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작은법회

능인선원과의 인연 6 – 불교와의 인연

담마다사 이병욱 2006. 10. 7. 07:36

능인선원과의 인연 6 – 불교와의 인연

 

 

 

능인선원이 불교에 대하여 정식 입문이다.  그전에는 단지 호감 정도 이었다. 입문 전에는 산악회 활동을 많이 하였다.  주로 일요일 당일에만 산행하는 등산과 토요일 밤에 출발하여 일요일 늦게 돌아오는 무박 등산을 하였다. 산행을 하다 보면 유명한 산에는 유명한 절이 있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 쳤으나 자주 다니다 보니 절 구경도 하게 되었다. 구경만 하다가 나중에는 법당에 들어가 참배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불교하고 인연은 오래 거슬러 올라 간다.  중학교를 종립학교에 배정 받아서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귀의나 사홍서원 정도는 알고 있지만 깊이 있게 알지는 못 하였다.  다만 1주일에 한번 불교수업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가르치던 선생님이 매우 인자 하고 얼굴도 편안하게 생겨서 마치 부처님 같다 라는 인상과 부처님오신날 글짓기에서 상을 탄 정도이다. 이와 같이 불교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자연스런 과정이었다.

 

고교때는 미션스쿨에 배정 받았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 하였으나 너무나 배타적이고 공격적이었다. 그들의 교육의 목적은 오로지 학생들을 신자로 만들려는 선교 교육에 있는 것 같았다. 타종교의 비방은 물론이고 오로지 자기네 종교만이 이세상에서 최고인양 교육 시키는 모습이 무리가 있어 보였다. 미션스쿨을 다님으로 해서 기독교의 내부 모습을 너무 적나라 하게 보았다고 할까 이때부터 기독교는 내마음 속에서 무척 거부감을 주는 종교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들의 공격적인 선교가 오히려 역효과를 본 것이다.  종교라는 것이 강제적으로 주입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션스쿨에서 이와 같이 꼼작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강제적인 주입식 선교 정책을 유지 하는 한 계속 불행한 결과를 초래 하는 것은 뻔한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미션스쿨들은 큰 죄를 짖고 있는 것이다.

 

칠팔십년대의 불교는 침체되고 정체된 시기

 

칠팔십년대의 한국불교는 정체기에 해당한다.  기독교가 매10년 마다 배로 성장 할 때에 정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도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등은 모두 기독교의 차지 이었고 이들은 여의도 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통하여 세를 과시 하며 새로운 것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갔던 것이다. 또한 언론에서도 민주화운동에 관하여 호의적인 보도는 기독교가 시대를 주도 하는 시민과 함께 하는 종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 하는데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준 것 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약진할 때 불교는 사회적으로 한 것이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타종교가 약진 할 때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또 한가지는 도심에 포교당 하나 제대로 없어서 접근 조차 할 수 없는 시대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과 같이 마이카 시대가 시작되기 전이라 사람들은 도시의 교회로만 몰리고 접근이 용이 하지 않은 산중에 있는 절에 가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교를 피상적으로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물론 불교가 점집이나 무속인들이 불상을 모시는 것을 보고 미신처럼 볼 수있으나 그것은 이들이 불교의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교리를 받아 들인 것 뿐이다. 이것을 타종교에서는 불교가 마치 절집의 큰집이라든가 사탄의 소굴인양 악의 적인 비방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유치한 발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사실 불교의 교리를 알고 보면 이제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종교중에 가장 완벽에 가깝고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정보화 시대와 딱 맞아 떨어지는 매우 고등한 종교 인 것이다. 하지만 해방후에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는 외국의 것은 좋은 것이고 전통의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것으로 은연중에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사실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마이카 시대가 되고 정보화 시대가 되었다. 산중에 있는 절도 찾아 가기가 쉬어 지게 되었고 정보통신의 발달로 타종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불교의 교리를 많이 전파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 된 셈이다.

 

선지식의 가르침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

 

칠팔십념대에 기독교가 득세하고 있을 때에  기독교 정서와 맞지 않는 강남의 중산층 들은 불교의 가르침과 선지식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르침에 목말라 하던 시기에 지광스님의 포교당 건립은 이들의 욕구를 만족 시켜주는데 불을 댕긴 것이다.  이들 고학력 중산층의 불교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또한 신행생활이나 신행활동도 매우 적극적이다. 매일 새벽기도에 동참 하는가 하면 불사에도 적극 참여 한다. 강남에서 시작된 불교 운동이 전국으로 퍼진 계기가 된 것이다. 실제로 능인불교대학을 벤치 마킹해서 전국에 수많은 불교대학이 세워지는데 일조를 한셈이다.  강남발 신불교 운동인 셈이다.

 

종단이 하지 못하던 일을 능인선원이 해 낸 것이다. 매년 수천명이 불교에 입문하고 수계를 받고 하는 불교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 한것이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타종교의 교세가 왕성해서 밤하늘에 도심을 보면 온통 십자가의 물결이다. 이런 척박한 환경하에서 포교 원력 하나로 타종교의 중심부에서 발생된 포교운동은 강남뿐만 아니라 서울 전지역과 수도권 도시 까지 확산 되었다. 또 하나의 바램이 있다면 지금도 산중에서 수행 정진중에 있는 스님들이 수행의 결과를 이런 척박한 환경의 수도권의 중생들에게 회향 한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도 수도권에서는 산지식의 가르침에 목말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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