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궁궐처럼 보이는 제2교구본사 용주사(龍珠寺) – 효와 승무의 고향

담마다사 이병욱 2007. 1. 20. 19:02

궁궐처럼 보이는 제2교구본사 용주사(龍珠寺) – 효와 승무의 고향

 


 

 

용주사( http://www.yongjoosa.or.kr/ )는 조계종의 제2교구 본사이다.  25개의 교구본사중에 봉선사와 더불어 경기도에 있는 2개의 교구본사중의 하나이다. 현재 용주사는 경기도의 남부 즉, 수원, 용인, 안양 등 경기도 남부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80여개의 말사,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경기도는 서울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 중의 하나이다.

서울이 천만, 경기도가 천만, 인천이 250만 합해서 수도권 인구는 2250만이다. 그 중에 한강 이남에 거주 하는 인구는 서울을 제외 하고 인천을 포함해서 거의 천만이 되지 않을까 생각 된다.

 

그런데 이렇게 인구가 많은 경기도 남부를 관할 하는 교구본사가 고작 용주사 하나 밖에 없다. 인구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교구본사가 10개 가까이는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일제시대 때부터 시행 되고 있는 교구본사체제가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 되고 있어서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

 

사실 조계종의 교구본사는 거의 대부분 산중에 있다.  도심에 있는 교구본사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용주사와 같이 주변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도심사찰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경우는 제외 하고 말이다. 그래서 용주사는 접근하기가 쉽다.  전철로도 갈 수 있고 자동차로도 금방 갈 수 있는 곳이 용주사이다.  거기에 가면 산사 분위기도 나고 또 전통사찰이기 때문에 볼거리도 많이 있다.

 

특히 용주사는 정조대왕과 관련이 매우 깊은 사찰이다. 1790년에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건립 하였는데 원래는 통일신라 시대때 건립된 갈양사 라는 절터 위에 지었다고 한다. 그래서 곳곳에 효행관련 기념관과 기념탑 그리고 부모은중경 판본 같은 유물이 남아 있어서 효의 본거지라 부를만 하다.

 

사천왕문을 지나서 조금 들어가면 소공원이 나오는데 그곳에 조지훈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승무가 새겨져 있는데 왜 용주사와 승무가 인연이 있는지는 다음과 같은 자료로 알 수 있다.

 

 

조지훈 시인은 1956년 쓴시의 원리라는 책에서열아홉살 적 어느 가을날, 화성 용주사에서 승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내려와 어느 이름 모를 승려의 승무를 보고는 밤 늦도록 용주사 뒷 마당 감나무 아래에서 넋없이 서 있었다당시 승무의 불가사의한 선율을 20살 되던 다음해 여름에 비로소 시로 지을 수 있었다고 승무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승무(僧舞)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훠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쌀쌀한 한겨울 날씨이지만 햇볕만은 따사로운 하루 이었다. 특히 대웅보전앞 의 오래된 돌계단에 앉아서 햇볕을 쬐고 있으니 마음이 포근하다. 용주사는 다른 사찰들 하고 특이한 것이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산신각이나 칠성각 같은 전통문화와 습합된 전각이 없다는 것과 또 한가지는 사찰의 모습이 궁궐을 닮았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 좌우 대칭으로 지어진 전각들을 보니 궁궐이 연상 된다.  아마도 정조대왕이 경복궁이나 창경궁을 본 떠서 지어놓지 않았나 하는 상상을 해본다.

 

2007-01-20

진흙속의연꽃

 

 

14231

 

 

용주사 입구 사천왕문

 

 

 

 

조지훈 시인의 시비'승무'

 

 

 

 

용주사 효행박물관

 

 

 

 

용주사 현판이 달려있는 출입문

 

 

 

 

1790년에 세워진 천보루.  정면5칸 측면3칸으로 좌우 요사체와 바로 연결됨.

 

 

 

 

천보루 앞에 있는 범종각. 

 

 

 

 

천보루를 통해 들어오면 대웅보전이 나타남. 1790년에 정조가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갈양사터에 건립.  정면3칸 측면3칸의 다포계 팔작집.   전면 좌우 기둥에는 용머리를 둠.  3존불 뒤의 후불탱화는 김홍도가 그렸다고 함.

 

 

 

 

대웅보전 우측에 있는 부모은중경탑과 효행전

 

 

 

 

효행전 우축에 있는 지장전

 

 

 

 

 

지장전 우축에 있는 템플스테이 전각

 

 

 

 

후원에 있는 전강영신대종사 사리탑

 

 

 

 

대웅보전 좌측의 천불전

 

 

 

 

대웅보전 앞의 돌계단.  마치 궁궐의 돌계단이 연상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