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나는 언제나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6. 08:45

나는 언제나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새벽은 명경지수와 같다. 물이 잔잔하면 자신의 얼굴도 비칠뿐만아니라 바닥도 보인다.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없을까?

사람은 대상에 휘둘린다. 마음은 단속을 하지 않으면 늘 대상에 가 있다. 감각적 욕망의 대상이다. 구체적으로 시각의 대상, 청각의 대상 등 오욕락을 말한다.

대상에 휘들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대상을 거머쥐고자 한다. 탐욕이다. 대상을 밀쳐내고자 한다. 분노이다.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면 거머쥐고자 하고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밀쳐내고자 한다. 사람들은 탐욕과 성냄으로 살아간다.

욕망의 마음이 일어나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마음은 대상에 가 있다. 대상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대상을 소유하고자 한다. 욕망을 채우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회한다. 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한다. 그런데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분노는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린다. 분노는 인간관계를 파탄 나게 만든다. 친구에게 화를 냈다면 다시는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고객과 싸웠다면 다시는 주문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탐욕과 성냄, 욕심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항상 함께 하는 것이다. 이 둘은 느낌과도 관계가 있다. 즐거운 느낌이 일어나면 탐심이 작동되고, 괴로운 느낌이 일어나면 성냄의 마음이 생겨난다. 탐욕과 성냄은 조건발생하는 것이다.

연기법을 조건발생법이라고 한다. 이는 빠알리어 빠띳짜사뭅빠다(paticcasamuppada)에서 유래한다. 빠띳짜(paticca)는 조건을 말하고 사뭅빠다(samuppada)는 함께 일어남을 의미한다. 그래서 조건발생이라고 한다.

조건발생이 있으면 조건소멸도 있을 것이다. 연기송에서 후송을 보면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도 없다. 이것이 일어나지 않으므로 저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다. 이를 조건소멸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후송은 엄밀히 말하면 조건발생하는 연기법의 범주에 해당된다. 한번 생성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생성되는 것에는 조건을 필요로 하지만 소멸하는 것에는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발생이 있으면 소멸이 있기 마련이다. 발생이 있다는 것은 원인(hetu)과 조건(paccaya)과 결과(phala)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소멸에는 원인과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생성과 소멸에 대해서 종소리의 비유를 들 수 있다.

종을 치면 종소리가 나고 종소리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종을 치는 것은 원인이 되고 종소리가 나는 것은 결과가 된다. 이는 연기법송에서사실들은 원인으로 생겨난다.”라고 말한 것과 일치한다. 그런데 종소리가 사라지는 데는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성되었기 때문에 소멸하는 것이다. 소멸하는 데는 원인도 조건도 필요 없다.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법칙과도 같다. 그래서모든 것은 붕괴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사리뿟따 존자는 새내기 수행승 앗사지의 경행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 받았다. 사리뿟따 존자는 앗사지 존자로부터사실들은 원인으로 생겨나며 그 원인을 여래가 설합니다. 그것들이 소멸하는 것 또한 위대한 수행자께서 그대로 설합니다.”(Vin.I.40)라는 말을 들었다. 발생에 대해서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소멸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

사리뿟따 존자는 앗사지 존자가 전한 내용을 나름대로 소화했다. 그래서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Vin.I.40)라는 말로 정리했다. 생겨나는 것은 원인을 필요로 하지만 소멸하는데는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몸과 마음에서는 이 순간에도 수많은 발생과 소멸이 계속되고 있다. , 느낌, 지각, 형성, 의식의 다발에서 생성과 소멸이 계속되고 있다. 생성은 원인과 조건을 필요로 하지만 소멸에는 원인과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사라지는 것이다. 이는 머무는 시간이 매우 짧음을 말한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머무는 현재시간에 대하여송곳 끝의 겨자씨와 같다.”(Vism.20.72)라고 했다.

송곳 끝에 있는 작은 겨자씨가 머무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허공의 섬광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Vism.20.72)라고 했다. 이는 다름아닌 찰나생찰나멸을 말한다.

흔히 찰나생찰나멸에 사무치라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찰나멸에 사무쳐야 한다. 이는 앙굿따라니까야 벨라마의 경에서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이 더욱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A9.20)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무상에 사무치라는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찰나멸에 사무치라는 말과 같다.

어느 날 아난다 존자가 부처님에게 물었다. 아난다 존자는세존이시여, ‘소멸, 소멸이라고 하는데, 세존이시여, 무엇이 소멸하면 소멸이라고 합니까?”(S22.21)라며 물었다. 이에 부처님은 "아난다여, 느낌은 무상하고 조건지어지고 연기된 것으로 부서지고야 마는 것, 무너지고야 마는 것, 사라지고야 마는 것,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것이 소멸하면 소멸이라고 말한다.”(S22.21)라고 답했다.

부처님은 느낌에 대하여 조건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느낌의 소멸에 대해서는 "부서지고야 마는 것, 무너지고야 마는 것, 사라지고야 마는 것, 소멸하고야 마는 것"(S22.21)이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느낌은 오래 머물지 않음을 말한다. 생성되자 마자 소멸하는 것과 같다. 찰나멸이다. 이런 느낌에 목숨 걸 필요가 있을까?

탐욕의 마음이 일어나면 마음은 대상에 가 있다. 욕망을 채우고자 하나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분노의 마음이 일어난다. 이 때부터 파괴적으로 작용된다. 나도 태워버리고 상대방도 태워 버린다. 남는 것은 무엇일까? 잿더미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엎질러진 물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알아차려야 한다. 사띠해야 한다. 어떻게 사띠해야 할까?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이다.

 


새벽은 명경지수의 마음과 같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듯이 가르침의 거울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다.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면 어제 행위가 잘못된 것이다. 대상에 휘둘린 것이다. 사띠를 놓쳤을 때 괴로움이 뒤따른다.

부처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무엇이라고 해야 할까? 한마디로 사띠하는 것이다. 이를 알아차림 또는 마음챙김으로 번역할 수 있으나 사띠의 본래 뜻인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김이라고도 말 할 수 있다. 항상 부처님 가르침을 기억하고 새기는 것이다.

언제 어느 때나 사띠해야 한다. 사띠를 놓치면 이 몸과 마음은 도둑놈들 소굴이 되기 쉽다. 감각의 문을 지키지 않았을 때 성은 도적들에게 점령당하는 것과 같다. 사띠를 한다는 것은 성문을 지키는 것과 같다.

성문을 지키지 못하여 도적이 들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잡아야 할 것이다. 어떻게 잡아야 할까? 이는 법구경 인연담에서 칠세 아라한인 사미가 삼장법사 뽀틸라 장로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존자여, 개미굴에 여섯 개의 구멍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한 굴로 도마뱀이 들어갔습니다. 그것을 잡으려면 다른 구멍을 막고 여섯 번째 구멍은 놔두고 그 구멍으로 잡아야 합니다.”(DhpA.III.417-421)

칠세 아라한인 사미는 아상이 하늘을 찌르는 삼장법사를 가르쳤다. 그래서 "이와 같이 그대도 여섯 감관의 문 가운데 남은 다섯 감관의 문을 닫고 정신의 문에 집중해야 합니다.”(DhpA.III.417-421)라고 말했다.

사미는 장로에게 감각기관을 단속해야 함을 강조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에서 정신의 문 하나만 열어 놓고 나머지 눈, , 코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의 문을 모두 닫아 놓아야 함을 말한다. 늘 사띠해야 함을 말한다. 늘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이다. 늘 경험 했던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오늘도 날이 밝았다. 감각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감각과의 전쟁에서 매번 패한다. 마음은 늘 감각대상에 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감각과의 전쟁에서 승리할까? 매번 감각과의 전쟁에서 패해서 죽는다.

어제 행위가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졌다면 진 것이다. 나는 오늘 감각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아직 자신 없다. 오늘도 감각과의 전쟁에서 패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
쑤낙캇따여, 이와 같이 그 수행승이 접촉의 여섯 가지 감각영역을 제어하고 집착이 괴로움의 뿌리인 것을 알고 수행하여, 집착이 부수어져 해탈하면, 어떠한 집착의 대상에도 몸을 기울이거나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M105)


2022-07-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