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평범한 자의 비범한 일상

담마다사 이병욱 2024. 6. 4. 11:24

평범한 자의 비범한 일상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하루도 헛되이 보낼 순 없다. 삶의 흔적을 남겨야 한다. 글쓰기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오늘 아침 일찍 집을 나왔다. 아침 여섯 시에 나왔으니 남들보다 하루를 두세 시간 일찍 시작한다. 이런 것도 비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 일찍 나온 것은 마무리작업 때문이다. 밤낮없이 주말 없이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최근 수주 받은 일감이다. 금액은 이백이십팔만원에 달한다. 평범한 일인사업자의 한달 수입에 해당된다. 모두 보시전용통장에 넣고자 한다.
 
어제는 아침 여섯 시 이전에 도착했다. 하루 종일 작업 했다. 저녁에는 열 시 넘어서 귀가했다. 마침내 오늘 아침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고객사 담당에게 납기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일을 끝내고 나면 후련하다. 마치 숙제를 마친 것 같다. 머리 식히고자 명학공원에 갔다.
 
명학공원은 도심의 허파 같은 곳이다. 도심에 축구장 하나 정도 되는 넓이를 가진 공원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놀이터나 다름 없다.
 

 
산책을 하다 보면 좋은 생각이 떠 오른다. 이런 생각을 흘려 보낼 순 없다. 글로서 표현해야 한다. 평범한 자가 글을 쓰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것도 매일 쓴다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글쓰기는 평범한 자의 비범한 일상이나 다름 없다.
 
아직까지 한번도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 반장 한번 해 보지 못했다. 분단장도 하지 못했다. 어디를 가나 중간 정도 했다. 평범하게 산 것이다.
 
신체에 대한 불만이 많다.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일까 약골이다. 팔다리가 가늘다. 그러다 보니 보기가 좋지 않다. 고개가 구부정하다고 자꾸 지적 받는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우월한 것이 없다. 평균 이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늘 중간 정도 위치이다. 평범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같다.
 
지난 시절을 돌아 본다. 직장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국민연금을 타기 위해서 조회 해 본 것이 있다. 국민연금 납부내역에 대한 것이다. 무려 이십 군데이다.
 
직장생활은 이십 년 했다. 1985년부터 2005년까지 기간이다. 이 기간 내에 열두 군데 회사를 전전했다. 직장을 옮겨 다닐 때 공백 기간이 있는데 지역가입자로 전환 되어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하게 되었다. 이것 저것 다 합치니 이십 군데가 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직장도 자주 옮겨 다니는 것 같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은 한 직장에 오래 머물 것이다. 평생직장으로 알아 정년까지 갈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 기간은 다음과 같다.
 
 
1) S사: 1988.01.01-1992.12.30(4년)
2) D사: 1992.12.07-1993.05.31(1년 5개월)
3) T사: 1993.07.09-1995.01.08(1년 6개월)
4) H사: 1995.02.20-1995.08.10(6개월)
5) T사: 1995.08.01-1999.04.19(3년 8개월)
6) 지역: 1999.04.20-1999.08.31(4개월, 납부예외)
7) 지역: 1999.09.01-1999.12.19(3개월)
8) P사: 1999.12.20-1999.12.29(1개월)
9) 지역: 1999.12.30-2000.01.09(1개월)
10) S사: 2000.01.20-2000.09.25(9개월)
11) J사: 2000.10.01-2001.05.30(7개월)
12) U사: 2001.06.18-2002-08.27(1년 2개월)
13) A사: 2002.09.02-2003.04.30(8개월)
14) K사: 2003.05.06-2005.03.19(1년 8개월)
15) 지역: 2005.03.20-2006.05.02(1년 2개월, 납부예외)
16) D사: 2006.05.03-2006.10.30(5개월)
17) 지역: 2007.08.01-2012.11.18(5년 3개월)
18) P사: 2012.11.19-2013.06.30(7개월)
19) 지역: 2013.07.26-2019-12.07(6년 5개월)
20) 연금 지급: 2020.01.08-현재
 

 
첫 직장에서 가장 오래 있었다. 1985년 7월 29일부터 1992년 12월 30일까지 7년5개월 있었다. 수원에 있는 S전기로 대기업이다.
 
국민연금이 시행된 것은 1988년이다. 직장 생활한지 3년 지나자 연금보험료 납입이 시작되었다.
 
이력을 보니 마치 나의 업경대(業鏡臺)를 보는 것 같다. 직장에서 낸 것은 열 세 군데이다. 이 중에서 18번 항 P사는 이름만 빌려 준 것이다. 사업을 하면서 타회사 기술고문 자격으로 이름만 올려 놓은 것이다.
 
납부예외가 두 번 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아마 국민연금을 내지 못한 것 같다. 6번항 4개월은 납부할 처지가 못되었던 것 같다. 15번항 1년 2개월은 실업급여 기간 9개월이 들어가 있다.
 
직장생활을 마무리한 것은 14번항 K사이다. 이후는 개인사업자로서 삶을 살았다. 잠시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고 16번항 D사에서 5개월 일한 바 있다. 18번 항 P사는 이름만 걸어 놓았다.
 
사업을 시작한 것은 15번항 2005년부터이다. 사업자 등록을 해서 일인사업을 했다. 사업이 본격화 된 것은 2007년부터이다. 이후 지금까지 17년동안 개인사업자로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이력을 밝히지 않는다. 특히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지위가 높은 사람들일수록 프라이버시를 중시한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은 내세울 것이 없어서 밝혀도 그만이고 밝히지 않아도 그만이다.
 
과거이력을 보면 일년이 멀다 하고 직장이 바뀌었다. 사십대 전후 5년 동안은 격동의 시대나 다름 없다. 특별히 뛰어난 것도 없고 안정적 직장이 아닌 이유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업환경이다.
 
중소기업은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사업을 하다 잘 되지 않으면 접는 경우가 많다. 앉아 있고 싶어도 있을 수 없다. 능력이 되지 않아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트라우마가 된다.
 
종종 꿈속에서 쩔쩔 매는 꿈을 꾼다.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서 쩔쩔매고 능력을 보여 주지 못해서 쩔쩔 매는 꿈이다. 직장생활을 접은지 19년 되었음에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생활은 1985년부터 2005년까지 20년 했다. 개인사업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19년째 하고 있다.
 
개인사업을 하면서부터 나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나의 삶이 아니었다.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세상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안정적 직장을 가지지 않으면 옮겨 다닐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옮겨 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다. 나이가 사십이 넘어가면 직장 구하기 힘들다.
 
나이가 사십 중반에 이르렀을 때 더 이상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아무도 오라는 데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개인사업을 해야 했다.
 
개인사업자로 산지 19년 되었다. 2005년 이후 사업자가 되면서 나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전에는 일년이 멀다 하고 옮겨 다녔다. 내사업을 하고나서부터는 그럴 필요가 없어 졌다.
 
개인사업을 하면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2005년에 만들고 200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평범한 자의 비범한 일상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평범한 사람인가 비범한 사람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비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지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직장을 무려 열세 번 전전했다. 사업을 하고 있지만 늘 일인사업자에 머물러 있다.
 
2005년 이후 늘 혼자 지내고 있다. 자그마한 사무실을 직장 삼아 집과 왕래하는 삶이다. 그런데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시간부자가 되었을 때 글이라는 것을 쓰게 되었다.
 
글을 쓰면 시간이 잘 간다. 한번 글쓰기 하면 오전이 다 지나간다. 2006년 이후 이런 세월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글이 엄청나게 축적되었다.
 
현재 블로그에는 7,615개의 글이 있다. 2006년 이후 현재까지 18년동안 쓴 글이다. 이를 평균 내보니 일년에 423개 쓴 것이 된다. 하루 한 개 이상 글을 18년동안 쓴 것이다.
 
한번 쓴 글은 버리지 않는다. 귀중한 시간을 투자해서 쓴 글이다. 돈이 되지 않는 글이다. 그러나 시간이 녹아 들어가 있어서 생명과도 같은 글이다.
 
글을 쓴 지 18년 되었다. 어느 시점에 이르렀을 때 책으로 만들고자 했다.
 
2017년 말에 처음으로 책을 만들었다.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 의뢰하여 보관용으로 두 질 만든 것이다. 이렇게 만든 것이 현재 126권 되었다.
 
나의 삶을 돌아 본다. 인생의 변곡점은 사십대 중반이다. 2005년 더 이상 직장을 잡을 수 없었을 때 개인사업을 한 것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되었다. 이전에는 남의 삶을 살았으나 사업을 하면서 내 삶을 살게 되었다.
 
평범한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를 졸업사면 중학교에 가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가듯이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따라 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개인사업을 하면서 삶이 안정화 되었다. 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시간이 있었다. 시간부자가 되었을 때 글을 쓰게 되었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의 비범한 일상이 되었는지 모른다.
 
매일 아침 백권당으로 간다. 2007년 말 입주한 이래 내리 한 장소에서만 17년째 앉아 있다. 세월은 강물처럼, 화살처럼 흘러 갔지만 글은 쌓이고 쌓였다.
 
나는 작가일까?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소설가도 아니고 시인도 아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라고 불러 주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평범한 자의 비범한 삶이 된다.
 
나는 언제까지 이 일을 할까? 생업에는 정년은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는 언제까지 글을 써야 할까? 글쓰기도 멈출 때가 있을 것이다.
 
세월은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쌍윳따니까야에 이런 게송이 있다.
 
 
“세월은 스쳐가고 밤낮은 지나가니
청춘은 차츰 우리를 버리네.
죽음의 자양을 꿰뚫어 보는 사람은
세속의 자양을 버리고 고요함을 원하리.”(S1.4)
 
 
지난 시절을 돌아 보니 청춘은 나를 버린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세월은 중년도 버렸다. 이제 노년을 바라보고 있다.
 
세월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것 같다. 젊은 사람은 중년을 버리고, 중년은 노년을 버린다.
 
젊음에 이른 사람이 나타나면 젊음의 지위를 빼앗기는 것과 같다. 어쩔 수 없이 중년으로 밀려 나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년에 이른 사람이 나타나면 노년으로 밀려난다. 이렇게 자꾸 밀려 나다 보면 어떻게 될까?
 
나는 계속 밀려 왔다. 밀리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언제까지 밀릴 것인가?
 
흔히 인생무상을 말한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보니 꿈만 같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밀리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년, 중년, 노년에게 자리를 내 주다 보면 결국 죽음에 이를 것이다.
 
더 이상 밀리는 삶을 살 수 없다. 밀리기 보다는 축적되는 삶을 살고자 한다. 그것은 글의 축적도 될 수 있고 공덕의 축적도 될 수 있다.
 
지난 시절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 마치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애도하는 것이다. 먹고 마시고 놀고 춤춘 시절을 회상하며 누워 있는 것이다.
 
세월에 장사 없다. 평범한 삶을 살면 세월에 지배당한다. 세월에 밀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세월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인생의 분기점은 사십대 중반이다. 이전의 삶은 직장의 삶으로서 끌려 가는 삶이었다. 이후의 삶은 주도하는 삶이었다. 세월을 묶어 두고자 하는 삶이었다. 세월을 글에 묶어 둔 것이다.
 
글에는 세월이 녹아 있다. 7,615개의 글에 세월을 붙들어 매 두었다. 126권에 책을 보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삶의 결실과도 같다. 이런 것도 평범한 자의 비범한 일상이라 말할 수 있을까?
 
 
2024-06-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