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2. 6. 28. 08:01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다. 누구나 쓰는 것이다. 요즘에는 페이스북과 같은 에스엔에스에 열중한다. 어느 글이든지 버리지 않는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형식과 내용을 갖춘 글을 서명과 함께 블로그에 동시에 등재한다. 나중에 책으로 낼 것을 염두에 두며 글을 쓴다.

나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가? 글을 쓰는 데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술 취한 자처럼 횡설수설할 수 없다. 글은 논리이다. 논리가 갖추어지지 않은 글을 상상할 수 없다.

페이스북에서 글쓰기를 본다. 보고 나면 공감해 준다. 대개 '좋아요'이지만 상황에 따라 달리 한다. 거의 대부분 감각적인 것들이다. 사진이 들어가면 감각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각적인 것이다. 때로 청각적인 것도 있다. 동영상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눌러 준다.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다. 설령 표현한다고 해도 자신과 가족에 대한 것이다. 먹거리와 여행도 빠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자신의 얼굴에 집착하는 것 같다.

어떤 이는 한상 근사하게 차렸다. 먹거리를 보면 올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 나는데 마치 예술작품을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그림의 떡이다.

어떤 이는 여행기를 틈만 나면 올린다. 해외여행한 것에 대해서 실시간으로 올리는 것이다. 외국의 이국적 풍광과 함께 느낌을 올리는데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역시 그림의 떡이다.

어떤 이는 가족이야기를 한다. 남편이 어떻고 아내가 어떻고 딸이 어떻고 아들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이가 있으면 손주 이야기를 빠지지 않는다. 가족이 없는 사람은 어쩌자는 건가?

유튜브를 보면 '구독' '좋아요'에 목매는 것과 같다. 심지어 알람 설정까지 요청한다. 유익하면 구독하고 공감해 달라는 것이다. 에스엔에스에서도 유익한 글이 있을 것이다. 당연히 공감을 표현한다. 설령 유익한 것이 아니라도 공감해 준다. 먹방이야기, 여행이야기, 가족이야기에도 공감해 준다. 자비의 마음으로 눌러 준다.

글 쓸 때 피하는 것이 있다. 먹방이야기, 가족이야기 등 신변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자랑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시기와 질투를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글을 써야 하는가? 하나라도 건질 것이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삶에 도움이 되는 글을 말한다.

팔정도에 정어가 있다. 정어란 무엇인가? 네 가지로 요약된다. 거짓말하지 않는 것, 거친 말 하지 않는 것, 중상모략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잡담하지 않는 것이다. 이 중에서 에스엔에스에서의 글은 거의 잡담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잡담이란 어떤 것인가? 가십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잡담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놀랍게도 초기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적시해 놓았다.

"
왕에 대한 이야기, 도적에 대한 이야기, 대신들에 대한 이야기, 군사에 대한 이야기, 공포에 대한 이야기, 전쟁에 대한 이야기,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음료에 대한 이야기, 의복에 대한 이야기, 침대에 대한 이야기, 꽃다발에 대한 이야기, 향료에 대한 이야기, 친척에 대한 이야기, 수레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부락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지방에 대한 이야기, 여자에 대한 이야기, 영웅에 대한 이야기, 도로에 대한 이야기, 목욕장에서의 이야기, 망령에 대한 이야기, 사소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시시비비 거리에 대한 이야기”(D9.3)

 


이것이 25가지 잡담이다. 왕에 대한 이야기는 요즘 말로 하면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요즘 속된 말로 ''이 어떻고 저떻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수십 가지 잡담에 대한 것을 보면 오늘날이라 해서 해당되지 않는 것이 없다.

부처님은 팔정도에서 정어를 말씀하셨다. 네 가지 정어에서 삼팝빨라빠(samphappalāpā)에 대한 것이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서 삼파는 useless talk이고, 빨라빠는 nonsense의 뜻이다. 따라서 삼팝빨라빠는 talking nonsense의 뜻이 되어 쓸데 없는 말, 즉 잡담이 된다.

부처님은 잡담을 금했다. 그렇다고 입 다물고 살라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은 두 가지를 말씀하셨다. 이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고귀한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M26)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부처님은 법담과 고귀한 침묵을 말씀 하셨다.

부처님은 잡담을 금했다. 그러나 법담은 장려했다. 아누룻다가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며 법담을 나눕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희들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M31)라고 말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그대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법담을 위하여 모였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라고 칭찬해 주었다.

수행자는 잡담을 해서는 안된다. 법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그 외에는 침묵해야 한다. 그렇다고 멍때리기하라는 것은 아니다. 고귀한 침묵을 유지하라고 했다. 고귀한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명상주제와 함께 하는 것이다. 사마타 40가지 명상주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집중하는 것이다.

고귀한 침묵은 명상주제와 함께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초기경전에는 방법까지 알려 주고 있다. 부처님은 고귀한 침묵에 대해서 "수행승이 사유와 숙고를 멈춘 뒤 내적인 평온과 정신의 통일과 무사유와 무숙고와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에 들면 그것을 고귀한 침묵이라고 부른다.”(S21.1)라고 말씀하셨다.

고귀한 침묵은 두 번째 선정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 선정에서는 사유와 숙고가 떠난 상태를 말한다. 언어적 개념이 사라졌을 때 고귀한 침묵이 된다.

부처님은 잡담하지 말라고 했다. 정치이야기하는 것도 잡담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왜 잡담을 해서는 안될까? 이에 대해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
수행승들이여, 그러한 논의는 이치에 맞지 않고, 청정한 삶을 시작하는데 맞지 않고, 싫어하여 떠남에 도움이 되지 않고, 사라짐에 도움이 되지 않고, 적멸에 도움이 되지 않고, 곧바른 앎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올바른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고, 열반에 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S56.10)

 

잡담하는 것은 청정한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깨달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반사람이라면 정치이야기 등 잡담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팔정도의 삶을 사는 수행자라면 왕의 이야기 등 25가지 잡담을 해서는 안된다. 법담을 하거나 고귀한 침묵을 지켜야 한다.

종종 옆 사무실에서 떠드는 소리가 난다. 건설 회사 사람들이 잡담하는 것이 복도까지 들려 나온다. TV를 켜면 웃고 떠드는 등 온갖 잡소리가 들린다. 유튜브를 보면 유익한 것도 있지만 잡담이 대부분이다. 친구를 만나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기 쉬운데 엄밀히 말하면 잡담이다. 페이스북과 같은 에스엔에스도 말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입만 열면 잡담이다. 페이스북에서는 먹방이야기, 여행이야기, 가족이야기가 많다. 이런 것도 잡담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 나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자비의 마음으로 공감해 준다. 어쩌면 무미건조한 긴 글에 대해서 공감해 주기를 바라면서 누르는 것인지 모른다.

군자는 남이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성내지 아니한다고 했다. 부처님은 "수행승이 욕심이 없으면서 욕심이 없다고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만족할 줄 알면서 만족할 줄 안다고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A8.30)라고 했다.

부처님은 나를 알아 주기를 바라지 말라고 했다.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면 인정투쟁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 인정 받기 위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 자신도 이익되고 타인도 이익되게 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자타가 이익되는 글을 쓰고자 한다. 이것으로 만족한다.


2022-06-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