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회

스님은 악마의 낚시바늘을 물었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2. 12. 24. 01:38

스님은 악마의 낚시바늘을 물었는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즉문즉설로 유명한 스님의 강연을 말한다. 스님의 강연은 대체로 훌륭하다. 그러나 스님의 윤회관에 대해서는 좀처럼 동의하기 힘들다.

오늘 저녁 스님의 유튜브 동영상 강연을 들었다. 12월 22일자로 찍혀 있어서 불과 하루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BTN에서 방영한 것으로 제목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는 법 그리고 윤회와 해탈'(https://youtu.be/tZ3DTDBasco)이다.

언젠가 스님의 즉문즉설에서 스님의 윤회관을 보고 경악했다.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이 많아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힘 없는 자의 무기는 입이라고 했다. 블로거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글로 표현하는 것뿐이었다.

스님의 윤회관에 대해서 글로서 비판했다. 물론 경전적 근거를 들어서 비판한 것이다. 자신의 견해를 말한다면 설득력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권위에 의해서 조목조목 비판했다.

스님의 강연을 좋아 한다. 즉문즉설을 들으면 삶에 대한 해법이 보인다. 주로 부부간의 갈등, 부모와의 갈등, 자식과의 갈등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스님은 불교적 해법을 제시한다. 때로 유머러스하게 얘기해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스님의 윤회관을 들으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이번 강연회를 접하고 약간 기대를 가졌다. 스님의 윤회관에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변한 것이 없다. 다만 말을 세련되게 했을 뿐이다. 아마도 명사들 앞에서 강연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 대표의 얼굴도 보였다.

스님은 윤회에 대해서 신앙의 영역일 뿐이라고 한다. 윤회는 힌두교 사상일뿐이라고 한다. 부처님은 진리, 즉 담마를 설했지 믿음을 설하지 않았다고 했다.

스님은 신앙의 영역과 진리의 영역으로 구분 했다. 윤회는 신앙의 영역이고 믿음의 영역이라고 했다. 스님은 이런 신앙과 믿음을 존중한다고 했다. 그러나 진정한 부처님 가르침은 진리의 영역이고 이를 담마라고 했다.

스님이 말하는 담마는 무엇일까? 초기경전, 즉 니까야에서 말하는 담마를 기대했으나 빗나갔다. 스님이 말하는 담마는 탐구에 대한 것이다. 이는 다름아닌 과학이다. 그래서일까 윤회는 과학이 아니고 믿음의 영역에 해당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스님은 진리, 즉 담마를 설명할 때 탐구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탐구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과학적 탐구가 연상된다. 실제로 스님은 천동설과 지동설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스님에 따르면 천동설은 믿음의 영역에 해당되고, 지동설은 탐구의 영역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 윤회는 천동설처럼 믿음의 영역이고 신앙의 영역임을 강조하기 위해서 비유로 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동설은 탐구의 영역이고 과학의 영역이 된다.

스님의 윤회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스님은 사후에 대해서는 얘기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후윤회를 부정한다.

스님의 즉문즉설 등 강연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스님은 과연 니까야를 읽었을까?"라고 의문하는 것이다. 니까야를 읽었다면 윤회에 대해서 부정하는 발언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님은 윤회에 대해서 말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스님도 윤회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현실 삶에서 윤회를 말한다. 어떤 윤회를 말하는가? 고락윤회를 말한다. 현실의 삶에서 고와 락이 번갈아 일어나는 것을 윤회라고 하는 것이다.

스님은 왜 윤회를 부정할까? 경전공부도 많이 하시고 교리에 대해서도 해박하시고 더구나 수행력까지 갖춘 스님은 왜 윤회를 부정할까?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스님은 전국구이기 때문이라고. 스님은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바라는 스타와 같은 스님이기 때문이라고.

즉문즉설은 불자들만 듣는 것은 아니다. 무종교인도 즐겨 듣고 타종교인도 듣는다. 이런 때 불교의 핵심중의 핵심인 윤회에 대해서 얘기하면 어떻게 될까? 증명할 수 없는 사후 얘기를 한다거나, 죽어서 천상에도 태어날 수 있고 지옥에도 태어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면 곤란할 것이다. 그래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고와 락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이렇게 해야 모두를 아우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님은 삼명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을 말한다. 그러나 경전에 있는 것과 다르게 말했다.

숙명통은 전생을 아는 지혜를 말한다. 천안통은 업과 업의 과보에 따라서 윤회하는 중생의 삶을 보는 지혜를 말한다. 숙명통과 천안통은 윤회와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스님은 이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윤회 이야기를 빼버리고 현실의 삶에서 일어나는 고와 락의 윤회로 설명했다.

스님은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중의 하나이다. 스님의 말 한마디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다. 스님의 말에 힘을 받아 살아 갈 수 있는 용기를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님의 윤회관은 반불교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스님의 윤회관을 보면 부처님 가르침을 전면 부정하는 것처럼 비추어진다. 스님은 아마도 니까야를 읽어 보지 않은 것 같다. 니까야를 읽어 보았다면 윤회에 대하여 신앙이나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윤회는 업과 업의 법칙대로 작용하는 과학이다. 현실의 삶에서 윤회가 있다면 사후의 삶에서 윤회가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부정한다면 유물론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부처님 당시에 육사외도 중에 유물론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유물론이 있다. 과학을 탐구하면 유물론자가 될 수 있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물질을 탐구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를 과학적 유물론이라고 말할 수 없다. 리차드 도킨스같은 사람이 대표적이다.

부처님은 물질만을 탐구하지 않았다. 몸과 마음 모두 탐구했다. 특히 정신을 탐구했다. 그럼에도 부처님의 담마에 대해서 유물론적으로 해석한다면 단멸론이 될 수밖에 없다.

유물론은 '죽으면 끝이다'라는 단멸론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유물론자들은 윤회를 부정한다. 그런데 스님은 과학적 탐구를 강조한다. 니까야에 의존하는 블로거가 보기에는 스님은 과학적 유물론자로 보인다. 나만 그런 것일까?

스님은 방송을 마치면서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대부분 불자들은 윤회를 철썩같이 믿고 있는데 실망시켜 주어서 미안하다는 뜻일까? 분명한 사실은 스님의 강연을 듣고 마음 속에서 분노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어부가 미끼를 단 낚싯바늘을 깊은 연못에 던지면 눈을 가진 어떤 물고기가 그것을 삼키는 것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어부의 낚싯바늘을 삼킨 물고기는 불행에 빠지고 재난에 빠져서 어부가 원하는 대로 이끌리게 된다. 수행승들이여, 여기서 어부라는 것은 악마 빠삐만을 의미한다. 수행승들이여, 낚싯바늘은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의미한다.”(S17.2)

스님은 한국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불교계를 넘어서 일반사람들도 존경하고 타종교인들도 존중해 준다. 스님은 이미 명사이고 전국구이고 스타이다. 이런 스님이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위해서 윤회를 부정한다면 악마의 낚시바늘을 물었다고 본다.

2022-12-2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