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10만배, 경전 10만독, 사경 10만자를 목표로 수행 한다면
해마다 이맘 때 쯤이면 어김없이 졸업과 입학식이 열린다. 때가 되면 다음 기수들을 위하여 물러 가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사람은 이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세상으로 쏟아져 나올 수 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것이다. 다행히도 새로운 희망을 안고 입학이라는 관문을 향해 가는 사람들 도 있겠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채 잊혀져 가는 사람들도 또한 부지기 수 일 것이다.
조류가 나오는 다큐멘타리를 보면 알에서 부화 하여 날기 까지의 과정을 잘 보여 준다. 부하하고 나서부터 살아 남기 위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한다. 최대한 입을 많이 벌려 더 많이 먹어야 하고 일정 기간 안에 성장을 마쳐야 한다. 그리고 운도 좋아야 한다. 불행히도 타 조류한테 공격을 당해서 그들의 먹이감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짧은 기간 안에 무사히 성장 하려면 ‘성장폭발’로 밖에 볼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 가기 전까지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커야 하고 특히 인류가 쌓아온 축적된 지식을 머리 속에 최대한 입력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학교 교육 뿐만 아니라 사교육 등을 동원하여 남보다 지식을 많이 축적하는 레이스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성장레이스에서 이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탈락자도 부지기 수이다. 어찌 학교에서만 이런 레이스가 펼쳐 지겠는가. 좋은 학교를 나오고 조직에 들어가도 레이스는 멈추는 일이 없다. 더 가열차게 가속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레이스도 결국 멈출 때가 누구한테나 오게 된다. 단지 먼저 멈추는가 좀더 나중에 멈추는가의 차이일 뿐이다.
조류 다큐멘타리를 보면서 느끼는 사항은 부화해서 날기 까지의 과정은 자세 하게 보여 주지만 죽는 과정은 보여주는 일이 없다. 과연 이들이 언제 어떻게 일생을 마감하는지 알 수 없다. 반면에 사육되는 가금류는 식용으로 일생을 마감 함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자연에서 자라난 조류는 가금류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삶을 산다고 볼 수 있다. 죽음만큼은 타살되지 않고 자기가 죽을 곳을 찾아서 죽기 때문에 시체를 볼 수 없다.
조류들은 일단 성장해서 날게 되면 생존하게 되지만 일생 동안 경쟁레이스를 벌여야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자원은 한정 되어 있는데 인구는 많다 보니 레이스가 생존레이스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죽음마저도 자유롭지 못하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1/4은 변사체로 발견된다고 한다. 그 변사체중 1/4은 원인불명이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있다.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일생 동안 경쟁하면서 살아온 삶이 마지막으로 갈 때 에는 1/4이 변사체로 발견된다고 하니 어찌 보면 동물보다 더 못한 최후가 아닌가 생각 된다. 미래에는 기대 수명이 훨씬 더 연장 된다고 한다. 품격 있고 존엄한 죽음을 준비 하는 것도 잘사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에는 노후를 위한 수행공동체가 인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즉 오체투지를 10만배하고 경전을 10만독하고 사경을 10만자 쓰는 것을 목표로 수행 한다면 품격있고 존엄한 최후가 되지 않을까.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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