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사랑도 미움도

담마다사 이병욱 2022. 6. 8. 06:28

사랑도 미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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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남도 가족여행을 다녀 왔다. 공휴일을 끼고 평일날 하루를 더한 것이다. 마치 해외여행 하듯 긴 국내여행을 한 것이다.

일정이 길어서 맛지마니까야를 가져 갔다. 머리맡에 놓고 보는 맛지마니까야를 말한다. 그러나 몇페이지 읽어 보지 못했다. 머리맡에 놓고 틈나는 대로 읽어 보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귀가해서 맛지마니까야를 읽었다. 차례대로 읽다 보니 87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난 것에 대한 경'을 읽게 되었다. 긴 제목이다. 빠알리어로는 삐야자띠까숫따(piyajatikasutta)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 아픔도 클 것이다. 슬픔, 비탄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경에서는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일어나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사랑하는 사람들로 부터 생겨난다."(M87)라고 했다.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 이 다섯 단어는 초기경전에 무수히 등장한다. 이 다섯 단어는 초기경전에서 복합어로 사용되는데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Sokaparidevadukkhadomanassup
āyāsā)로 표현된다. 무려 다섯 단어가 합쳐졌다. 슬픔(soka), 비탄(parideva), 고통(dukkha), 근심(domanassa), 절망(upāyāsā)이 합쳐져서 긴 복합어가 된 것이다.

소까빠리데와둑카도마낫수빠야사는 십이연기에서도 발견되고 사성제에서도 발견된다. 연기가 회전되면 필연적으로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으로 끝난다. 이것은 다름아닌 괴로움이다. 그래서인지 고성제에서도 그대로 쓰인다.

어느 장자가 있었다. 외아들이 죽었다. 장자는 "내 외아들아, 어디 있느냐? 내 외아들아, 어디 있느냐?"(M87)라며 비통하게 울었다. 장자는 부처님을 찾아 갔다. 그러자 부처님은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장자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세상사람들은 부처님 말씀과 반대로 살아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장자는 부처님으로부터 위로의 말을 듣고자 했으나 전혀 위로 받지 못했다. 장자는 "환희외 쾌락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일어나고, 환희와 쾌락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난다."(M87)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환희와 쾌락을 준다. 이것은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은 정반대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괴로움이 생겨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누구 말이 맞을까?

부처님에게 위안의 말을 듣지 못한 장자는 도박꾼을 찾아 갔다. 하필이면 왜 도박꾼을 찾아 갔을까? 근처에 도박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자는 부처님에게 들은 이야기와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를 도박꾼에게 말해 주었다. 도박꾼은 "장자여, 그렇습니다."라며 두 번 말했다. 이어서 "환희와 쾌락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겨난다."(M87)라며 추인해 주었다. 장자의 생각이 맞음을 인정해 준 것이다.

에스엔에스에서는 공감을 특징으로 한다. 공감이 많고 댓글이 많으면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 것 같다.

에스엔에스에서 비판을 자제한다. 그럼에도 정법이 아닌 것을 정법이라고 주장한다면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표나지 않게 비판한다.

비판 당하는 사람의 글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경전을 근거로 주장하면 인정할 것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주장한다면 그 사람의 견해일 뿐이다. 그럼에도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추종자이기 쉽다. 그래서일까 "맞습니다. 공감합니다."라며 추인해 준다. 마치 87번 경에서 도박꾼이 장자의 말을 추인하는 것과 같다.

장자는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았다. 장자는 부처님 말씀을 비웃었다. 장자는 도박꾼 말에서 위로를 받았다. 이런 이야기가 꼬살라국 왕궁에 까지 들어 갔다.

빠세나디 왕은 말리까 왕비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괴로움이 생겨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전했다. 왕은 부처님의 말을 반신반의했다. 이 말을 들은 말리까 왕비는 "대왕이여, 만약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그런 것입니다."(M87)라고 말했다. 부처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한 것이다.

왕은 말리까에게 "내 앞에서 물러 가시오."라고 말했다. 왕은 부처님이 말한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환희와 쾌락이 일어나는 것이 자명함에도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는 부처님 말씀을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말리까 왕비는 부처님 말씀을 믿었다. 그래서 장자를 시켜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여래께서는 망언을 하지 않으십니다."라고 말했다.

부처님은 거짓말 할 분이 아니다. 부처님은 늘 진실만을 말할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진리를 망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부처님은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 되는 말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각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세 가지 근원적인 전도가 있다. 무상한 것에 대해 항상하다고 보는 전도, 괴로운 것에 대해 즐겁다고 보는 전도, 무실체적인 것에 대해 실체가 있다고 보는 전도를 말한다. 이러한 지각의 오염은 마음의 오염을 초래하고 마음의 오염은 견해의 오염으로 확대된다. 이 가운데 지각의 오염이 가장 근원적이다. 그래서 주석에서는 "문둥병 환자는 불속에서도 즐겁다는 전도된 지각을 얻는다."(MN.II.507)라고 말한다. 전도된 지각은 탐, , 치에서도 볼 수 있다.

부처님은 무탐, 무진, 무치를 설했다. 탐욕과 분노와 미혹으로 사는 사람들과 반대로 살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진리를 설한 것을 역류도라고 한다.

역류도로서 부처님 가르침은 세상사람들이 수용하기 어려웠던 같다. 그런 세상사람들은 미친 사람들 같다. 마치 나병환자와 같다. 상처 난 부위를 불에 지지면 시원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전도된 지각을 말한다. 깨달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세상사람들은 미친 사람들이 된다.

미친사람이 말하면 헛소리가 되기 쉽다. 세상사람들은 미친사람들이기 때문에 거짓이기 쉽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이 말하는 것은 모두 진리의 말이기 때문에 진실한 것이 되기 쉽다. 그래서일까 금강경에서 부처님은 자신에 대하여 진어자(眞語者)라고 했고 불망어(不忘語者)라고 했다.

말리까는 부처님 가르침을 믿었다. 부처님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반대로 이야기했다고 하여 미친자의 말로 보지 않은 것이다. 미친자의 말은 오히려 일반사람들이다. 나병환자처럼 전도된 지각을 가졌을 때 괴로운 것을 즐겁다고 거꾸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환희와 쾌락이 생겨난다고 보는 것이다.

부처님은 장자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괴로움이 발생된다는 사실을 여러가지 예를 들어 알려 주었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죽었을 때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고 말해 주었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아버지, 형제, 자매, 아들, , 남편, 아내가 죽었을 때도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고 말해 주었다.

장자는 부처님에게 들은 것을 말리까 왕비에게 전해 주었다. 지혜로운 왕비는 왕에게 문답식으로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르침을 알려 주었다. 왕은 왕비의 말을 듣고 부처님 가르침이 진실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부처님 계신 곳을 향해 합장했다.

세상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기 쉽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주장하지만 개인적 견해이기 쉽다. 왜 그런가?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도된 지각을 가진 일반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망언이기 쉽다.

깨달은 자가 말한 것은 진실이기 쉽다. 왜 그런가? 전도된 지각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았을 때 진어자이고 불망어자가 된다.

세상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환희와 쾌락이 있다고 여긴다. 미친자의 말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것이 진어자의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면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미워하는 사람을 만들면 역시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난다.

유행가 가사에 "사랑하는 마음은 갖지 말자.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자."라는 말이 있다. 이 가사는 법구경사랑하는 자도 갖지 말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갖지 말라.”(Dhp.210)라는 내용과 같다.

유행가에서 "아아 사랑에 빠지지 말자 아아아. 미움에 뿌리가 되기 쉬우니라고 했다. 이 가사는 법구경사랑하는 자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사랑하는 자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Dhp.212)라는 구절과 유사하다.

사랑하는 자 때문에 슬픔이 생겨난다고 했다. 이 말은 맛지마니까야 86번 경에서 부처님이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일어나고, 슬픔,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은 사랑하는 사람들로 부터 생겨난다."(M87)라고 말씀하신 것과 구조가 같다. 이렇게 니까야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니까야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다. 이 니까야에서는 게송으로 간략하게 설명되어 있으나 저 니까야에서는 산문으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사랑하는 자에 대한 가르침도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면 괴로움의 뿌리가 되기 쉽다는 가르침이다. 미워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괴로움의 뿌리가 된다. 사랑보다 우정이다.

"
사랑하는 자도 갖지 말라.
사랑하지 않는 자도 갖지 말라.
사랑하는 자는 만나지 못함이 괴로움이요,
사랑하지 않는 자는 만남이 괴로움이다." (Dhp.210)

"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를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자와 헤어지는 것은 참으로 불행이다.
사랑하는 자도 사랑하지 않는 자도 없는
그 님들에게는 참으로 속박이 없다." (Dhp.211)

"
사랑하는 자 때문에 슬픔이 생겨나고
사랑하는 자 때문에 두려움이 생겨난다.
사랑을 여읜 님에게는 슬픔이 없으니
두려움이 또한 어찌 있으랴." (Dhp.212)


2022-06-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