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선원과의 인연 3 – 지광스님
지광스님은 능인선원을 만든 원장스님이다. 1984년도에 강남 무지개 아파트 상가 건물에서 전세로 조그마하게 시작 하였다고 한다. 뒤이어 서초동의 상가 건물로 이전하여 크게 성공한 후에 지금의 양재대로변에 새로 법당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렀다.
능인불교대학에서 공부가 본격적으로 시작 되었다. 2004년 봄에 공부 하는기수가 37기 라고 했다. 능인선원과 지광스님에 대하여 잘 모르니 처음에는 편안하게 앉아서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부담 없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필기 하는데 필기도 하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몇 차례 듣다 보니 가슴에 콕콕 박히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후련해 진다고 할까. 묘한 법문의 마력이 작용한 것일까. 하여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빨려 가는 느낌 이었다. 왜냐하면 이제 까지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법문을 들을 기회가 한번도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몇 번 듣다 보니 일주일에 두번 있는 법문은 졸업할 때 까지 빠짐없이 듣게 되었다. 벤처회사에 있다 보면 늦게 끝나는 것은 다반사이고 업무가 끝난 후에도 사적인 일과 비공식적인 업무가 많이 있다. 강의가 수요일과 금요일에 있기 때문에 이 날을 피하여 약속시간을 조정하게 되었다. 새롭게 형성된 모임으로 인하여 생활이 재편 되는 것이다.
지광스님은 강의 중에 입산 동기에 대하여 종종 밝히곤 하였다. 기자 출신인 스님은 1980년도의 광주민주화운동 이라는 격변의 시기에 민주화 운동을 하다 해직되었고 곧바로 수배의 몸이 되었다. 지리산의 산사에서 숨어 지내게 되었고 피신기간 내내 산사에서 지내다 보니 불교에 매력에 빠져 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머리 깍고 정식으로 스님이 되었는데 스님은 말씀 하시기를 무언가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자신을 이곳 지리산의 산사에 까지 이끌어와서 스님이 되게 하지 않았나 하고 말하곤 했다. 다 이유가 있고 뜻이 있다는 말일 것 이다.
스님은 입산 전에 나이가 29살 이었고 미혼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 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강의나 법문시간에 타종교에 대한 교리나 지식이 매우 해박하고 단점과 장점에 대하여도 말씀을 많이 하신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타종교에 대하여 해박 하다 보니 좋은점은 잘 응용해서 써 먹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도를 조직화 하는 것이라든가 조직을 키워서 성장 시키는 것은 타종교를 벤치마킹한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불교의 단점과 고쳐야 될 점에 관해서는 매우 열정적으로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 하기도 한다.
스님의 강의를 듣다보면 불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연예계 등 매우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없다. 끝없이 줄줄 나오는 이야기는 듣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때로는 청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버리는 코메디언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중생을 교화 하기 위한 방편이리라 생각 한다.
이렇게 강의를 편안한 마음으로 부담 없이 듣다 보니 점점 불교가 재미 있어지고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대 됨을 느꼈다. 물론 여기에는 강의를 재미 있게 이끌어가는 스님의 원맨쇼 같은 강의 기술도 크게 작용 하였으리라 생각 한다. 불교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자연히 서적과 인터넷 등을 뒤지게 되었고 특히 과거 지광스님이 저술한 책들은 모두 구입 하게 되었다. 지광스님 이란 분에 대하여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흙속의연꽃(http://blog.daum.net/bolee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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