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둑카(dukkha), 그 고통의 뿌리

담마다사 이병욱 2007. 5. 1. 10:40

 

둑카(dukkha), 그 고통의 뿌리

 

 

요즘에는 원래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인가 보다. 거리의 간판에서 TV나 라디오에서 또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단어가 영어 그대로의 발음을 사용 하는 것이 허다 하다. 심지어는 광고문안에서부터 거리의 간판까지 외국어로 표기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도 시대의 흐름과 무관 하지 않을 것이다.

 

불교용어 중에서도 원어표기의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불교의 경전이 대부분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보통사람은 접근이 쉽지 않다. 또 한자는 표의 문자로서 글자 자체가 이미지이다. 따라서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반면에 범어나 팔리어로 된 경전은 논리적이고 뜻이 분명하다. 최근에 범어나 팔리어로 된 경전번역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원어 그대로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의 이름은 고유명사이므로 의역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원음으로 불러야 한다. 왜냐 하면, 고유명사이기 때문이고, 현지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고 있으며, 세계의 학계에서도 모두 소리 값으로 표기하기로 약속하고 있으므로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종교의 교주나 그들이 모시는 신의 이름인 경우는 더욱이 원어에 충실해야 한다. 불교에서 비로자나부처님이 있다. 삼신불중에서 진리의 부처님인 법신불을 말하는데 우주 그 자체를 뜻한다. 비로자나'라는 말도 산스크리스트어의 바이로차나((Vairochana, 大日如來)’의 음을 그대로 가져온 경우이다. 이슬람교의 경우는 그들의 창조주를 알라라 부른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경우 창조주를 하나님또는 하느님이라 부른다. 사실 하느님또는 하늘님은 우리나라에서 예전부터 사용해 오던 고유명사이다. 이런 고유명사는 개인에 있어서 사람이름과 같다. 알고 보면 자기 아버지 이름을 부르지 않고 남의 아버지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이 매우 어색한 것이다. 따라서 바이블에 나와 있는 고유명사인 야훼여호아로 부르는 것이 원칙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둑카(dukkha) 라는 말도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 하였다. 하나씩 둘씩 사용하다 보니 익숙한 용어로 정착 하는 것이다. 한자어로는 고()로 표현 되지만 함축된 의미는 다양하기 때문에 단순히 하는 것보다 둑카라 표기 하는 것도 바람직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초기에 한역할 때 프라즈냐를 한자어인 지혜로 번역하다 그 뜻이 너무 미묘해서 원어와 가까운 발음인 반야로 바뀌듯이 말이다. 둑카라는 용어의 사전적 의미는 '슬픔', '고통', '불완전함', '정신적인 고뇌'라는 뜻이다. 둑카는 모든 존재의 참된 성질로서 사실 불교는 이 라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고의 실재(), 고의 원인(), 고의 소멸( ), 고를 없애는 길()사성제는 부처님의 첫 설법인 초전법륜(初轉法輪)의 주된 내용인 것이다.

 

둑카가 단순히 육제적 또는 정신적으로 고통스럽다 라는를 의미 하지는 않는 말이다. 고통스럽다 라기 보다 단순히 불편하다는 라는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즉 가진 것이 없어서 또는 쾌락의 부재로 인한 불편함이 있을 수 있으며, 애착하거나 미운 사람과 함께 있는 것도 불편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고통과 불편함을 아울러서 둑카라는 용어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시대에 따라 지혜라는 말 대신 반야라는 고유명사가 대세를 차지 하듯이.

 

200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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