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절제

평범한 일상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23. 7. 6. 20:21

평범한 일상에서


햇빛이 쨍쨍하다. 어제처럼 우산을 쓰고 걸었다. 검은 우산이다. 양산을 써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

1.2키로는 먼 거리이다. 걷고 나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우산을 쓰면 덜하다. 등 뒤에는 배낭을 맸다. 안양로 막둥이네에서 산 야채가 들어 있다.

평범한 일상이다. 평범한 삶을 사니 평범한 일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아래를 보고 걷는다. 걷다 보면 보인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보이는 것이다.

이마트 한켠에는 택시가 줄 서 있다. 택시 줄이 길면 불황이라고 한다. 어느 여성 운전자는 대기 시간에 차를 닦고 있다. 차를 닦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멀리서 찰칵했다.

 


언제나 찍을 준비는 되어 있다. 일상에서 일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순간포착 하고자 한다. 어제는 안양로 막둥이네 채소 가게 앞에서 요구르트 파는 아줌마를 찰칵했다. 요구르트 차를 몰고 다니는 판매원이다. 요구르트 파는 모습이 아름다워서 찰칵했다.

 


리어커에 폐지를 싣고 가는 사람을 발견했다. 이것도 일상의 삶의 모습이다. 고관대작들은 볼 수 없는 것이다. 벤츠 타고 다니는 사람도 보기 힘들다. 걸어 다니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다.

 


이마트 건널목에서 그 사람을 만났다. 몇 주 전의 일이다. 그 사람을 만나면 말을 걸겠다고 글에 쓴 바 있다. 그러나 모른 채 했다. 고개를 돌려 버린 것이다. 비겁쟁이가 되었다.

그 사람은 허름한 사람이다. 천막텐트를 매고 다니는 사람이다. 노숙자 같기도 하다. 그러나 걸인 같지는 않다. 작년 그 사람 뒤를 쫓아 가서 5만원짜리 두 장을 건넨 바 있다.

나는 그 사람과 대화 할 수 있을까? 우연히 마주 쳤을 때 고개를 돌렸으니 아직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잘 난 것도 없는데 나는 왜 피하는 것일까? 아직도 멀은 것 같다. 자만심, 우월적 자만심이 있는 한 거짓말쟁이, 비겁쟁이가 될 것 같다.

세상은 잘나고 똑똑한 놈만 사는 세상이 아니다.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 간다.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축생과도 함께 살아 간다.

인도 오성급 호텔에서 쥐가 나왔다고 한다. 호텔 종업원은 태연히 어찌 여기에 사람만 살겠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 사는 곳에 개도 살고 고양이도 살고 쥐도 산다.

지난주 토요일 함평 사촌 누님 집에 있었다. 그때 새끼 고양이들을 보았다. 키우지 않는다고 했다. 창고에 들어와 사는 것이다. 그런데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이 있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 고양이들에게 젖 주는 장면을 목격한 것이다.

 


새끼는 예쁘다. 사람 새끼이든 짐승 새끼이든 새끼는 모두 예쁜 것이다. 더구나 젖 주는 장면, 젖 먹는 장면을 보면 숭고함을 느낀다.


시작도 알 수 없는 때부터의
눈물과 젖과 피, 윤회를 새기십시오.
뭇삶들이 윤회하면서
쌓아온 해골들을 새겨보십시오.”(Thig.496)


테리가타에 있는 게송이다. 윤회 과정에서 흘린 피와 흘린 눈물, 마신 젖의 양을 새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젖은 어떤 의미일까?

시작을 알 수 없는 윤회에서 그 동안 마신 젖의 양은 얼마나 될까? 이는그대들이 오랜 세월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마신 어머니의 젖과 사대양에 있는 물의 양과 어느 쪽이 더 많겠는가?”(S15.4)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젖은 어머니로부터 마신다. 축생으로 태어나면 어미로부터 마실 것이다. 고양이로 태어 났다면 고양이 어미로부터 마실 것이다. 육도윤회하면서 젖의 양은 수미산의 사대양보다 많을 것이라고 했다.

안양천에 물오리가 있다. 어느 날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오리 가족을 발견했다. 어미 물오리를 따라 새끼 물오리들이 쫓아 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생명이 있었던 것이다. 마치 들꽃이 누가 보건 말건 피고 지듯이, 물오리는 어디선가 짝 짓기 하고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일상이다. 명학공원에 가면 휠체어 탄 사람을 볼 수 있다. 허리가 굽은 사람,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사람도 볼 수 있다. 열심히 도는 것은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말을 실천하는 것 아닐까?

 


집에 도착했다. 점심은 집에서 먹는다. 하루에 네 번 1.2키로를 걷고 명학공원을 돌면 만보가 된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 집에 왔다. 오늘은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콩나물을 먹을 만큼 삶았다. 비빔밥에 들어갈 1급 재료이다. 여기에 부추, 상추, 피망을 잘라 넣었다. 계란 프라이도 있어야 한다. 반쯤 익힌 것을 얹었다. 김치도 추가하고 참기름과 고추장도 추가 했다.

 


모든 재료는 준비 되었다. 막 지은 밥을 한 공기 얹었다. 그리고 요리조리 비볐다. 참기름도 넣었다. 한 잎 크게 가져 가니 최상의 맛이다. 여기에 풋고추에 된장을 발라 먹으니 더할 것이 없다. 밥값으로 8천원 번 것이다.

밥상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밥상 받을 자격이 없다. 돈 주고 밥을 사먹는다고 해도 결국 밥상 받는 것이 된다.

밥을 차려 먹으면 밥상 받을 일이 없다. 밥상 차리기가 번거롭기는 하지만 한끼의 밥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만이 억압된다.

밥상을 받으려 하기 보다는 밥상을 차려야 한다. 밥상을 받으면 공덕을 까먹는 것이 되고, 밥상을 차리면 공덕을 짓는 것이 된다.

어찌할 수 없이 밥상을 받게 되었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 내돈 내고 먹는다고 하여 거만하게 먹을 수 없다. 나는 과연 밥상 받을 자격이 있는가?


2023-07-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