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에 이겼을 때 씨름선수는 포효하지만 스모선수는 무덤덤해 한다.
한화
6바라밀중에 인욕(忍辱)바라밀이 있다. 물론 금강경에 가리왕 이야기가 니오기도 하지만 반드시 참고 견디는 것 만이 인욕은 아닐 것이다. 때에 따라 즐거운 일도 인욕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 기뻐해도 건강에 해롭다는 말이 있다. 너무 기뻐하거나 즐거운 일이 생겼을 때 그 것을 떠올리며 즐기다면 이것도 역시 집착이라 할 수 있다. 잠도 못 이룰 정도로 즐거운 일이라면 건강에 이상에 올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슬픈일이 일어 났을 때 너무 슬퍼 하고 즐거운 일이 일어 났을때는 너무 좋아서 어쩔줄 모른다. 일본과 비교 해 보면 이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오래전에 나고야에 큰 지진이 일어 났을 때 침착하게 슬픔을 안으로 삭이면서 밖으로 표출하지 않은 일본인들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 슬픔에 대한 한일간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기사로 여겨진다. 일본에 스모라는 씨름경기가 있다. 그런데 경기에서 이긴 승자의 모습을 잘 관찰 하면 우리와 다른 모습을 발견 하게 된다. 싸움에서 이긴 승자는 결코 과잉 행동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씨름 선수 같으면 이겼을 때 두손을 번쩍들고 포효 한다든지 하는 과잉행동을 하게 되는 모습을 많이 보지만 일본 스모 씨름선수들에게는 그런 과잉 행동을 볼 수 없다. 패자에 대한 배려인지 아니면 단지 그들의 문화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과도한 감정표현을 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불교에서는 중도를 이야기 한다. 양극단을 지양하라는 것이다.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쾌락도 피해야 하고 또한 극단적인 고행도 도움이 되지 않은 데서 나온 말이다. 그렇다고 중간의 입장을 취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양비론이라 볼 수 도 있겠다. 예를 들어 물컵에 물이 반쯤 들어 있을 때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이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다고 불만을 이야기 할 것이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물이 반이나 남았음에 고마워 할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이런 양자의 입장에 대하여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다. 다만 물이 반쯤 남아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볼 뿐이다. 거기에 어떤 감정을 개입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볼 뿐이다. 따라서 항상 깨인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항상 깨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깨달은 사람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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