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암송, 행선, 좌선하기
지금시각 3시 7분, 오늘 일과를 위해서라면 더 자야 한다. 몸의 면역력 깅화를 위해서라도 눈을 붙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엄지치기 하기로 했다.
옅은 잠을 잤다. 잠을 자는둥마는둥한 것이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수면제를 먹고 잘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억지로 자게 하는 것은 꿈에서 헤메게 쉽게 만든다. 술을 마셔야 할까? 정신을 더욱더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책을 보는 것도 좋다. 책이 수면제 효과가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피곤한 상태가 자게 될 것이다. 수면제나 술의 힘을 빌리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에 마음이 가 있기 때문에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럴 때는 일어서야 한다.
몸과 마음이 찌뿌둥 하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나만의 비법이 있다. 먼저 몸을 다스려야 한다. 보리차 물 한컵 마시는 것이 좋다. 더 좋은 것은 환약과 함께 마시는 것이다. 장약 십년환을 마신다.
십년환 십여알을 물과 함께 넘겼다. 뿌듯한 느낌이다. 몸에서 좋은 작용을 할 것 같은 믿음이 간다. 부자 등 갖가지 한약재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몸에 좋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것도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일 것이다.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른다. 자다 일어나서 달밤에 체조하듯 방안을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몸과 마음이 여전히 찌뿌둥하다. 이럴 때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많이 해본 방법이 있다. 이 방법대로 하면 틀림없다. 마치 즉효약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빠다나경을 암송했다. 속으로 암송했다. 부처님 승리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이 악마와 싸워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악마는 귀신이나 사탄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마의 군대는 욕망, 혐오, 기갈, 갈애, 해태와 혼침, 공포, 의심, 위선과 고집에 대한 것이다. 해로운 마음부수가 악마의 군대이다. 이를 지휘하는 자, 사령관 같은 자를 나무치라고 했다.
부처님은 나무치와 싸워 이겨서 성도했다. 악마가 부처님 곁에서 떠난 것이다. 비파를 떨어 뜨리고 슬픈 표정과 함께 떠났다고 묘사되어 있다. 25개의 게송으로 1,800자가 넘는 꽤 긴길이의 경이다. 이를 빠알리 원문으로 암송했다. 물론 뜻을 새기며 암송했다.
암송하고 나면 확실히 집중이 잘 된다. 경행이 행선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암송전에는 경행이었으나 암송후에는 행선이 된 것이다. 발을 움직일때마다 알아차림이 있기 때문이다. 발을 떼서 이동하여 내딛는 전과정에 대해서 아는 마음이 있다.
행선을 할 때 발을 떼는 소리가 난다. 오른발 보다는 왼쪽 발을 뗄 때 소리가 더 난다. 왼쪽발 앞쿰치를 바닥에서 뗄 때 "짝"하고 소리가 나는 것이다. 장판이 아니라 송판이라면 마치 접착제가 떨어지듯이 "짝"하는 소리가 더 크게 날지 모른다.
어떤 이가 말했다. 행선이 잘 될 때는 발을 움직일때마다 "짝, 짝"하며 소리가 난다고 했다. 짝소리가 난다는 것은 집중이 잘 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발의 움직임 전과정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특이 발을 들어서 앞으로 스윽 밀 때도 보인다. 마치 미끄럼 타는 것 같다. 알아차림이 강하면 구름 위를 걷는 것 같다.
행선이 잘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몇 시간이고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확실히 암송전과 암송후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약 십여분가량 암송 했을 뿐인데 행선에 탁월한 효과를 준 것이다.
행선을 할 때 암송을 하면 효과적이다. 여러번 해서 얻은 결과이다. 남들도 이렇게 하는지 알 수 없다. 행선한다고 해서 걷기만 한다면 경행으로 끝날 수 있다. 참선하다 몸풀기 정도로 인식되는 포행과 다를바 없을 것이다.
경행이 행선이 되려면 암송을 해야 한다. 내가 개발한 방법이다. 암송을 하면 자연스럽게 집중이 된다. 기억을 되살리는 것 자체가 집중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십여분가량 뜻을 새기면서 암송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것 같다.
이런 말을 들었다. 화를 내면 화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로 인해 몸이 망가진다고 했다. 왜 그럴까? 화를 내면 몸에서 화학물질이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뿌리엔 독이 있지만 꼭지에 꿀"(S1.71)라고 했다. 분노하면 독이 생겨나는 것이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그에 적합한 화학물질이 몸에서 생겨남을 말한다. 그렇다면 암송은 어떠할까?
암송을 하면 고도로 집중된 상태가 된다. 외웠던 것을 기억해 내는 자체가 집중을 요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집중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집중됐을 때 좋은 화학물질이 생성될 것이다. 암송을 하면 순간적 성취로 인한 상쾌함이 있는데 좋은 화학적 반응이 일어남에 틀림 없을것 같다.
암송을 하고 난다음 행선을 하면 행선이 잘 된다. 이는 잘 집중된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발의 움직을 따라 가는 것이다. 특히 발을 뗄 때 "짝"소리가 나면 집중이 잘 된 상태이다. 발의 움직임 전과정을 아는 마음이 있다.
아는 마음만 있게 되었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 설령 잡념이 일어나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알아차림이 강해서 금방 제압된다. 이렇게 행선에 맛들이면 밤새도록이라도 할 것이다.
잠이 오지 않아 행선을 했다. 암송을 하고 행선을 하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것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런 맛에 행선하는 것이라 본다. 그렇다고 행선을 즐기기만 해서는 안될 것이다. 행선을 통해서 지혜를 계발해야 한다.
행선을 하면 두 가지는 확실하게 볼 수 있다. 그것은 정신과 물질은 구분 되어 있다는 것과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몸은 하나의 나무토막에 불과하다. 다만 스스로 신진대사하는 것에 있어서는 다른 것이다. 몸은 정신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발을 들 때 의도가 있어야 발을 들 수 있다. 행선을 통해서 정신과 물질이 구분되어 있음을 아는 것은 지혜에 해당된다. 그래서 위빠사나 16단계 지혜중에서 가장 첫 번째 지혜는 정신과 물질을 구분하는 지혜가 된다.
발의 움직임이 있으면 이를 아는 마음이 있다. 이때 움직임은 원인이 되고 아는 마음은 결과가 된다. 발은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움직인 것이다. 이때 의도는 원인이 되고 움직임은 결과가 된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당연한 것을 경행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를 원인과 결과를 아는 지혜라고 하는데 위빠사나 두 번째 지혜에 해당된다.
부처님은 깨달음에 대해서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지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위빠사나에서도 16단계 지혜를 말한다. 16단계 지혜 중에서 1단계와 2단계 지혜는 행선으로 확인된다. 더 높은 지혜, 즉 생멸의 지혜나 무너짐의 지혜 등 상위 지혜를 얻으려거든 앉아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행선은 좌선을 위한 예비적 단계라고도 볼 수 있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경행의 공덕이 있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긴 여행을 견디게 하고, 정근을 견디게 하고, 건강해지고,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본 것을 완전히 소화시키고, 경행이 목표로 하는 집중을 오래 유지시킨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은 다섯 가지 경행의 공덕이 있다.”(A5.29)
부처님은 경행에 대해서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고 했다. 이 중에서 "경행이 목표로 하는 집중을 오래 유지시킨다."(A5.29)라는 말에 주목한다. 경행, 즉 행선을 하면 좌선에 도움이 됨을 말한다.
마하시 전통에서는 행선을 장려한다. 행선을 좌선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그래서 좌선과 행선을 한시간씩 번갈아가며 하라고 권한다. 실제로 미얀마 마하시 전통의 선원에서는 짝수 시간에는 좌선을 하고, 홀수 시간에는 행선을 한다.
곧바로 좌선하면 집중이 되지 않는다. 오분 앉아 있기도 힘들다. 이럴 때는 행선을 먼저 해야 한다. 행선에서 집중된 힘을 좌선에서 활용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냥 앉아 있는 것보다 어느 정도 행선을 한다음에 좌선에 임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석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앉으면, 서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상이 사라진다. 누우면, 앉아있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상이 사라진다. 경행하면,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상관없이 움직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 인상이 사라지지 않는다. 즉, 경행할 때의 집중은 앉아 있는 것보다 어렵지만 그것이 이루어지면, 오래 지속되고 몸의 자세를 바꾸어도 그 인상이 사라지지 않는다.”(Mrp.III.236)
좌선을 하면 사마타이기 쉽다. 대상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좌선을 하다 경행을 하면 대상이 깨진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사마타의 대상이 경행에서는 소용 없음을 말한다. 왜 그럴까? 경행과 좌선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이기 때문이다.
좌선은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것이다. 반면 행선은 계속움직인다. 좌선의 집중대상과 행선의 집중 대상이 같지 않음을 말한다. 물론 좌선할 때 복부의 부품과 꺼짐과 같은 움직임을 관찰한다면 풍대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행선과 같은 효과일 것이다.
행선은 움직임을 대상으로 한다. 주로 발의 움직임이다. 그런데 발의 움직임을 보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순간집중을 하여 움직임을 봤을 때 알아차림이 유지된다. 이 집중된 힘을 좌선에 활용하면 쉽게 대상에 집중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몸의 자세를 바꾸어도 그 인상이 사라지지 않는다.”(Mrp.III.236)라고 했다.
행선에서 좌선으로 바꾸면 행선에서 집중된 힘을 좌선에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좌선이 행선보다 더 깊은 집중이 된다. 좌선 하기전에 먼저 행선을 해야하는 이유에 해당된다고 본다.
행선을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평좌를 했다. 새벽에 좌선하면 속된말로 거저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잠을 자고 난다음 좌선하면 반은 접고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행선까지 했다면 좌선하느라 용쓰지 않아도 된다.
좌선은 마하시 방식으로 한다.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다. 부품과 꺼짐을 말한다. 새벽에 그것도 행선을 하고 난다음 좌선을 하면 금방 마음이 평온해진다. 기쁨과 행복이 있는 평온한 상태이다. 주욱 그 상태로 있고 싶어진다. 잠을 자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잠은 잠이 와야 자는 것이다. 억지로 청하면 사나운 꿈만 꿀 뿐이다. 암송하고 행선한 다음 잠자면 꿈자리도 좋은 것 같다. 오늘은 좌선으로까지 이어졌다. 새벽 3시 7분부터 시작한 엄지치기가 이제 5시 7분이 되었다. 꼬받 두 시간 친 것이다. 이제 눈좀 붙여야 겠다.
2022-11-0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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