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천상에 태어나기 보다 거지라도 좋으니 사람 몸만 받을 수 있도록

담마다사 이병욱 2007. 5. 10. 10:27

 

천상에 태어나기 보다 거지라도 좋으니 사람 몸만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은 마음의 산물이라고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상과 지옥이라는 구별도 알고 보면 마음의 변화 다름이 아니다. 불교와 기독교에서도 천상과 지옥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차이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매우 단순 하다. 2분법적인 논리가 적용된 듯 하다.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으로 구분하여 천국행과 지옥행이 결정 되기 때문이다. 또 한번 천국에 태어나면 영원히 복락을 누리고 살아 간다. 자신의 인생중에 가장 건강이 넘치는 젊고 싱싱한 연령대로 몸이 바뀌어서 영원히 사는 것이다. 어찌보면 모든 사람들이 다 젊은이 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으로 상상 할 수 있다. 반면에 지옥에 떨어지면 영원히 지옥에 갇혀서 빠져 나올 수 없다. 만일 믿지 않은 사람은 모두 지옥행이라 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직한 형벌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불교의 천상은 매우 다양하다. 크게 욕계6, 색계18, 무색계4천해서 총 28천이다. 자기가 쌓은 공덕에 따라 천상행이 결정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시와 인욕바라밀을 열심히 닦은 사람은 욕계의 도리천이나 도솔천등 6천중에 하나에 태어날 확률이 높다. 욕계 하늘나라는 인간세계와 똑같이 성이 있어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기를 수 있다. 단지 인간계와 차이가 있다면 수고 없이 모든 욕망을 다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색계14천은 지계와 선정바라밀을 열심히 닦은 사람이 갈 수 있는 하늘나라이다. 그런데 이 색계는 성이 없다. 남녀 구분이 없는 것이다. 선정삼매의 즐거움만 있는 곳이다. 결혼 하지 않고 선정수행을 닦은 스님들이 갈 수 있는 곳이라 보면 이해 하기 쉽다. 무색계는 욕망도 놓아 버리고 육체도 놓아 버린 오직 정신적인 기쁨만 있는 세계이다. 그런데 이런 천상세계도 인연이 다하면 내려 와야 한다. 따라서 불교는 천상세계에서 태어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반야의 지혜를 닦아서 다시는 생사윤회를 반복하지 않는 열반(니르바나)에 이르는 것이다. 지옥도 마찬가지이다. 업이 모두 소멸되면 지옥에서 벗어 나올 수 가 있다. 또한 지장보살 같은 분은 모든 지옥중생이 사라질 때 까지 성불하지 않고 구제 하겠다고 발원 하는 것으로 보아 타종교 보다 더 인간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알고 보면 기독교, 이슬람교등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교가 불교에서 말하는 욕계6천정도의 복락을 목표로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수행하는 전통이 없기 때문이다. 수행전통이 없고 오로지 신행만 있다면 천국에 태어나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될 것이다. 그것도 영원히 사는 것이다. 그러나 수행전통이 있는 불교는 천상에 사는 천신들도 중생으로 간주 한다. 그들도 구제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천상에 태어나면 즐거운만 알고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성불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다고 한다. 따라서 천상에서 즐거움만 추구하다 쌓은 공덕을 다 까먹으면 곧바로 지옥행이라는 것이다. 마치 은행에 잔고가 줄어드는 원리와 동일하다. 더 이상 공덕을 쌓지 않고 찾아 먹어 버리면 잔고가 바닥날 뿐더러 마이너스통장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 때 인간세계에도 태어나지 못하고 곧바로 지옥행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세계야말로 성불하기에 가장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지옥은 고통에 겨워서 수행을 할 수 없고 천상은 너무 즐거워서 수행을 게을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현재 잘 나간다고 좋아 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가난하다고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다. 새로운 공덕은 쌓지 않고 써 버리기만 한다면 결론은 뻔 하지 않은가. 그래서 티벳스님들이 발원 하기를 천상에 태어나기 보다 거지라도 좋으니 사람몸만 받을 수 있게 태어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2007-05-1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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