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경전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5. 28. 20:31

경전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을 때

어떤 모임에서 들었다. 그는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학계의 권위자이다. 그는 지위도 있고 타이틀도 있다. 더구나 오피니언리더이기도 하다. 그는 권위가 있기 때문에 말을 하면 먹혀 들어갈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수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수행하는 것을 비난한다는 말이다. 이런 말도 있다. 경전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경전을 비난한다는 말이다.

이런 것이다. 초기경전을 보면 신통에 대한 이야기가 무수하게 나오는데 오로지 자신의 눈으로 본 것만 믿고 오로지 과학적으로 검증가능한 것만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에게 신통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황당한 것으로 판타지 소설 쯤으로 여길 것이다.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디. "내 눈 앞에서 보여 줘, 그러면 믿을께."라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먼저 선정을 닦아봐. 네 번째 선정에서 신통을 체험해 보고 말해봐!"라고 되물을 수 있다.

머리맡에 맛지마니까야가 있다. 머리맡에 있어서 수시로 열어 본다. 소설 읽듯이 처음부터 보고 있다. 각주까지 꼼꼼히 읽어 본다. 새겨야 할 구절은 칠을 해 둔다. 그런데 경을 읽다 보면 초월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이다. 신통은 기본이다. 여기에 천상에 대한 이야기, 전생에 대한 이야기, 윤회에 대한 이야기 등 초월적 이야기가 무수하게 등장한다. 과연 그 권위자는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권위자는 초기경전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신통 등 초월적인 이야기가 있는 경은 배제 했을 것이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전생이나 내생, 윤회에 대한 이야기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이것 빼고 저것 빼고 나면 몇 개 되지 않을 것이다. 그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은 믿지 않겠다고 했을 때 이는 "경전을 읽어 보지 않은 자가 경전을 비난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해 보지 않은 자가 해보지 않은 것을 비난 하는 경우가 많다. 위빠사나 수행을 해보지 않은 자가 위빠사나 수행을 비난 하는 경우도 있다. 경전을 보지 않은 자가 비과학적이라며 경전에 있는 말을 부정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신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경전적 근거를 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경전에 없는 말이라는 사실이다.

권위자는 어느 종교 전통에서 외전으로 전해져 오는 것을 자신의 이론을 합리화 하기 위해서 근거로 삼았다. 놀랍게도 부처님 가르침과 정반대 되는 내용이다. 그가 초기경전을 읽어 보았다면 그런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초월적인 이야기에 대해서는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는 경전에 없는 것을 인용한다. 그결과 가르침이 심하게 왜곡되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분노해야 할까?

어느 경우에서든지 분노하지 않는다. 다만 연민할 뿐이다. 가르침을 몰라서 구업을 지었을 때 그 인과의 엄중함에 연민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했다.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너 자신의 무지함을 알라."라는 말이라고 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때 거꾸로 행할 수 있다. 세상을 바꾸려거든 먼저 자신부터 바꾸어야 한다.

좀더 겸손할 필요가 있다. 자만이 그 사람을 죽인다. 지식인에게 이득과 명예와 칭송이 생겨났을 때 그 사람을 죽인다. 경전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했을 때 그 사람을 죽인다. 부처님은 그런 말을 한적 없다.

"어리석은 자에게 지식이 생겨난다.
오직 그의 불익을 위해서
그것이 그 어리석은 자의 행운을 부수고
그의 머리를 떨어 뜨린다.”(Dhp.72)

2022-05-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