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묵히 해야 할 바를 다하는 사람이 있기에
일년에 한번 있는 감사의 날이다. 연중행사로 치루어진다. 어제 백권당으로 사람들이 왔다. 정의평화불교연대(정평불) 사람들이다.
정평불에서 감사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맡고 싶어서 맡은 것이 아니다. 맡아 달라고 해서 맡은 것이다.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 할지 알 수 없다. 다만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뿐이다.
어제 백권당에 여섯 명 모였다. 감사 장소를 백권당으로 선택한 것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백권당에서 감사작업을 했다. 내가 감사역할을 맡고 있어서 백권당을 선택했을 것이다.
감사는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시작되었다. 시간이 되자 공동대표 김광수 선생, 사무총장 이덕권 선생, 재무담당 조현덕 선생, 또 다른 감사 박금재 선생, 그리고 상임대표 최원녕 선생이 차례로 도착했다.
감사는 상임대표와 사무총장과 재무담당과 감사위원만 있으면 된다. 그럼에도 김광수 선생이 온 것은 전임 상임대표로서 책임감 때문에 왔을 것이다.
김광수 선생은 선물을 잔뜩 가져왔다. 박카스 한박스를 가져 온 것이다. 이런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김광수 선생은 최근 발간된 자신의 저서 ‘임플란트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주었다.
김광수 선생은 거의 30분전에 왔다. 일찍 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낸 것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김광수 선생은 페이스북에 연재했던 것을 하나의 단행본으로 만든 것이다.
책을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출판사에 의뢰하여 출간한 것은 아니다. 피디에프(pdf)파일로 만든 것이다. 현재 111권 만들었다.
피디에프(pdf)파일은 모두 블로그에 올려 놓았다. 누구든지 다운 받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다. 또한 종이책으로도 만들었다. 보관용으로 두 질 만든 것이다.
아마 팔년 되었을 것이다. 그때 윤창화 선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학종 선생을 통해서 연락을 받았다. 점심이나 함께 하자는 것이다. 이에 민족사가 있는 오피스텔 지하에서 만났다.
윤창화 선생은 출간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이것저것 많이 쓰는 것도 좋지만 한권의 책으로 내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자신의 사상이나 이론에 대하여 한권의 책으로 내어야 가치 있음을 말했다.
윤창화 선생의 제안에 난색을 표명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도 말했다. 책을 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책을 만든 것은 6년전의 일이다. 그때 금요니까야모임에 관련된 글을 쓴 것이 있었다. 모임 멤버 중의 하나인 도현스님이 프린트 해서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책만들기를 시작했다.
감사 장소는 백권당이다. 테이블 탁자가 있지만 여섯 명 앉기에 부족하다. 명상공간에 방석을 깔았다. 여섯 개의 자리를 만든 것이다.
오전 11시부터 감사가 시작되었다. 세 평 가량 되는 명상공간에 둘러 앉았다. 마실 것은 차로 준비했다. 처음에는 홍차로 시작했다. 두 번째는 재스민차로 준비했다.
재스민차는 조현덕 선생이 가져 온 것이다. 언제든지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다. 무언가라도 하나 꼭 가져 온다. 올해에는 귀한 재스민차를 가져 왔다.
재스민차는 향기가 최상이다. 이는 부처님이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떠한 꽃의 향이 있든지 그들 가운데 재스민 향을 최상이라 한다.”(S22.102)라고 말씀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감사는 통장을 대조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재무담당 조현덕 선생이 수기로 작성된 것을 통장과 일일이 대조하는 작업이다. 도중에 틀린 숫자를 발견했다. 이를 즉각 수정했다. 프린터가 있어서 즉각 출력했다.
십만원 이상 지출된 것은 계산서를 첨부해야 한다. 조현덕 선생은 꼼꼼하게 장부에 모두 붙여 놓았다. 이를 통장과 대조한 다음에 일일이 도장을 찍었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에서든지 헌신하는 사람이 있다. 헌신 하는 사람이 있기에 모임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소임을 맡은 자가 태만하다면 어떻게 될까? 모임은 큰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조현덕 선생은 재무담당으로서 헌신하고 있다. 조현덕 선생은 2018년부터 지금까지 내리 5년동안 맡은 바 직분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세상에 나온 지 오래 되지 않았다. 직장생활 할 때는 오로지 집과 직장만 왕래했다. 모임에 참여하거나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일은 일체 없었다. 그런 세월을 20년 보냈다.
사십대 중반이 되자 더 이상 직장에 다닐 수 없었다. 아무도 받아 주는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홀로서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5년 이후 개인사업자로 살고 있다.
개인사업자로 살면서 글을 썼다. 일하는 시간보다 노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넘쳐 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글을 쓰니 시간이 잘 갔다.
세상에 나온 것은 2015년의 일이다. 이전까지는 집과 사무실을 왕래하며 글만 썼다. 그때 처음으로 모임에 참석하고 재가단체에 참여 했다.
모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으로 불교에 입문한 능인불교교양대학 모임이 2004년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임에서 소임도 맡았다. 2015부터 3년동안 총무소임을 맡았다. 생애에 있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총무소임은 바라지 않은 것이었다. 맡겨서 맡은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왕 맡은 것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무보수자원봉사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손해 나는 일이다. 그러나 욕먹지 않기 위해서, 또한 태만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헌신하다시피 했다.
정평불에서도 소임을 맡았다. 2018년부터 2년동안 사무총장 소임을 맡은 것이다. 이번에도 바라지 않은 것이다. 맡겨서 하게 되었다. 이왕 하게 된 것 욕먹지 않고자 했다. 무보수자원봉사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손해이다. 그럼에도 태만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주어진 2년 동안 ‘완전연소’하고자 했다.
올해도 다 지나간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송년회가 열린다. 처음 소임을 맡았던 모임에서는 송년회를 하지 않기로 했다.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소임을 맡은 사람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돌아가며 소임을 맡기로 했는데 억지로 떠밀리다시피 해서 소임을 맡아서일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 결과 송년회불발이라는 참사가 벌어진 것 같다.
모임도 흥망성쇠가 있다. 한때 잘 나가던 모임도 삐걱거리고 분해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본다. 그것은 재정문제와 인사문제이다. 축적된 기금이 너무 많아도 문제가 되고 소임자가 태만해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모임이나 단체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헌신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무보수자원봉사의 모임에서 자신의 시간을 내서 헌신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정평불 재무담당 조현덕 선생은 5년동안 헌신하고 있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몰라 모두 수기로 작성한다.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잘 정리된 하나의 노트를 만들었다. 여기에 도장을 찍어 주었다.
감사가 끝났다. 11시부터 시작한 감사가 거의 두 시간 걸렸다. 모두 끝났으니 이제 밥 먹으로 가야 한다. 명학역 중심상권에 있는 중식당 ‘소선’으로 향했다.
중식당 소선에서 유쾌한 식사를 했다. 공통적으로 먹을 수 있는 탕수육을 두 개 시켰다. 그리고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했다. 맥주와 이과두주도 곁들였다. 올해도 감사를 잘 마친 것에 대하여 건배를 했다.
식사가 끝나자 각자 헤어졌다. 상임대표 최원녕 선생은 차를 백권당이 있는 오피스텔에 주차해 놓았기 때문에 함께 사무실로 향했다.
최원녕선생과 약 30분 동안 커피를 마셨다. 최원녕선생은 어떤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원녕 선생에 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수경재배한 접란이다. 그러나 기회를 놓쳤다. 식사가 끝나고 곧바로 갈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기다린다고 했다. 30분 시간이 남아서 사무실로 함께 들어 갔다.
최원녕선생에 선물을 했다. 그것은 접란과 호접란이다. 큰 것은 1년 이상 기른 것이다. 이를 받은 최원녕 선생은 무척 기뻐했다. 자신과 동료가 운영하는 종로3가 국일관 음식점에 놓겠다고 했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감사가 있기 전에 최원녕선생에게 수경재배한 것을 분양하고자 마음을 내었는데 그것이 실현 된 것이다. 이를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까?
모든 행사가 끝났다. 자리를 정리하고 오전에 쓴 글을 마무리하자 오후 5시가 되었다. 일년 중에 가장 큰 행사가 끝난 것이다. 그러나 매번 긴장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 소임을 맡은 사람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고작 하루 수고한 것이다.
모임에서 가장 수고가 많은 사람은 아마 재무담당일 것이다. 숫자 다루는 것만 큼 신경 쓰이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번도 불만을 표출하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 할 바를 묵묵히 다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기에 모임이나 단체가 돌아간다. 표창장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나마 글로서 경의를 표한다.
2023-12-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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