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당고개역 가는 길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4. 6. 17. 10:43

당고개역 가는 길에

 


방금 건너편 5-1번이 지나갔다. 신호등이 바뀌면 탈 수 있는 것이었다. 행운이 따르지 않은 것이다.

행운은 바램이라 말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뜻대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아침에 푸른 신호등만 계속되면 행운을 기대해 본다. 일이 술술 잘 풀릴 것이라 기대해 보는 것이다.

아침에 컵을 놓칠 때가 있다. 깨뜨리기라도 한다면 어떤 일이 불운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부주의한 것도 있고 건강상태가 안좋은 것도 있다. 더구나 아침부터 실수를 연발할 때가 있다. 이럴 때는 마음의 고삐를 바로 잡는다.

오분 기다려서 5-1번 마을버스를 탔다. 안양역까지는 세 정거장으로 십분이 걸리지 않는다. 조계사 갈 일 있을 때 범계역보다는 안양역을 선호한다. 잘 하면 급행도 탈 수 있다.

 

안양역 전광판을 쳐다 봤다. "당역접근"이라는 문자가 떴다. 마음이 급해졌다. 카드를 찍고 잽싸게 달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갔을 때 전철의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 이런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시긴을 무려 십분이상 최대 이십분 절감한 것이다. 버스를 놓친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고도 남는다. 오늘 행운이 따라줄까?

계속 행운을 바랬다. 이번에는 자리에 앉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임에도 서서 가는 사람들이 많다. 아직 아홉시도 되지 않았다. 이 많은 사람들은 휴일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자리를 노렸다. 당고개역까지 가려면 한시간 이상 전철과 지하철을 타야 한다. 오늘은 정의평화불교연대 '정진산행' 모임이 있는 날이다. 지난 1월 이후 6개월만에 참여한다. 한달에 한번 있는 모임이다. 모임날 때마다 행사가 있었다. 오늘 산행은 수락산이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불과 한정거장도 되지 않아 어떤 사람이 일어섰다. 뒤돌아 보다 걸린 것이다. 임산부석이다. 이런 것 고려할 때가 아니다. 재빠르게 차지했다. 체면불구하고 염치불구하고 앉은 것이다. 수행자가 이래도 되는 것일까?

안양역에서 당고개역까지는 먼거리이다. 한시간 반가량 걸린다. 서울역에서 한번 환승해야 한다. 그런데 전철이나 지하철 타는 것은 고역이라는 사실이다. 몹시 힘들고 피곤하다.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기운이 부담스럽다. 더구나 기침하는 사람까지 있으면 긴장된다. 자주 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운칠기삼이라고 한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운이 좋은 사람만 못하다는 것이다. 이때 운은 어떤 것인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축생으로 태어났다면 타자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인간중에서도 선진국에서 태어나는 것은 행운이다. 후진국이라도 가문이 좋은 곳에서 태어나는 것은 행운이다. 전쟁 없는 시기에 태어난 것도 행운이다. 징집되어 총알받이가 되었다면 불운한 것이다.

불교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것도 초기불교이다. 빠알리 니까야가 번역되어 있는 시대에 사는 것도 행운이다. 백년전이라면 어림도 없을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을 접한 것도 행운이다. 오십년전이라면 꿈도꾸지 못했을 것이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행운이다. 삼십년전이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행운에 행운이 겹쳐 여기 있게 되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 오이씨디회원국에 태어난 것, 전쟁없는 시기에 태어난 것, 니까야와 위빠사나 수행이 있는 시대에 사는 것, 그리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시대에 사는 것은 행운이 겹친 것이다.

성공하려면 운이 좋아야 한다. 똑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선택된 자에게 운이 있다. 시범케이스에 걸렸을 때는 불운하다. 어떤 운이 작용할지 모른다.

행복과 불행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마치 장사하는 사람에게 이득과 손실이 일어나는 것과 같다.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도 다반사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행운이 일어나면 안심이다. 불운한 일이 닥치면 괴롭다. 가능하면 행운이 일어나길 바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부처님이 망갈라경(Sn.2.4)을 설한 이유가 된다. 망갈라라는 말은 길상, 행운, 축복, 행복의 뜻이 있다.

고대인도에서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사건을 보고 하루 일과를 점쳤다. 아침에 어떤 것을 봤을 때 상서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마치 푸른신호등이 연속일 때 행운을 바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부처님은 어리석은 자를 사귀지 않는 등 수십 가지 길상의 조건을 말했다. 가르침대로 살면 행운이 함께 힘을 말한다.

성공요인에 운은 크게 작용한다. 그런데 운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압빠마다, 불방일, 게으르지 않음, 부지런함이다. 늘 새김(sati)을 유지하는 것도 행운을 끌어 올 수 있는 요인이 된다. 마치 태양이 뜨기전에 새벽이라는 전조가 있는 것과 같다.

 


지하철 탄지 한시간이 넘었다. 미아사거리역이다. 당고개까지는 몇 개 남지 않았다. 도착하면 익숙한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 다리가 뻐근하게 걸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호연지기를 길러 보고자 한다. 행운이 겹쳐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2024-06-1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