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잠자기 전에 성찰의 시간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5. 12. 14:33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잠자기 전에 성찰의 시간을


"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이 말은 부처님이 외동아들 라훌라를 가르치며 말한 것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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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라훌라여, 무릇 '고의로 거짓말을 하는 데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는 어떠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라도 못할 바가 없다.'라고 나는 말한다. 그러므로 라훌라여, '나는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새겨야 한다."(M61)

부처님이 이제 일곱 살 먹은 라훌라에게 한 말이다. 라훌라는 거짓말하는 것이 잘못인 줄 모르고 거짓말을 했다. 장난 삼아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런 것을 내버려 두면 어떻게 될까? 바늘도둑이 소도둑 될 것이다.

작은 거짓말이 큰 거짓말이 된다. 나중에는 거짓말이 거짓말인 줄도 모른다. 온통 거짓으로 살 때 어느 것이 그의 본 모습인지 알 수 없다. 양심을 팔아먹었을 때 그 결과는 어떤 것일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는 어떠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라도 못할 바가 없다."라고 했다.

군대 있을 때의 일이다. 훈련소 때 종종 단체로 기합 받았다. 양심불량 기합을 말한다. 누군가 조교를 속인 것이다. 조교에게 발각 되었을 때 소대원 전부가 "양심불량, 양심불량,..."하며 얼차려를 받았다.

부처님은 일곱살 라훌라가 거짓말 하며 돌아 다녔을 때 하나의 퍼포먼스를 했다. 발 씻을 물을 엎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서는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에게 수행자의 덕성은 이와 같이 뒤집혀 진다."(M61)라고 말했다.

무엇이든지 한번 하기가 어렵다. 한번 하고 나면 두 번째부터는 쉽다. 거짓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에는 양심의 가책을 받지만 자꾸 하면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도둑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살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음행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계를 어기는 자는 계속 어기게 된다. 살인도 해 본 자가 한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자는 계속 자신을 속이게 되어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는 창피함도 모른다. 여기서 부끄러움은 내면에 대한 것이고 창피함은 타인에 대한 것이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창피함도 모르는 자를 무어라고 불러야 할까?

부처님은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에 대하여 "세상을 지탱하는 두 개의 기둥과 같다."라고 했다. 일주문을 연상하면 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창피함을 모르는 사회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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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수호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수호할 수 없다면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선생의 부인이나 스승의 부인이라고 시설할 수 없을 것이고, 세상은 염소, , , 돼지, , 승냥이처럼 혼란에 빠질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두 가지 밝은 원리가 세상을 수호하므로,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선생의 부인이나 스승의 부인이다라고 시설하는 것이다.” (It.36, A2.8)

부끄러움(양심)과 창피함(수치심)이 없는 세상은 한마디로 짐승의 세계나 다름없다. 개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근친상간도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나 이모나 외숙모나 선생의 부인이나 스승의 부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초기경전에서 종종 부끄러움과 창피함이라는 말을 접한다. 이는 부처님이 강조하신 말이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일까? 일곱 가지 성스런 정신적 재물에도 들어간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일곱 가지 재물이 있다. 일곱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믿음의 재물, 계행의 재물,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재물, 배움의 재물, 보시의 재물, 지혜의 재물이 있다.”(A7.6)라고 말했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믿음, 계행, 배움, 보시, 지혜와 함께 동급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은 칠성재뿐만 아니라 고귀한 제자의 일곱 가지 성품에도 들어간다. 맛지마니까야 학인의 경’(M52)에 따르면, 일곱 가지 성품은 믿음, 부끄러움, 창피함, 배움, 노력, 새김, 지혜를 말한다. 이것이 수행자의 덕성이다.

일곱 가지 성스런 재물과 일곱 가지 고귀한 제자의 성품과 공통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믿음, 부끄러움, 창피함, 지혜 이렇게 네 가지이다. 이 중에서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아는 것은 세상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라훌라를 가르칠 때 성찰(paccavekkhana)하라고 했다. 어떻게 성찰하는가? 부처님은 "그렇다. 라훌라여, 성찰하고 또 성철한 뒤에 신체적으로 행위하고, 성찰하고 또 성철한 뒤에 언어적으로 행위하고, 성찰하고 또 성찰한 뒤에 정신적으로 행위해야 한다."(M61)라고 했다.

에스엔에스에서 어느 스님은 '살펴라'라는 말을 자주 쓴다. 더 좋은 말은 성찰이다. 반성하고 살피는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성찰하고 또 성찰하라고 했다. 그것도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찰하라고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행위 하고자 할 때 성찰해야 하고, 행위 할 때 성찰해야 하고, 행위가 끝났을 때 성찰하라고 했다.

성찰에 관하여 신, , 3업으로 성찰하고 또 단계별로 3번 성찰하라고 했다. 또한 선행과 악행에 대해서 3번 성찰하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총 27번 성찰이 이루어진다. 특히 행위를 끝냈을 때 성찰하는 것에 대하여 "스승이나 현명한 동료 수행자에게 드러내서 보이고 고백해야 한다."(M61)라고 말했다. 이는 자자와 포살을 연상케 한다.

나는 성찰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과거를 돌아보면 그렇게 살지 않은 것 같다. 어렸을 적에 그렇게 조금 살았는지 모른다. 아버지가 말씀하시기를 "저녁에 잘 때 오늘 했던 일을 돌아봐라."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주 짧게 잠시뿐이었다. 이후 어떤 성찰도 없이 오늘날까지 살았다. 그런데 부처님은 라훌라를 가르치면서 무려 27번 성찰하라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좋은 남편일까? 나는 자식에게 좋은 아빠일까? 나는 도반에게 좋은 동료일까? 나는 고객에게 좋은 협력자일까? 이런 질문을 한적이 없는 것 같다. 성찰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행위를 할 때마다 성찰하라고 했다.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성찰하라고 했다.

거울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부처님이 라훌라에게 거울의 쓰임새에 대해서 물었다. 라훌라는 "세존이시여, 성찰을 쓰임새로 갖고 있습니다."(M61)라고 말했다.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자신을 비추어 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비추어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내면의 모습은 거울로 볼 수 없다. 내면을 비추어 보는 거울은 없을까? 자신을 보려면 타인을 통해서 보아야 한다. 타인의 평가는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과 같다. 그러나 성찰을 하면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볼 수 있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성찰이라고 본다. 실수한 것이나 잘못한 것도 글로 표현한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없는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자식이 읽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읽어 보아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성찰의 삶을 살아야 한다. 성찰은 마음을 비추어 보는 거울과 같다.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잠자기 전에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2022-05-1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