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용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4. 5. 29. 06:37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용기



역사의 주체는 누구일까? 어떤 이는 비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목숨을 걸어야 할 때 지식인들은 숨어 버린다. 그 자리를 평범한 사람들이 채운다.

2024년 5월 26일 장성 김동수 열사 생가에 있었다. 늘 그렇듯이 올해도 추모제에 참석했다. 대불련 출신도 아닌 것이 매년 때가 되면 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낯익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일년 만에 사람들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 했다. 악수도 했다. 나는 왜 이런 행사에 참여 하는가?

2019년 이전까지 광주를 잘 몰랐다. 그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 줄 알았다. 그러나 알면 알수록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항전에 대한 것이다. 마지막 날 도청에서 결사항전 한 것에서 의미를 찾았다.

마지막 날 도청을 지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찾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투항파의 말대로 순순히 도청을 내주었다면 되찾아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지켰기 때문에 찾아 온 것이다.

도청사수 희생은 컸다. 16명이 죽었다. 그 중에 김동수 열사도 있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총을 든 것이다. 무엇이 그들을 이끌었을까? 아마 그것은 항쟁의 정당성일 것이다.

투항파의 말대로 도청을 내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항쟁의 정당성은 상실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희생은 헛되이 되었을 것이다. 항쟁은 폭동이 되었을 것이다.

순순히 내주면 가져 오기 힘들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러나 빼앗기면 되찾아 올 수 있다. 도청도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날 도청에 들어갔다. 죽으러 들어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지켜내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도청을 지키고자 했다. 그들은 물리적 공간을 지키고자 했을까? 아니다. 숫적으로나 무기로나 계엄군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광주정신이다.

그들은 항쟁을 헛되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수많은 죽음을 헛되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목숨 걸고 지켜내고자 한 것은 광주정신이다. 광주정신을 지켜 내고자 결사항전(決死抗戰)한 것이다.

광주정신은 민주화의 마중물이 되었다. 1987년에 민주화항쟁이 있었다. 마침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광주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빼앗겼던 것을 찾아 온 것이나 다름없다. 광주정신은 2016년 광화문촛불의 원동력이 되었다

김동수 열사 생가에서 선물을 하나 받았다. 점심시간에 김혜경 선생이 소주 한 병을 챙겨 주었다. 소주에는 ‘택시운전사’라는 글씨가 써 있다. 소주와 택시운전사는 어떤 관계일까?

 


오늘 소주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광주 지역 향토 소주에 해당되는 ‘잎세’주이다. 잎세주에는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그리고 택시 사진까지 실려 있다. 소주병에 이런 문구와 사진이 실린 것은 처음 본다.

 
1980년 5월 광주와 소주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또한 광주와 택시운전사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먼저 영화 ‘택시운전사’가 떠올랐다. 독일 기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나 더 떠 오른다. 항쟁이 시작 되었을 때 택시운전사들의 집단시위가 떠오른다.


 
사회친구가 있다. 그는 김동수 열사 친구이다. 같은 학교, 같은 학번, 같은 학과 친구이다. 그는 해마다 오월 그날이 오면 살아 남은 친구들과 만난다. 만나서 소주를 마신다.
 
그들은 죽은 친구를 추모했다. 해마다 추모한 것이다. 그들은 나름대로 의식을 치루었다. 첫 잔은 반드시 터는 것이다. “동수야 미안하다.”라며 바닥에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인사불성이 되도록 소주를 마셨다고 한다.
 
살아 남은 자들은 소주를 마셨다. 미안해서 마시고, 부채 의식으로 마셨다. 매년 이맘때쯤 먼저 간 사람을 생각하며 마신 것이다. 그래서일까 광주지역 소주 잎세주에 “1980년 5월,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라는 문구가 실렸는지 모른다.

소주에는 또 하나의 문구가 있다. 참으로 인상적인 문구이다. 그것은 “5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용기를 기억하겠습니다”라는 글씨를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용기,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문구이다. 광주민중항쟁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것 같다. 소주병에 이런 문구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소주에도 오월이 있었다. 신문이나 TV 등 매스컴에서만 오월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주에도 오월이 있었던 것이다!

오월이 되면 소주를 마셔야 한다. 말걸리보다 소주가 더 낫다. 취하는데 있어서 더 나은 것이다. 와인보다 소주가 더 낫다. 소주는 서민이 마시는 술이다.

소주는 평범한 사람들이 마시는 술이다. 그런데 1980년 5월 광주항쟁은 평범한 사람들이 주도 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민중항쟁이다.
 
나라에서는 광주에서 있었던 일에 대하여 광주민주화운동이라고 한다. 이것이 정부의 공식명칭이다. 그러나 광주 그 어디에도 이런 말은 없다. 어디를 가나 광주민중항쟁이라고 부른다. 5.18 묘역에 있는 상징탑에도 광주민중항쟁이라고 되어 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광주민중항쟁은 다른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지식인이 연상된다. 그리고 와인이 연상된다. 그러나 광주민중항쟁은 평범한 사람이 연상된다. 그리고 소주가 연상된다.
 
광주민중항쟁은 평범한 사람들이 비범한 용기를 낸 사건이다. 그 결과 평범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죽어 나갔다.

그 일이 있은지 44년이 되었다. 이제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때의 일을 잊지 않고 있다. 그래서일까 광주사람들은 해마다 오월이 오면 소주를 마시는 것 같다. 소주를 마시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용기를 기억하고자 하는 것 같다.



2024-05-2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