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고래바위 비밀계곡 삼십년

담마다사 이병욱 2024. 4. 2. 09:42

고래바위 비밀계곡 삼십년
 
 
또 다시 백권당의 아침이다. 어제는 죽을 듯이 괴로웠지만 아침이 되면 이렇게 부활한다.
 
배낭을 매고 안양천을 건넌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메가트리아 대단지에 이른다. 남의 아파트이지만 거리가 단축되기 때문에 가로 질러 간다.
 
메가트리아 동문 맞은 편에 정거장이 하나 있다. 가끔씩 버스가 온다. 차가 자주 다니지 않기 때문에 빨간불임에도 무단횡단 한다.
 
정치인 안철수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적으로 전해져 온다. 그가 정치를 하기 전에 이야기를 말한다. 새벽에 횡단보도를 건넨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안철수는 착한 사람인 것 같다. 한때 그를 좋아했다. 표도 주었다. 그는 새벽에도 녹색불이 켜질 때까지 건너지 않고 기다렸다고 한다. 준법정신이 철저한 정직한 이미지를 주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본다면 나는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버스정류장 앞에서 하나의 시를 보았다. 시와 그림이 있는 커다란 시화판을 본 것이다. 제목을 보니 ‘관악산’이다.
 
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보았다. 제목은 ‘바람에 실리듯 관악에 든다’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바람에 실리듯 관악에 든다
 
불성계곡이 지리산 계곡인 듯 물 푸르고,
팔봉의 굽이침이 설악의 공룡같구나.
 
지리산이 아니면, 설악 같으면 또 어떠리.
 
앉은 바위는 설악에 든 듯, 바람은 지리산이다
기쁜 산길이 설악과 같아, 그 계곡에 발 담그니
어찌 관악이 작다 하리.
 
춘사월 관악을 벅차게 오르고,
한 겨울 계곡에 깊게 담긴다.
 
오늘 관악을
가슴크게 들이킨다.”
 

 

 
이 작품의 작가는 안태영이다. 설명문을 보니 ‘버스정류장 문화글판 공모선정작’이라고 쓰여 있다.
 
시인이 되고자 했다. 시를 쓰면 시인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백일장 등에 참가하여 등단해야 시인자격증을 준다. 그럼에도 수백개의 시를 썼다. 블로그 진흙속의연꽃에서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폴더에는 시와 함께 단문이 저장되어 있다.
 
한번도 시를 배워 본 적이 없다. 다만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를 보고 “시는 이렇게 쓰는 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초기경전에는 수많은 시가 등장한다. 이를 게송이라 하여 사구게로 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짧은 사구게에 심오한 내용이 포함 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시는 이렇게 쓰는 구나!”라고 생각 했다.
 
페이스북에는 시인들이 많다. 그들은 서로 서로 시인이라 불러준다. 그렇다면 그들이 쓰는 시는 어떤 것일까?
 
시는 언어가 고도로 압축된 것이다. 또한 특유한 운율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시인들이 쓰는 시를 보면 단지 한개의 문장을 짧게 끊어서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디카시라는 시도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시의 결합어일 것이다. 사진이 있는 시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의 시를 보니 사구게로 대단히 짧다. 그러나 문장을 짧게 배열해 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보다는 배경화면이 돋보인다.
 
어느 스님은 한시를 올려 놓는다. 사구게 형식으로 되어 있는 한시를 말한다. 한시에 능통한 스님 같다. 한자어를 우리말로 풀어 놓은 것을 보니 짧은 문장을 사구게 형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초기경전 사구게와 비교된다.
 
시인들의 시를 보면 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문장을 나열하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시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줄을 여러 개 만드는 것도 해당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임에 틀림 없다.
 
시인들의 시를 보면 뚜렷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마침표와 쉼표가 없다는 것이다. 마치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는 것 같다. 마치 “시는 이렇게 쓰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시를 쓸 때 문법에 맞추어 쓰고자 한다. 시를 배워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시를 쓸 때는 반드시 마침표와 쉼표를 사용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쓰다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 버스 정류장 시화판에서 시를 보았다. “시는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마침표와 쉼표가 있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시인들은 마침표와 쉼표를 생략한다. 그러나 시회판 시에서는 분명히 있었다. 내 생각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한 순간이다.
 
시인은 관악산을 예찬했다. 불성계곡이 나오고 팔봉이 등장한다. 익숙한 이름이다.
 
불성계곡에 가면 불성사가 있다. 팔봉 아래 불성사가 있다. 시인은 아마 불성사도 가보았을 것이다.
 
관악산에 다닌지 30년 가까이 되었다. 1995년 안양에 이사 왔으니 30년 가까이 된 것이다. 주로 내비산 방향으로 다녔다. 수도군단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관악산 남사면에 해당된다.
 
관악산에 가면 늘 가는 곳이 있다. 내비산 산림욕장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계곡이 하나 나온다. 이를 ‘우리계곡’이라고 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이름 붙인 것이다.
 
지도에 우리계곡이라는 명칭은 없다. 요즘 최신지도를 보니 ‘관양계곡’이라고 되어 있다.
 
우리계곡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2007년 여름에 ‘도시탈출 있는 가장 빠른 관악산 ‘우리계곡’ (tistory.com)’(2007-07-13)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긴 것이다. 그때 무척 더웠던 것 같다. 말리 가지 못하고 가까운 계곡에 찾아 간 것이다. 글의 말미에 이런 글을 남겼다.
 
 
“보이는 것은 산과 계곡 그리고 하늘뿐이다. 사람이 많이 찾아 오지 않은 계곡이라 그런지 1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오염되지 않고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다. 앞으로도 크게 변화는 없을 것 같다. 도시생활의 각박함에 지쳤을 때 찾아오는 우리계곡은 강원도 산골에 못지 않는 고요함과 평안함을 준다.” (도시탈출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곳 관악산 ‘우리계곡’, 2007-07-13)
 

 

이 글은 지금으로부터 17년전에 쓴 글이다. 글을 다시 읽어 보니 1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표현되어 있다. 이로 보아 안양으로 이사 온 그 다음해에 찾아 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때가 아마 1996년 이었던 것 같다.
 
우리계곡은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다녔다. 1996년 계곡을 발견한 이후 매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다녔다. 철마다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철은 예외이다.
 
우리계곡은 암반계곡이다. 비 오고 난 다음 가면 마치 설악산 계곡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계곡 아래로 더 내려가면 절경이 있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계곡이라는 말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고래바위계곡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것은 돌고래 형상의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관악산에는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일까 수많은 형상의 바위가 있다. 관양계곡에도 고래형상의 바위가 있다. 내가 이름 붙인 것이다.
 
고래바위는 내가 최초로 이름 붙인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검색에서 걸리지 않는다. 아마 바위를 찾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쩌면 내가 최초일지 모른다.
 

 
고래바위는 등산로가 아닌 곳에 있다. 나무에 가려 숨어 있듯이 위치해 있다. 이를 십여년 전에 우연히 발견했다.
 
요즘 관악산에 가면 고래바위계곡으로 간다. 관양계곡에서 가장 비경이기 때문이다. 모두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에는 급경사가 있어서 로프를 타고 내려가야 할 정도이다.
 

 
고래바위계곡에 가면 아지트가 있다. 이른바 너럭바위라고 말할 수 있다. 쉼터이기도 하고 음식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고래바위계곡에 앉아 있으면 신선이 되는 것 같다. 흘러 가는 구름을 보기도 한다. 주변은 온통 초록뿐이다. 산 하나면 넘었을 뿐인데 마치 설악산이나 지리산에 있는 듯 하다.
 
시인은 관악산을 예찬했다. 시인은 “불성계곡이 지리산 계곡인 듯 물 푸르고,
팔봉의 굽이침이 설악의 공룡같구나.”라고 노래했다. 틀림 없는 사실이다. 도시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비경이 펼쳐진다.
 

 
고래바위계곡은 30년 가까이 되었다. 매년 봄이 되면 찾았다. 마음이 심란할 때 찾았다. 운동이 부족할 때 찾았다. 도시탈출하기 위해서 찾았다.
 
고래바위계곡은 비밀의 계곡이다. 고래바위도 비밀이고 너럭바위도 비밀이다. 언제든지 마음 내키면 찾아 가는 곳이다. 가서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신고한다.
 
 
2024-04-02
담마다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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