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에서 건진 행운목 도자기화분
신입사원시절에 일본어를 배웠다. 80년대 딱 중간되는 해의 일이다. 전자회사였기 때문에 일본기술 의존도가 높았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면 반도체 데이터북을 보기도 힘들었고 일본기술서적도 보기 힘들었다. 이런 이유로 회사에서는 일본어 강좌를 개설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본어가 있다. 그것은 ‘호리다시모노’라는 말이다. 이 말은 중고품 가게나 고물상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발견했을 때를 지칭하는 말이다. 요즘말로 ‘득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쓰레기장에서 발견한 것은 무어라고 해야 할까?
오늘 오전 아파트단지 지하주자장 들어가는 길에 하나의 장면을 목격했다. 어떤 사람 둘이서 대형화분을 쓰레기장에 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장면을 목격하자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큰 것이 걸린 것이다.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 이사 가는 사람들이 종종 화분을 내 놓는 경우가 있다. 로비에 내놓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 가져가도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쓰레기장에 대형화분이 놓여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우리말에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이다.”라는 말이 있다. 대형화분 역시 먼저 가는 사람이 임자일 것이다. 버리려고 내 놓았기 때문에 그냥 가져 가도 되는 것이다. 이런 화분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대형화분은 길이가 85센티가 된다. 폭은 좁고 길이는 간 타입의 도자기로 되어 있는 화분이다. 이정도 가치 있는 것이라면 4-5만원 될 것이다. 식물매니아로서 식물을 오래 키워 보아서 알고 있다.
도자기 화분에는 행운목이 심어져 있다. 무엇보다 목대가 두텁다. 식물은 목대가 두터워야 한다. 그래야 잘 자라고 또한 오래 간다. 이는 경험이 있어서 아는 것이다.
2007년 사무실 입주할 때 화원에서 행운목을 하나 사왔다. 사무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목적도 있고 식물이 있으면 생명력도 있는 것 같아 사온 것이다. 행운목은 물만 주어도 잘 자랐다. 현재 15년된 행운목은 천정을 쳤다. 한번 커팅 해 주었음에도 일년도 되지 않아 또다시 천정에 닿은 것이다.
쓰레기장에서 주은 행운목은 오래 된 것 같다. 세 가지로 된 것인데 언젠가 가지를 쳐 준 것 같다. 지금 난 가지는 새로 난 것이다. 목대를 재 보니 23센티에 달한다. 이정도 목대이면 물만 주어도 잘 자랄 것이다.
중고품이나 재활용품 가게, 또는 고물상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를 때 뿌듯하다. 이럴 때 일본말로 ‘호리다시모노’라고 했다. 요즘말로는 ‘득템’이다. 쓰레기장에서 주운 것 역시 ‘득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공짜로 건진 득템이다.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그래서 공짜심리가 있는지 모른다. 싸게 사면 기분이 좋다. 더 좋은 것은 거저 가져 가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쓰레기장에서 가져온 것일지라도 내가 좋으면 좋은 것이다.
식물매니아로서 갖가지 식물을 키우고 있다. 일터에서 미화원을 보면 부탁을 한다. 이사 갈 때 화분을 로비에 놓고 간 것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몇 개 건진 적이 있다. 이번에는 쓰레기장에서 건졌다.
행운목화분은 길이가 길다. 사람 코까지 닿는다. 이를 사무실까지 옮겨야 한다. 대게 차의 조수석에 싣는다. 비스듬히 싣자 간신히 들어 갔다. 가지에 무리가 가기는 했지만 손상될 정도는 아니다.
행운목화분은 무게가 대단하다. 도자기 자체의 무게도 있지만 흙의 무게도 상당한 것 같다. 40키로 이상 될 것 같다. 차로 이운하여 마침내 사무실에 놓아 두었다. 이제 내것이 된 것이다.
한편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혹시 “내가 도둑질한 것 아니야?”라고. 도둑질이란 무엇일까? 오계에서 불투도(不偸盜)에 대한 것을 보면 정형구는 “주지 않는 것을 가져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도둑질임에 틀림없다. 설령 그것이 쓰레기장에 있다고 할지라도 누군가 주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불투도죄를 범한 것이다.
또 한편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쓰레기장에 있는 것들은 쓰레기차에 실려 폐기될 것이다. 폐기되고 부서질 운명에 처한 것을 살려 내어 가져왔다면 도둑질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주지 않은 것을 가져오긴 했지만 주인 없는 물건을 가져온 것이다. 아니 주인이 버린 것을 가져온 것이다.
도자기로 된 훌륭한 화분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필요가 없어서 버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필요로 한다. 설령 그것이 주지 않는 것일지라도 버린 것을 가져왔다면 죄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쓰레기장에서 버려지고 깨질 운명에 처한 행운목화분을 가져왔다. 비록 버림받은 행운목화분이지만 새주인을 만나서 잘 자란다면 행운목도 좋고 나도 좋은 것이다.
사무실은 북동향이라 햇볕이 잘 들지 않는다. 해가 길 때는 오전에 두세 시간 밖에 들지 않는다. 해가 짧을 때는 한두 시간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식물들은 잘 자란다. 특히 열대식물이 그렇다.
행운목화분을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두었다. 그리고 원예용 비료를 주었다. 알갱이로 된 것이다. 식물생육에 필요한 영양분을 골구루 갖춘 것이다. 화분 위에 수십알을 뿌렸다. 물을 주면 녹아서 내려 갈 것이다. 이렇게 해서 또 하나의 식물 식구가 생겼다.
2022-03-0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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