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연등은 최고 히트상품

담마다사 이병욱 2022. 4. 18. 07:51

연등은 최고 히트상품


부처님오신날이 머지 않았다. 3주 남았다. 오늘 일요일을 맞이하여 절에 가기로 했다. 관악산 불성사에 가기로 한 것이다.

불성사에 가려면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한다. 험준한 산을 넘어야 한다. 비산동 산림욕장 입구에서 부터 산행이 시작되는데 국기봉 가는 코스로 가야 한다.

이주일만에 산을 탔다. 일주일 전에 화분을 옮기다가 허리에 무리가 갔었다 이제 다 나았다. 운동도 할겸 등도 달겸 해서 불성사로 향해 갔다.

 


계곡길은 길고 지루하다. 오로지 오르막만 있다. 능선을 타면 오르막내리막하기 때문에 산행하는 맛이 나지만 계곡길은 오로지 오르기만 해서 마음의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산행할 때 대부분 정상으로 향한다. 불자들은 절로 향할 것이다. 불자들에게 산사는 마음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아무 절이나 가서 부처님에게 삼배하면 된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절에 가서 차라도 한잔 얻어 마시려면 등을 달아야 한다. 등 다는 것도 어쩌면 일종의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절은 신도들의 보시로 유지되는데 보시에 대한 답례로서 등을 달아 준다고도 볼 수 있다.

등을 달아주면 축원을 해준다. 예불시간에 이름과 주소를 불러 주면서 원하는 소원이 성취되도록 축원문을 낭송해 주는 것이다. 대개 가족일년등을 단다.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라.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우거진 숲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라.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늪지대가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라.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험준한 절벽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라. 그 길을 따라 잠깐만 가면 풍요로운 평원이 보인다.”(S22.84)


힘겹게 힘겹게 지팡이 의지하여 몇 번이나 가다 쉬었다를 반복했다. 마치 깔딱고개와 같은 최대 난코스는 그야말로 너덜길이다. 경에서 늪지대 같은 것이다. 깔딱고개는 절벽 같은 곳이다. 그러나 저 고개만 넘으면 극락과 같은 절이 있다. 경에서는 열반의 초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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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성사에 도착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늑한 절이다. 관악산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마치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곳에 전각이 있는데 불가사의하다. 집입로도 없는데 어떻게 520고지에 절을 지을 수 있을까?

 


유명 기도처는 특징이 있다. 절벽이나 동굴, 해안 등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잘 반영하는 것 같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접근하기 힘든 불성사도 좋은 기도처가 될 것이다. 불성사는 예로 부터 나한기도처로 잘 알려져 있다.

 


불성사는 작고 아담한 태고종 사찰이다. 전각은 세 개밖에 없다.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영산전이 전부이다. 종무소겸 요사체가 있는데 몹시 낡았다. 백년 이상 된 것이라고 한다. 부엌에 가보니 아궁이가 있다. 나무를 때서 밥을 짓는 것이다.

 


대웅전에서 구배했다. 보통 사람들은 한국식 오체투지로 삼배한다. 그러나 테라와다식 오체투지로 구배 했다.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구부려 이마가 바닥에 닿게 하는 것이다. 빠알리 예불하는 것처럼 속으로 "붓당사라낭갓차미"했다. 세 번째로 할 때는 "따띠양삐 붓당사라낭 갓차미"로 시작했다. 불상은 달라도 부처님은 같기 때문이다.

 


스님에게 차담을 요청했다. 평소 사찰순례할 때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등을 달고자 했으므로 자신 있게 말한 것이다. 과연 차담을 들어줄까?

차담이 이루어졌다. 스님이 차 대신에 커피를 가져왔다. 주지스님은 밖에 나가 있어서 부재중이다. 불성사에서 사는 스님과 법담했다. 자민스님이라고 한다.

 


자민스님과 불성사에 대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관악산에서 가장 오래 된 절이라고 한다. 대웅전 불사는 최근에 했다고 한다. 10년 불사해서 2000년에 완공된 것이다. 놀랍게도 헬기로 자재를 실어 날라 만든 것이다.

불성사 대웅전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주변 환경과도 조화롭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찰 순례 다녔지만 불성사처럼 아름답고 포근해 보이는 절은 없는 것 같다. 마침 봄이라 매화꽃이 희게 활짝 폈다.


"
예경하는 습관이 있고
항상 장로를 존경하는 자에게
네 가지 사실이 개선되니,
수명과 용모와 안락과 기력이다.”(Dhp.109)

 


가족등을 달았다. 꼬리표 발원문에는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길"이라고 했다. 법구경 109번 게송 에서 네 번째 구절이다. 이를 빠알리어로 "아유 반노 수캉 발랑(āyu vaṇṇo sukha bala)"이라고 하는데 부처님 당시부터 장로가 축원해 주는 말이다.

 


수명과 용모와 안락과 기력, 세상에 이것 보다 더 좋은 축원이 어디 있고, 세상에 이것 보다 더 좋은 발원이 어디 있을까? 이와 같은 연등 문구는 숙고 끝에 선정한 것이다. 등 달 때 항상 쓰는 발원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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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들은 절에 가면 연등을 단다. 단지 보시함에 넣는 것과 느낌이 다르다. 연등을 달면 무언가 뿌듯함이 있다. 소원이 성취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렇게 본다면 연등이야말로 절 집안에서 최고의 히트상품이 아닐까?

불성사에 처음 와 본 것은 2000년 전후인 것 같다. 이후 해마다 불성사에 왔다. 그러나 대웅전에서 조용히 삼배만 하고 갔다. 그러기를 20년 했다. 이번에는 달리하기로 했다. 연등을 달기로 한 것이다.

 


처음으로 불성사에 연등을 달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스님과 법담을 했다. 불성사 2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작은 절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닐까?

 


다음 번 불성사 갈 때는 쌀을 가져 가고자 한다. 진입도로가 없는 520고지에 절이 있기 때문에 사람 힘으로 쌀 등을 실어 나른다고 한다. 가장 반가운 것은 쌀이라고 한다. 6월말 보리똥 수확철이 될 때 배낭에 5키로짜리 쌀을 지고 갈까한다.


2022-04-1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