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땅끝 하늘끝 달마고도 도솔암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2. 6. 7. 08:08

땅끝 하늘끝 달마고도 도솔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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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흥사보다 백배 천배" 이 말은 앞서가던 사람에게 들은 것이다. 도솔암이 대흥사보다는 백배천배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대흥사가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교구본사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찰중의 하나인 대흥사는 볼 거리가 많다. 그럼에도 산꼭대기에 있는 도솔암이 더 낫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눈에 보이는 것만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보이지 않는 정신에 대한 것이라고 본다.

도솔암에 올랐다. 대흥사와 미황사를 거쳐 마지막 사찰순례코스로 도솔암을 택했다. 해남 달마산 달마고도 끝자락에 있다. 여기를 와보지 않고 지나쳤더라면 크게 후회할 뻔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남도순례 사흘째 날에는 꽤 바빴다. 딱히 정해진 일정은 없었다. 발길 닿는대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작은 경차를 타고 해남 이곳저곳을 찾았다. 지나고 나서 일정을 보니 대흥사, 대흥사입구 상가동에서 점심, 미황사, 도솔암, 송지해수욕장, 땅끝전망대, 땅끝, 그리고 방장산 국립휴양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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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9시 주작산 자연휴양림을 출발했다. 어디로 갈 것인가? 대흥사로 갈 것인지 미황사를 먼저 볼 것인지 고민했다. 대흥사가 더가까이 있어서 먼저 보기로 했다.

대흥사 가는 길은 평화로웠다. 차가 거의 없는 지방도로는 꽃길이고 꿈길과 같았다. 산천초목 산하대지는 온통 신록의 향연이다. 유월의 공기는 상큼하고 싱그러웠다. 선과 각의 번잡한 도시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쾌한 바위산이 병풍처럼,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두륜산이다.

 


차를 멈추고 종종 사진을 찍었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을 배경으로 멀리서 아득하게 보이는 바위산이 신비로웠다. 마치 중국에 있는 명산을 보는 것 같았다. 동양화에 나오는 산과도 같았다. 두륜산도 그랬고 달마산도 그랬다. 유럽의 명산이 좋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절에 가면 구경만 하고 온다. 스님을 만나서 차담이라도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는 스님이 없다. 스님이 있다고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하면 곤란할 것 같다. 특히 준비되지 않았을 때 그렇다.

스님을 만나 차라도 마신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한다. 절에 가면 보시를 해야 한다. 얻어 먹으려고 절에 가면 안된다. 승가는 재가의 보시에 의해서 유지되기 때문에 재가자가 능력껏 보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았을 때는 법당에 가서 참배만 하고 온다. 대흥사에서도 그랬다.

 


대흥사에는 볼거리가 많다. 대흥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찰중의 하나이다. 법주사,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마곡사, 선암사와 함께 7대사찰에 들어간다. 어쩌면 4대보궁 순례하듯이 7대 유네스코사찰 순례가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대흥사에 가면 일지암에 꼭 가봐야 한다. 바쁜 일정임에도 대웅전을 본 다음에 이삼십분 걸리는 일지암으로 향했다. 도중에 차의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초의선사 동상과 마주쳤다. 일지암에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더욱더 일지암에 가보고자 했다.

 


일지암 가는 길은 가파르다. 경차는 올라갈 수 없는 각도이다. 힘들게 올라간 일지암 대웅전에서 참배했다. 그리고 초의선사가 머물렀다는 초당을 보았다.

 


초당은 문자그대로 초가지붕으로 되어 있다. 초당에 기와가 있으면 멋이 없는 것 같다. 초당 앞에는 차나무도 있다.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다. 유월이어서일까 열매가 맺혀 있다. 차잎을 떼서 맛을 보았다. 약간 쓴 맛이다.

 


서둘러 대흥사를 떠났다. 점심도 먹어야 하고 다음 일정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찰이 너무 넓어 다 볼 수 없었다.

 


대흥사에서 연리근 본 것이 가장 인상에 남았다. 뿌리와 뿌리가 붙은 5백년된 느티나무를 말한다. 그래서 사랑나무라고 한다. 대웅전에서 야자수를 본 것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곳이 남쪽 땅끝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그러고 보니 이곳 나무들은 중부지역과 다르다. 잎파리가 두껍고 윤택하다. 확실히 남쪽지방에 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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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행선지는 미황사이다. 미황사는 큰 절이 아니다. 중간 사이즈 되는 절로 템플스테이 잘 하는 절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네비에서도 템플스테이 미황사로 소개 되어 있다.


미황사에서 크게 볼 것이 없었다. 대웅전을 해체하여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중이었기 때문이다. 2021 10월부터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만2년 후인 2023년에 완공될 것이라고 한다. 미황사를 서둘러 빠져나와 도솔암으로 향했다.

도솔암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해남에 가면 꼭 보아야할 곳 중의 하나로 도솔암을 꼽았다. 대체 어떤 절이기에 추천하는 것일까?

 


도솔암 가는 길도 평화로웠다. 저 멀리서 달마산 달마고도가 땅끝을 향해 달리는 모습이 장쾌해 보였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는 쾌청했다. 푸른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떠 있다. 더구나 바위산의 배경이 되었을 때 차를 정차하고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도솔암은 한폭의 동양화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힘들게 얻은 것은 소중하기 마련이다. 사찰순례도 그렇다. 차를 타고 절 입구까지 가면 맛이 떨어진다. 어느 정도 힘들게 걸어 올라가야 맛이 난다. 힘들게 올라 갔음에도 절 안에 차가 있는 것을 보면 허탈해진다. 또다른 자동차 길이 있었던 것이다.

도솔암은 오로지 걸어서 가야 한다. 차로 오를 수 있는 만큼 올라간 다움에 아주 작은 샛길로 가야 한다. 길이 아닌 길 같지만 가다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저 멀리서 보던 달마고도의 흰 바위가 바로 앞에 있기 때문이다.

 


도솔암 가는 길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달마고도 능선길에 절이 있는 것이다. 그것도 산꼭대기에 마치 새집처럼 생긴 전각이 하나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힘들게 애써서 이삼십분 걸어 온 보람을 느꼈다. 눈앞에 비현실적 광경이 펼쳐졌을 때 "대흥사보다 백배천배"라는 말이 나올 듯하다.

 


도솔암에 오기를 참 잘했다. 도솔암을 지나쳤더라면 이번 남도순례는 의미가 없었을 것 같았다. 도솔암이 사실상 땅끝이었기 때문이다.

 


도솔암 가는 길에 이정표를 보았다. 도솔암을 알리는 팻말을 보니 "땅끝 하늘끝 도솔암"이라고 씌여 있었다. 처음에는 이 말의 의미를 잘 몰랐다. 도솔암에 오르고 보니 이해가 갔다. 도솔암은 땅끝의 하늘끝에 있었던 것이다. 하늘이 시작되는 곳에 있기 때문에 하늘끝도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지 끝장을 보는 것 같다. 술을 마셔도 남은 술을 다 마셔야 일어서는 것과 같다. 일을 해도 마무리를 해야 일을 끝내는 것과 같다. 여행도 그런 것 같다. 차로 달리다 보면 끝까지 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남도여행에서 끝까지 가보기로 했다. 땅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해남 땅끝마을이다. 그러나 세상에 땅끝은 도처에 있다. 다만 심리적인 땅끝을 말할 때 해남 땅끝이라 하는 것이다.

땅끝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바다 밖에 없다. 바다를 보고자 땅끝에 가는 것일까? 대한민국 최남단 땅끝만 땅끝일까? 더 이상 갈 수 없다면 그곳이 땅끝이다.

땅끝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절망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바다에 이르렀을 때 절망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다에 들어가거나 다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그래서일까 해남 땅끝을 알리는 안내문을 보면 역설적으로 희망을 말한다. 땅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이고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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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에 가면 1번과 2번국도 기점 표지판이 있다. 안내판을 보니 1번과 2번 국도의 종착지이자 동시에 시작점이라고 써 놓았다. 이런 논리를 땅끝에도 적용할 수 있다. 땅끝은 절망의 땅이 아니라 새출발의 희망의 땅인 것이다.

언젠가 김지하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다. 이는 '모로 누운 돌부처'라는 자서전을 말한다. 인터넷 연재에서 본 것이다. 어느 해인가 김지하는 현실의 삶에 절망하여 땅끝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더 이상 갈 수 없었다고 한다. 땅끝에서 더 가면 어떻게 될까? 죽음이다.

김지하는 땅끝에서 발길을 돌렸다. 다시 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땅끝 사자봉에서 바다만 바라보고 여러해 살았다고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땅끝은 새로운 출발이고 새로운 희망이다. 마치 목포에서 남북으로 달리는 1번국도와 동서로 달리는 4번 국도의 출발지와 같은 것이다.

해남에는 땅끝도 있지만 하늘끝도 있다. 달마고도 끝자락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도솔암을 말한다. 마치 제비집처럼 생겼다. 왜 하늘끝이라고 했을까? 하늘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새가 되어 하늘을 난다면 하늘끝은 하늘의 시작이 된다. 그래서 도솔암을 "땅끝 하늘끝"이라고 했을것이다.

 


바다를 마주하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 끝까지 온 것이다. 인생의 끝자락에 이른 사람은 어디로 갈까? 죽음이다. 땅끝은 죽음을 상징한다. 절망에 이른 사람은 땅끝에 서있는 것과 같다.

사업하다 실패해서 땅끝에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연애에 실패해서 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현실정치에 절망해서 땅끝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풀 수 없는 난제를 가지고 땅끝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갖가지 사연을 가지고 땅끝을 찾는 것이다. 갈데까지 가보는 것이다. 그러나 바다 밖에 없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유명 기도처는 막다른 곳에 있다. 막다른 곳이란 바닷가, 절벽, 동굴, 산꼭대기를 말한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다. 한발만 더 나아가면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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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냐 사는냐" 생사의 기로에 놓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막다른 곳을 찾을지 모른다. 그런데 막다른 곳에 가면 기도처가 있다는 것이다. 바닷가 해안에는 관음도량이 있고 굴속에는 굴법당이 있다. 절벽에는 암자가 있다.

가장 극적인 기도처는 어디일까? 아마도 산꼭대기 절벽에 있는 암자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관악산 연주대가 대표적이다.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곳, 그것도 절벽에 기도처가 있다. 그런데 연주대보다 더한 곳에 기도처가 있다는 것이다. 그곳은 아마도 도솔암이 될 것 같다. 왜 그런가? 땅끝에 있기 때문이다. 땅끝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땅으로도 끝이고 하늘로도 끝이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운명에 절망한 자들이 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을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죽는다고 끝은 아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그런데 살아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막다른 곳에 가면 꼭 암자가 있는 것 같다.

도솔암에서 참배했다. 도솔암에는 미륵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니라 왜 미래부처님이 모셔져 있을까? 아마 그것은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 지금 절망하지만 미래에는 희망을 가져 볼 수 있음을 말한다.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처한 자들이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 것이다. 그런 곳에 부처님이 있다. 부처님을 만나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연쇄 살인자 앙굴리말라도 그랬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을 만나서 새사람이 되었다. 이는 맛지마니까야 86번 앙굴리말라경에서 "내가 고귀한 태어남으로 거듭난 이래"라는 말로 알 수 있다. 최악의 살인자는 부처님 법을 만나 성자로서 거듭 태어난 것이다. 극적인 반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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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흉적으로서
앙굴리말라라고 알려졌다.
커다란 폭류에 휩쓸렸으나
부처님께 안식처를 었었네."(M86)

예전에 흉악한 살인자였어도 부처님 법을 만나면 성자로 거듭 날 수 있다. 지금 절망하는 자도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면 희망의 메세지가 될 수 있다. 암자가 땅끝이나 해안, 절벽, 동굴에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땅끝 하늘끝은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고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도솔암 참배를 마치고 앞서 가던 사람은 "대흥사보다 백배천배"라고 했다. 그 사람은 어떤 희망을 보았을까?

방장산 휴양림에 날이 밝았다 새벽 3시 반부터 엄지로 치기 시작한 글이 현재시각 6시에 끝났다. 새벽 4시가 넘자 새들이 일제히 지저귀기 시작했다. 지금은 잠잠하다. 오늘은 34일 일정의 남도여행 마지막날이다. 백양사 등을 거쳐서 올라간다.


2022-06-0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