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행선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이야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 31. 08:47

행선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이야


행선이 이렇게 재미 있을 줄 몰랐다. 오늘 새벽 행선에서 새삼 발견한 사실이다. 보통 6단계 행선을 하지만 3단계로 해 보았다. 발을 올리고 밀어서 놓는 동작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의도를 보고자 했다.

6
단계 행선을 하면 보아야 할 것이 많다. 각 단계별로 기억과 알아차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 보지 못한다. 그런데 2단계나 3단계 행선을 하면 한가지를 집중공략할 수 있다. 오늘 새벽 시도해 본 것은 의도찰라멸에 대한 것이다.

2
단계와 3단계 행선에서 의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것은 발을 뗄 때 보는 것이다. 발을 뗄 "발을 뗌"하는 의도와 함께 발이 떼진다. 이렇게 한발, 한발 옮기다 보면 의도가 보인다. 오로지 의도 하나만 보는 것이다.

초보자가 모든 것을 다 볼 수 없다. 의도와 행위와 느낌 세 가지를 6단계 행선에서 모두 보는 것은 쉽지 않다. 고도의 집중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지나치기 쉽다. 그런데 오로지 의도 하나만 보고자 한다면 가능하다. 발을 뗄 때, 떼기 전에 발을 떼고자 하는 의도를 보는 것이다.

발의 의도를 보자 행선이 재미 있어 졌다. 의도 대로 발이 착착 앞으로 나갔을 때 지루한 줄 몰랐다. 언제까지라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으로 찰라멸을 보았다. 발을 방바닥에서 뗄 때 ""하고 소리가 나는데 이를 찰라적으로 소멸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마치 두 손바닥을 마주하여 부딪치면 ""하고 소리가 나는 것과 같다.

박수칠 때 소리는 금방 사라진다. 소리가 났었다는 사실만 알게 된다. 조건이 맞아떨어져서 소리가 난 것이다. 두 손바닥을 부딪쳤기 때문에 난 것이고 이를 아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소리가 난 것이다. 마찬가지로 행선중에 발을 뗐을 때 ""하고 소리가 난 것 역시 조건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생겨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말이다. 소리가 난다는 것은 대표적인 생멸현상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실감나는 것이다. 왜 그런가? 없던 것이 생긴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긴 것은 가만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위빠사나 스승의 법문에 따르면 생겨나자 마자 곧바로 사라진다고 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에 대해서는 조건이 있지만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조건이 없다고 말한다. 그냥 사라진다는 것이다. 박수소리도 그렇고 발을 떼는 소리도 그렇다. 오온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그렇다.

"
물질은 포말과 같고
느낌은 물거품과 같네.
지각은 아자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고
의식은 환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셨네.”(S22.95)

물질은 포말을 내며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했다. 생겨날 때는 조건을 필요로 하지만 그냥사라지는 것이다. 오온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이 그렇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
아난다여, 느낌은 무상하고 조건지어지고 연기된 것으로 부서지고야 마는 것, 무너지고야 마는 것, 사라지고야 마는 것,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이 소멸하면 소멸이라고 말한다.”(S22.21)

오온에서 느낌에 대한 것이다. 이는 생멸에 대한 것이다. 여기서 생겨난 것은 조건에 따라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1)무상하고, 2)조건지어지고, 3)연기된 것”(S22.21)이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사라지는 데는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는 “1)부서지고야 마는 것, 2)무너지고야 마는 것, 3)사라지고야 마는 것, 4)소멸하고야 마는 것”(S22.21)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위빠사나 스승들은 생겨난 것에는 조건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그러나 사라지는 데는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모두 경전적 근거가 있는 말이다. 그래서 소멸할 때는 조건이 필요 없는 것이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
일출시의 이슬방울처럼, 물거품처럼, 물위에 그은 막대기의 흔적처럼, 송곳끝의 겨자씨처럼, 번개처럼, 잠시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나거나, 환술, 아지랑이, , 선화륜, 신기루, 파초 등으로 견실하지 않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Vism.20.104)

생겨난 것은 잠시 지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속시긴은 매우 짧다. 생겨났다가 곧바로 사라지는 것과 같다. 행선할 때 발을 ""하고 떼는 소리로도 확인된다.

오늘 새벽 행선하면서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는 의도를 본 것이고 또 하나는 찰라멸을 본 것이다. 그렇다고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경험으로 본 것이다.

행선을 하면 확실히 의도를 볼 수 있다. 발을 떼고자 할 때 발을 떼고자 하는 의도를 보는 것이다. 의도만 보았을 때 의도만 보이게 된다. 이를 확장시켜 볼 수 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의도를 보았을 때 어떤 일이 발생될까? 힘부로 살지 못할 것이다. 악한 의도가 생겼다면 악한 의도를 보게 될 것이다. 악한 행위를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의도와 함께 찰라멸을 보았다. 발을 뗄 때 ""하는 소리에서 찰라멸을 본 것이다. 소리는 생겨났다가 금방 사라진다. 아무리 찾으려해도 찾을 수 없다. 단지 기억에만 남아 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근심걱정으로 가득하다. 이 근심걱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생겨난 것에는 조건이 있다고 했다. 접촉에 의해서 발생된 것이다. 접촉을 조건으로 근심걱정이 생겨난 것이다.

생겨난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근심걱정은 왜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이는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쾌하고 괴로운 느낌이 발생되었을 때 이에 대하여 갈애를 하면 집착이 된다.

집착된 것은 떨어지지 않는다. 업으로서 존재를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십이연기와 고성제에 따르면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날 것이라고 했다.

지금 나에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일어났다면 대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된다. 대상은 오래 전에 사라졌음에도 마음의 잔상이 남아 있는 것과 같다. 마치 어느 사미 스님의 마음에 어느 여인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과 같다. 여인을 업고 물을 건넜으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지만 그 행위에 대한 느낌과 갈애와 집착이 남아 있다면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아마도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라는 괴로움일 것이다.

"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가을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질 때에 물거품이 생겨나고 사라지는데, 눈 있는 자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한다고 하자. 그가 그것에 대하여 보고 고요히 관찰하여 이치에 맞게 탐구하면, 비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공허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실체가 없는 것을 발견한다. 수행승들이여, 무엇이 실로 물거품의 실체일 수 있겠는가?”(S22.95)

비가 올 때 사라지는 것만 보이는 것 같다. 바닥을 때리며 포말과 함께 연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느낌도 이와 같다는 것이다. 느낌은 실체가 없다. 단지 그 순간 좋거나 싫은 느낌뿐이다. 그럼에도 느낌에 대한 갈애가 일어나면 집착하게 된다.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실체가 없는 것을 붙들고 있다. 그 결과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라는 괴로움의 5종 종합선물세트를 받게 되었다.

느낌은 지금 일어났다가 즉시 사라진다. 주석에 따르면 "손가락을 튕기는 찰나에 십만억(ko
isatasahassa)의 느낌이 생겨났다가 사라진다."(Srp.II.321)라고 했다. 그런데 조건에 따라 물거품이 생겨난느 것처럼 느낌도 감역-대상-번뇌-접촉에 의존해서 일어난다.”(Srp.II.321)라고 했다. 이와 같은 느낌은 물거품처럼 허무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좋고 싫어하는 느낌에 집착한다. 심지어 "죽어도 좋아!"라며 목숨까지 건다.

어떻게 해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근심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금강경 대미를 장식하는 게송처럼 "여여부동"해야 할 것이다. 망갈라경(Sn2.4)에서처럼 "세상사에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자신의 의도를 보고 찰라멸을 보는 것이다. 오늘 새벽 행선에서 의도와 찰라멸을 보았다.


2022-01-3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