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매일 내면의 제사를

담마다사 이병욱 2022. 2. 15. 07:41

매일 내면의 제사를


하루 일과가 바쁘다. 정신적으로 바쁜 것이다. 어쩌면 일을 만드는 것인지 모른다. 우선 경 외우기에 바쁘다. 빠다나경(Sn3.2)을 말한다. 현재 여섯 게송을 외웠다. 모두 이십 오게송이니 아득하다. 그러나 수십번 되뇌이면 외워진다. 그것도 밤낮으로 해야 한다.

새벽에는 외웠으나 점심 때는 생각나지 않는다. 점심 때 다시 한번 외운다. 저녁에 확인하면 그제야 다 외워진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전에 외운 게송들을 확인해야 한다.

눈을 감고 첫 게송부터 암송한다. 눈을 감아야 로마자 알파벳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구게이므로 공간적 감각도 있어야 한다. 또한 스토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 게송의 줄거리를 떠 올려야 한다.

경 외우기는 이해 차원이 아니다. 읽어서 이해하는 것 이상이다. 기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새긴다고 보아야 한다. 뼈에 새기듯이 마음 속에 각인시켜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경 외우기 자체는 고행이 된다.

고행을 사서 하고 있다. 육체를 학대하는 것이 고행이라고 하지만 무의미한 그런 고행과는 다른 것이다. 경 외우기 고행은 일종의 수행이다. 사마타 마흔 가지 수행 중에서 불수념이나 법수념 같은 것이다. 부처님의 덕성과 담마의 덕성을 생각하며 경을 외우는 것은 내면적인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경 외우기에 이어서 요즘 하나 더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교정 작업이다. 자타카 교정을 말한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이번에 완역된 것이다. 출간을 앞두고 이차 교정작업 하고 있다. 일차에서 상당수 걸러 냈다고는 하지만 오자와 탈자가 종종 발견된다. 본문과 각주를 꼼꼼히 읽어 보지 않을 수 없다.

자타카를 읽다 보니 신심이 나는 것 같다. 특히 자타카 1권 수메다 존자의 서원에 대한 것이다. 수메다존자의 서원을 보면 입보리행론의 모티브가 된 것 같다. 다음과 같은 게송이다.

"
이 세상이 남아있고
중생들이 남아 있는 한,
저도 계속남아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몰아내게 하옵소서!”(입보리행론)

샨티데바의 입보리행론에 있는 게송이다. 이 서원을 보면 지옥중생이 모두 성불할 때까지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지장보살 서원도 연상된다. 이러한 서원은 우주적 스케일이다.

우주적 스케일의 서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아마 화엄경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화엄경 십지품을 보면 우주적 스케일의 열 가지 서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첫 번째는 "중생계가 다함이 있는 한, 다함이 있을 것이고"라는 구절이다. 이어서 세계, 허공계, 열반계 등으로 이어진다.

입보리행론과 화엄경 십지품을 보면 대승보살사상의 정수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상의 모티브가 자타카에 있다는 사실이다. 수메다의 서원을 말한다.

"
강건한 사람으로서
내가 혼자서 건너간들 무엇이랴?
일체지에 도달한 후에.
신들과 인간을 구원하리라.”(Jnd.66)

수메다존자가 디빵까라 부처님의 두 발 아래 엎드려 서원한 것이다. 자신 혼자 열반에 들기 보다는 열반을 유예하고 그대신 부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한 후에 완전한 열반에 들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살사상은 후기 대승불교 성립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흔적을 입보리행론과 화엄경 십지품에서 본다.

경 외우기도 바쁘고 자타카 교정작업에도 바쁘다. 일감이 있으면 모든 것을 중단하고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럴 경우 일에 바쁘게 될 것이다. 글 쓰기에도 바쁘다.

써야 할 글이 많다. 당장 책의 서문을 써야 한다. 이번 달 다섯 권 출간이 목표이다. 현재 세 권까지 서문을 써 놓았다. 나머지 두 권도 틈만 나면 써 놓아야 한다. 금요니까야모임 후기도 써야 한다. 2월 첫 번째 모임에서 경을 네 개가량 합송 했는데 이것도 빨리 써야 한다. 곧 다음 모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 외우기에 바쁘고 교정작업에 바쁘고 글 쓰기에 바쁘다. 이 중 가장 어려운 것은 어떤 것일까? 경 외우기가 가장 힘들다. 경 외우기는 차라리 고행에 가깝다.

마음을 집중하지 않으면 경을 외울 수 없다. 집중을 방해하는 것은 최대의 적이다. 술 같은 것이다. 음주하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남방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술마시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술 마신 상태에서는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가만 있으면 망상을 하게 되어 있다 자신도 모르게 대상에 가 있게 되는데 대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이다.

번뇌에서 해방되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나의 경우에는 경 외우기가 최상이다. 바로 이전에 외운 게송을 떠 올리는 것이다. 떠 올리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경을 외울 때 현재의 마음이 된다. 이는 다름아닌 집중된 마음이다. 마음이 집중되지 않고 서는 경을 외울 수 없다. 이때 눈을 감으면 좋다. 외부 자극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경행 하며 외우는 것도 좋다.

경을 외우면 늘 현재의 마음이 된다. 지나간 과거의 후회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걱정에서 해방된다. 번뇌에서 벗어나려 거든 경을 외워야 한다. 틈만 나면 외워야 한다. 매일 내면의 제사를 지내야 한다.

2022-02-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