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명사가 될 수 있을까?
세상에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이 있다. 유명한 사람들이다. 이름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명사는 아니다.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이 아닌 것과 같다. 악명이 높아도 유명하다. 그럼에도 이름이 있다면 명사일 가능성이 있다. 나도 명사가 될 수 있을까?
붓다 빅퀘스천, 명사가 될 수 있는 등용문 같은 것이다. 여기에 출연하면 어느 정도 명사의 반열에 오르는 것 같다. 어제 붓다 빅퀘스천 강연 현장에 갔었다.
2023년 2월 11일 붓다 빅퀘스천 강연이 조계종 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렸다. 강연은 본래 지하에서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조계사불교대학 졸업식으로 인하여 2층으로 변경되었다. 이날 강연 출연자는 일묵스님, 마성스님, 이학종 선생 이렇게 세 명이다. 명사라고 할 수 있다.
이학종 선생을 응원하기 위해서 서울에 갔다. 한달전 김도이 선생 빌라에서 처음 들었다. 다음달 붓다 빅퀘스천에 나간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 있었던 김도이 선생과 김기성 선생이 함께 응원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이학종 선생이 대중강연한 것을 처음 본다. 이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붓다 빅퀘스천에는 첫 출연이다. 이에 대해서 "명사가 되었군요."라고 축하해 주었다.
이학종 선생은 수행도반이다. 2019년 미얀마에 함께 다녀 온 것이 큰 인연이 되었다. 그때 당시 함께 동행 했었던 두 분 선생이 이번에도 동행하게 되었다. 특히 두 분은 이학종 선생과 단기출가한 동기이기도 하다. 이날 이학종 선생은 미얀마 단기출가에 대한 주제로 강연했다.
2월 붓다 빅퀘스천 출연자 일묵스님과 마성스님은 잘 알고 있다. 유튜브로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한번도 직접 대면해 보지 못했다.
일묵스님과 대면이 이루어졌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담마와나선원 도반 두 명이 있었는데 휴식시간에 소개를 해 주어서 인사를 하게 된 것이다. 도반은 블로거라고 소개시켜 주었다. 불과 30초도 안되는 만남이었다. 그런데 스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는 체 했다.
내 얼굴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페이스북 활동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스북에서는 실명과 얼굴이 공개된다. 두 명이 아는 체 했다. 공통적으로 글을 잘 보고 있다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에 “저의 글과 저의 인격을 동일시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지행합일이 안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붓다 빅퀘스천 첫 번째 시간은 일묵스님이 ‘팔정도 수행속의 사마타와 위빠사나 수행법’에 대해서 강연했다. 강연은 중간부터 들었다. 일묵스님은 원고없이 스크린없이 강연했다. 수없이 법문한 관록이 녹아나는 것 같다. 강연을 들으면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얘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일묵스님은 팔정도에 대해서 얘기 했다. 결국 십정도가 되었다. 해탈이야기가 되었을 때 십정도가 된 것이다. 바른 지혜와 해탈이 추가된 십정도는 팔정도의 완성이고 또한 계정혜 삼학의 완성인 것이다.
일묵스님은 사띠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사띠에 대해서 ‘기억’이라고 했다. 사띠에 대해서 마음챙김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두 번째 시간에 강연한 마성스님 역시 사띠에 대하여 마음챙김으로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마성스님은 사띠에 대하여 ‘알아차림’이라고 말했다.
사띠번역어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띠를 마음챙김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띠의 의미를 잘 나타내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사띠 제1의 의미인 ‘기억’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고, 사띠가 지혜의 의미도 있기 때문에 ‘알아차림’이라는 말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기억과 알아차림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새김’이라는 말이다.
한국빠일리성전협회(KPTS)에서는 사띠에 대해서 새김으로 번역했다. 새김 번역어는 일창스님도 사용하고 있다. 한국마하시선원에서 출간된 ‘위빳사나 수행방법론’을 보면 사띠에 대해서 새김으로 번역해 놓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띠가 왜 새김인가? 이는 새김이라는 말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억과 지혜라는 말이다. 사띠의 본래 뜻인 기억과 위빠사나 지혜가 합쳐진 말이 새김이라는 것이다.
사띠는 기억과 지혜가 결합된 말이다. 사띠에 대하여 단순히 기억이라고 한정하면 그저 기억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기억은 기억해 내는 것일 뿐 계발되는 성질이 아닌 것임을 말한다. 개가 주인을 기억하고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사띠가 사띠이게끔 되려면 기억 플러스가 되어야 한다. 그 플러스가 바로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사띠는 기억 플러스 지혜가 된다.
사띠는 기억과 지혜가 결합된 것이다. 그래서 사띠는 계발될 수 있는 것이다. 개가 주인을 알아 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기억 플러스 지혜가 있기 때문에 보다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지혜가 계발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억과 지혜과 결합된 사띠의 번역어가 새김이다.
일묵스님은 바른 집중에 대해서 설명했다. 외도의 삼매는 단지 대상에 집중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불교의 삼매는 지혜가 결합된 삼매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대상을 무상, 고, 무아로 통찰하는 것이다. 이는 정학과 관련된 세 가지, 즉 정정진과 정념과 정정이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함을 말한다. 무상, 고, 무아의 지혜가 생겨났을 때 해탈에 이르게 되는데 이를 십정도로 설명했다.
붓다 빅퀘스천 두 번째 시간은 마성스님이 ‘초기졍전에 나타난 불교수행법’에 대해서 강연했다. 마성스님은 마치 호통치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로 기존 명상 행태를 비판했다. 중국선종과 미얀마 위빠사나를 비판한 것이다.
마성스님의 말에는 걸림이 없는 것 같다. 누구도 감히 말을 못하는 것에 대해서 뼈 아플 정도로 지적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불교 선종에 대한 비판은 매우 신랄했다. 한마디로 중국 선종은 힌두교와 같은 것이라고 폭탄선언 했기 때문이다.
마성스님은 왜 선종을 힌두교와 같은 것이라고 했을까? 먼저 “내가 부처이다.”라거나, “본래 부처이다.”라거나, “닦을 것이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한국불교의 90프로 이상의 스님들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다. 불성이라는 말도 해당된다고 했다. 이런 말에 대해서 외도의 삿된 견해와 같다고 비판했다.
마성스님은 우파니샤드에 “내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이 말은 바라문교와 힌두교에서 모두 통용되는 말이라고 한다. 이 말은 “아트만이 곧 브라만이다.”라는 말과 같다고 했다. 이는 다름아닌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다. 그럼에도 한국스님들은 본래불이나 불성과 같은 말이 힌두교 사상인지 모르고 사용한다며 비판했다.
마성스님은 중국선종에 대해서 노장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했다. 중국적 사상에 바탕을 둔 깨달음이 결국 우파니샤드 사상과 합치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중국조사들이 말한 것이 결국 우파니샤드 사상을 말했다는 것이다. 마성스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농담으로 “더이상 나가면 안불러줄까 싶어서 여기서 마칩니다.”라고 말했다.
마성스님은 위빠사나 수행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특히 미얀마 위빠사나 방식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미얀마의 위빠사나에 대하여 겸손하지 못하다고 비판했고,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것 같다고 비판했고, 육체적 고통을 참는 것을 수행으로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고, 보여주기 위한 수행같다고 비판했고, 일상에서 수행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 비판했다. 특히 위빠사나가 군부독재를 합리화 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했다. 또한 마하시 방식은 교리에 바탕을 둔 고엔카 방식보다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성스님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주도적인 두 개의 수행방법에 대해서 거침없는 비판을 했다. 당사자들 입장에서 본다면 동의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을 것이다. 비판이 지나치면 역공을 당할 수도 있다. 유튜브에 공개된다면 논란이 될지도 모르겠다.
붓다 빅퀘스천 세 번째 시간은 이학종 선생 차례였다. 이학종 선생은 앞서 치러진 두 스님과는 다르게 ‘내가 체험한 한 달간의 미얀마 단기출가수행’에 대하여 시종 차분하게 말했다. 미얀마 현지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담담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학종 선생은 기자출신이다. 법보신문 기자로 출발했고 사장까지 역임한 바 있다. 이후 미디어붓다를 창립해서 대표기자로 지냈다. 지금은 당진에서 농부로 살고 있다. 낮에는 일농사하고 밤에는 글농사하는 두 가지 일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학종 선생은 기자로 30년 살았다. 그 30년 동안 하나의 흐름을 보았다고 한다. 그것은 초기불교와 위빠사나에 대한 것이다. 처음 태동기부터 시작해서 현재 정착기까지 전과정을 지켜 본 것이다. 마침내 자신도 이런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학종 선생은 미얀마에서 단기출가했다. 나도 그 현장에 있었다. 2019년 1월 당시에 십여명이 함께 갔었는데 그 중에 다섯 명이 단기출가했다. 나는 2주 머물다가 왔기 때문에 단기출가 하지 않았다. 한달 이상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다섯 명이 머리를 깍고 가사를 입고 부채를 들었다.
이학종 선생이 미얀마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주변 사람들 영향이 크다. 또한 기자로서 보고 듣고 느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되었다고 한다. 단기출가로 인해서 평생 수행자로 살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연 말미에서 “가사와 발우와 부채를 보면 마음이 흐트러질 때 다 잡습니다.”라고 말했다.
붓다 빅퀘스천 강연이 끝났다. 함께 응원 갔던 미얀마 수행도반들과 차를 마셨다. 찻집 보성에서 대추차를 마시면서 강연을 축하해 주었다. 어쩌면 성공적인 명사 데뷔전을 치룬 것인지 모른다. 이렇게 해서 명사가 탄생되는 것 아닐까? 수행도반 이학종 선생이 자랑스럽다.
누구나 명사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명사가 되고 싶다고 해서 명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인정해 주어야 한다. 암묵적 합의도 있어야 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토대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명사가 되기 쉽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제 할 일하는 사람도 명사라고 말할 수 있다. 강호의 숨은 고수를 말한다. 나도 명사가 될 수 있을까?
2023-02-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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