다른 것이다.

십이연기에서 느낌 다음에는 집착이다. 그러나 망상에서는 느낌다음에 산냐(지각)가 뒤따른다. 흔히 상()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연기의 회전과 망상의 회전은 느낌단계에서 갈린다.

망상은 실재하지 않는 것이다.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십이연기가 회전하여 존재가 되는 것과 다르다.

망상을 뜻하는 빠빤짜는 사유의 구조물이라는 뜻이다. 허공속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어떤 집인가? 이에 대해서 경에서는 "형상에서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M18)이라고 했다.

망상은 관념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실재하지 않음을 말한다. 마치 거북의 털과 같고 토끼의 뿔과 같다. 생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허공에 거대한 사유의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빠빤짜, 희론 또는 망상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망상이 생겨나는 원리를 밝혔다. 그것은 접촉에서 부터 시작된다. 최초에 창조주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최초에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접촉-느낌-지각-사유-희론(망상) 순으로 진행된다. 대부분 이렇게 살아간다.

느낌 단계에서 멈추어야 한다. 즐겁거나 괴로운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이다. 여기서 멈추지 못하면 호불호와 쾌불쾌가 생겨난다. 이에 과거 경험했던 오염된 기억과 결합되면 사유가 일어나고 망상으로 전개된다.

오염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온통 세상이 오염된 것으로 보인다. 대상에 대하여 욕망이 일어났을 때 마음이 욕망으로 오염된 것이다. 그래서 "세상 만물이 감각적 욕망이 아니다. (S1.34)라고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잘못 없다. 오염된 나의 마음에 잘못이 있다.

"
사람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사유의 탐욕이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저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이 아니네.
사람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은 사유의 탐욕이라,
세상에서의 아름다운 것들이 있는데,
현명한 사람은 그것에 대한 욕망을 제거하네.”(A6.63)

2022-01-2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