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혈

나는 진실한 친구일까?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1. 23. 07:57

나는 진실한 친구일까?

사람들은 왠만해서는 장례식장에 가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분위기도 무겁고 칙칙해서 꺼리는 것 같다. 그러나 결혼식장은 잘 가는 것 같다. 밝고 화사하고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일 것이다.

지난주 일요일 장례식장에 갔었다. 친구 모친상이 있어서 부평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에 간 것이다. 같은 학과 동기들 세 명이 모였다. 코로나 이전 같았으면 열 명가량 모였을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감에도 아직까지 후유증이 있는 것 같다.

명색이 상조팀장이다. 자칭 상조팀장을 맡았다. 7년전 모친상을 당했을 때 식장이 썰렁했던 것이 이유가 된다. 화환도 몇 개 되지 않았고 깃발도 없었다. 다른 친구룰 위해서라도 무언가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것은 먼저 깃발을 만드는 것이었다. 학과 깃발을 말한다.

깃발은 한 친구가 통 크게 기부해서 만들 수 있었다. 깃발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화환도 해 주기로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금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야 기금을 확보할 수 있을까? 친구들에게 의무적으로 십만원씩 내라고 했다. 열명이면 백만원이다. 다행히 협조하는 친구가 많았다. 어떤 친구는 크게 내기도 했다. 충분히 기금이 확보되었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특히 나이든 노인은 내일을 장담하지 못한다. 오늘 건강하다가도 내일 악화 될 수 있다. 친구들 부모가 하나, 둘 떠날 때 마다 기금에서 돈도 빠져 나갔다. 깃발 이동 비용과 화환 비용으로 나간 것이다. 이제 기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세 건 치룰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조사가 있을 때마다 깃발과 화환을 챙겨 주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을 자청해서 한 것이다. 장례식장이 썰렁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한 것이다.

장례식장은 천차만별이다. 북적이는 곳이 있는가하면 썰렁한   곳도 있다. 자식의 능력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자식들이 잘 나가면 그에 따라 조문들도 많다. 장례식장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는 것이다.

부모가 모두 사망하면 고아가 되는 것 같다. 의지처를 잃기 때문이다. 부모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 설령 부모 나이가 많고 아프더라도 생존해 있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의지처가  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이제 우리차례라는 말을 했다. 길어야 20년 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죽을지도 큰 관심사였다. 자녀들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공통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을 큰 문제로 보았다. 시대의 문제일까? 다들 손놓고 있는 것 같다. 자식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일이 있을 때는 친구가 좋다고 한다. 조사 때 오는 친구가 돋보인다. 이럴 때 친구의 의미를 한번 더 새겨 본다. 첫째는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친구, 둘째는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 같은 친구, 셋째는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친구, 넷째는 연민할 줄 아는 친구, 이것이 친구의 조건이다. 이 중에서 두 번째 조건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 같은 친구"가 가슴에 사무친다.

친구사이에는 정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우정이다. 우정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주 만나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자비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자애와 연민의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친구라고 해서 다 같은 친구는 아니다. 친밀관계가 형성되어야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반드시 학교친구만 친구가 아니다. 모임이나 단체 사람들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자주 모이면 친구가 된다.

온라인 친구도 친구이다. 온라인에서 친구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공감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친구요청하는 사람에게 "친구요청 감사합니다. 공감할 수 있어야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좋아요' 등 공감 부탁드립니다."라고 요구한다.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공감할 수 있다면 나이나 성별은 문제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손을 내밀 줄 아는 자가 진실한 친구일 것이다. 나는 진실한 친구일까?

2022-11-2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