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에 감사를
봄이 왔다. 이제 완전한 봄이다. 심리적으로도 계절적으로도 봄이다.
동지 때부터 봄을 기다렸다. 11월 말 나목이 되었을 때 처참했다. 눈이 내리자 덜 했다. 동지가 되었을 때 바닥을 쳤다.
입춘이 되자 봄이 성큼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절기상으로는 봄이지만 체감상으로는 여전히 겨울이었다.
봄은 개학과 함께 오는가 보다. 3월이 되자 심리적으로 봄이 된 것 같았다. 꽃도 없고 새싹도 없지만 이제 봄이 팔부능선까지 온 것 같았다.
마침내 봄이 왔다. 춘분도 지난 오늘 꽃을 보았다. 안양천에는 벚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바람은 부드럽다. 관악산 둘레길을 산행하기로 했다.
관악대로를 건넜다. 래미안을 가로질러 산행길에 접어 들었다. 목적지는 내비산 약수터이다. 그곳에 가면 산마을 우물가 토속음식점이 있다. 까스를 사고자 했다.
불과 일주일만에 세상이 바뀌었다. 꽃의 세상이 된 것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지만 개나리, 진달래, 할미꽃, 매화를 목격했다. 매년 이맘 때쯤 보던 것들이다.
꽃을 보니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작년에도 보고 재작년에도 보았다. 안양에 온지 28년 동안 본 것이다. 올해도 꽃을 보았으니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꽃을 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간 자들이 많다. 꽃을 보았으니 살아 있는 것이다. 먼저 간 자들이 그토록 바라던 봄이다.
산마을 주막에 들어 갔다. 돈까스 포장을 시켰다. 카운터 사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제 얼굴이 익숙하다. 단골이 된 것이다.
카운터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올해도 죽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건강하셔야죠."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대화는 매년 3월이 되면 반복되는 것이다.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점심 때는 햇볕이 나서 살 맛 났으나 오후가 되자 구름이 끼였다. 더구나 바람도 불었다. 잠시 해가 구름에서 나오면 삶의 활력을 찾는다.
정자에 앉아 돈까스를 먹는다. 산마을 주막 사람은 인심도 좋다. 김치를 듬뿍 담아 주었다. 오년 단골이 좋긴 좋다. 구름을 벗어난 햇살에 살아 있음을 감사히 여긴다.
2023-03-25
담마다사 이병욱
'나에게 떠나는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산홍 만발한 명학공원에서 (0) | 2023.04.14 |
---|---|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1) | 2023.04.13 |
절구산수유차를 만들었더니 (0) | 2023.03.18 |
고래바위 계곡은 얼음계곡 (0) | 2023.02.26 |
개나리 가지 꺽는 것은 무죄 (0) | 2023.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