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침을 침으로 닦으려 한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22. 7. 9. 11:41

침을 침으로 닦으려 한다면

 

 

오랜만에 자리에 앉아 본다. 역시 잘 안된다. 10분 앉아 있기도 힘들다. 습관도 들이지 않은 것이고 집중도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온갖 망상이 일어난다. 뒤로 벌렁 누워 버렸다.

 

사무실에 명상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바닥에 카페트를 깔고 그 위에 요가매트를 깔았다. 또 그 위에 두꺼운 방석을 놓았다. 준비는 잘 갖추어져 있다. 요즘은 앉아 있기 힘들다. 시간이 나지 않는 것이다. 아니 시간은 있다. 게을러서일 것이다. 그럼에도 종종 앉아 본다.

 

 

현재 나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사람에 실망한 것이다. 신뢰가 깨졌다.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겉모습만 본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실망은 분노로 나타난다.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알차리려고도 노력한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다. 기대에 못미치자 실망으로 나타났고 분노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시간이 약일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결되지 않은 채로 시간만 지나간다면 업으로 남는다. 미결이다. 언젠가 조건이 맞으면 발현될 것이다. 끝난 것이 아니다.

 

해원상생이라는 말이 있다. 원망은 풀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서로 사는 것이 된다. 분노를 분노로 풀 수 없다. 더욱더 분노만 일어날 뿐이다. 욕망을 욕망으로 풀 수 없는 것과 같다.

 

알코올중독자가 있다. 그는 매일 소주 한병씩 마신다. 하루도 소주를 마시지 않으면 사는 맛이 없다. 인생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에게 소주는 삶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알코올을 어떻게 끊을까?

 

알코올을 끊기 위해서 알코올로 알코올로 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알코올을 죽도록 마시는 것이다. 죽을 정도가 되면 알코올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으로 욕망을 끊을 수 없고 분노로 분노를 끊을 수 없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라며 경전을 열어 보는 것이다.

 

 

결코 이 세상에서 원한으로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원한의 여읨으로 그치나니

이것은 오래된 진리이다.”(Dhp.5)

 

 

원한은 원한으로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화를 내면 그 순간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화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친구에게 화를 냈다면 다시는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고객과 싸웠다면 다시는 주문하려 않을 것이다. 부부싸움을 했다면 냉전기간은 오래 갈 것이다.

 

원한은 원한의 여읨으로 푸는 것이라고 했다. 역설적인 말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구경에서는 화나 났을 때 화를 내지 말라고 했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침이나 코가 묻은 오점을 동일한 더러운 것으로 씻는다면 깨끗해질 수 없고 오히려 더욱 더러워지고 악취가 나게 된다.”(DhpA.I.50)

 

 

참으로 놀라운 가르침이다. 법구경 게송에 대하여 주석가는 침의 비유, 코의 비유를 들어서 설명했다. 상대방에게 원한을 갖는다는 것은 옷에 침이 묻은 것과 같고 코물이 묻은 것과 같다고 했다. 옷이 더럽다고 하여 침이나 코물로 침이나 코물을 닦을 수는 없을 것이다.

 

법구경은 짧은 게송으로 되어 있다.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주석까지 읽어 보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분노, 원한 등과 같은 불선법에 대하여 침이나 코물과 같은 오물로 본 것은 탁월한 비유이다. 그러나 주석에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부처님 가르침을 곁들여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한을 여의고 인내와 자애, 그리고 새김의 확립을 통해서 원한을 소멸시키고 그치게 할 수 있다.”(DhpA.I.50)

 

 

원한을 원한으로 여읠 수 없다. 원한은 원한을 여읨으로써 원한을 여읠 수 있다. 욕망을 욕망으로 극복할 수 없고 욕망을 내려 놓음으로써 욕망을 이길 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기억하여 실행하는 것이다. 분노의 여읨과 관련하여 상윳따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말로 거칠게 꾸짖으면서

어리석은 자는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인내가 무엇인가 안다면

승리는 바로 그의 것이네.

 

분노하는 자에게 다시 분노하는 자는

더욱 악한 자가 될 뿐

분노하는 자에게 더 이상 화내지 않는 것은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네.

 

다른 사람이 분노하는 것을 알고

새김을 확립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자는

자신만이 아니라 남을 위하고

그 둘 다를 위하는 것이리.”(S7.3)

 

 

게송을 보면 서로 윈윈하는 방법을 보여 주고 있는 것 같다. 상대방이 나에게 화를 냈을 때 똑같이 맞받아 친다면 똑 같은 사람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현명한 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대방이 나를 비난하고 화내고 욕지거리 했을 때 부처님은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바라문이여, 그것은 그대의 것이 됩니다.”(S7.2)라고 말했다.

 

때로 침묵도 필요하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다. 이는 피함으로써 번뇌를 일으키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성찰하여 그러한 적당하지 않은 자리, 그러한 적당하지 않은 장소, 그러한 악한 친구를 피한다.”(M2)라고 했다.

 

안되면 피해야 한다. 일단 피하고 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피하지 않으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 찬 번뇌가 생겨날 것이지만, 피하면 곤혹과 고뇌에 가득찬 번뇌가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M2)라고 말씀 하셨다.

 

이 세상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는 모두 니까야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격정적 상태가 되었을 때 초기경전 아무 곳이나 열어 보면 힐링이 된다. 몇 구절 읽지 않아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초기경전은 훌륭한 치료제가 된다. 분노에 대한 가르침도 그렇다.

 

파국은 막아야 한다. 상대방에게 말려 들지 않아야 한다. 일단 피하고 보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새벽에 깨었을 때 후회의 마음이 일어난다면 변화의 조짐이 있는 것이다.

 

현명한 자라면 분노의 밥상을 받지 않을 것이다. 옷에 코물이 묻었다고 하여 코물로 닦을 수 없다. 세제를 이용하여 닦으면 깨끗해질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세제 같은 것이다. 선법으로 불선법을 닦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비유를 들면 이해하기 쉽다. 부처님은 불선법을 선법으로 닦는 것에대하여 쐐기의 비유를 들었다. 작은 쐐기로 커다란 쐐기를 쳐서 뽑아 제거하는 것처럼 “탐욕과 관련되고, 성냄과 관련되고, 어리석음과 관련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가 일어나면, 그는 그 인상과는 다른, 선하고 건전한 어떤 인상에 관련된 정신활동을 일으켜야 한다.(M20)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면만 봐서는 안된다. 그 사람에게는 또 다른 면이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한면만 보고서 잘라 버린다면 홀로 사는 사람이 될 것이다. 현명한 자라면 장점도 보아야 한다. 그 사람 장점 그거 하나만 보고서도 같이 갈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 나의 오염된 마음이 그 사람에게 투사된 것이다.

 

새벽이 되면 흙탕물이 가라 앉은 것처럼 마음이 깨끗해진다.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바닥에 있는 것도 보일 정도가 되면 자신의 행위도 보게 된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행위한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게 느껴졌을 때 잘못된 것이다.

 

수시로 앉아 있어야 한다. 앉아 있기를 생활화 해야 한다. 쓰기도 좋고 외우기도 좋고 암송하기도 좋고 읽기도 좋지만 그것 못지 앉게 앉는 것도 중요하다. 나는 언제나 앉는 것이 생활화 될 수 있을까?


2022-07-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