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여래의 성품이 일어난 것

담마다사 이병욱 2008. 2. 9. 19:14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여래의 성품이 일어난 것

 

 

허공계가 다해야 나의 예배와 공경도 다하겠지만,

허공계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이 예배와 공경도 다함이 없다

 

 

 

 

 

날지도 못 하는 새

 

향을 피울때 냄새가 그윽하고 좋아 보이지만 조금 지나면 이내 둔감 해져서 처음에 느꼈던 좋았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강렬하게 반응 한다. 사람들은 무언가 성취 하였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 순간이 지나면 곧바로 권태로워 진다. 행복감을 느낄 뿐이지 진정한 행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은 상황이 다르다. 고통이 계속 되면 될 수록 더욱더 고통스러워 진다는 것이다.

 

새는 하늘 높이 날아야 새라고 부른다. 그러나 날지도 못하는 새가 있다. 날개는 있으되 아무 쓸모 없게 퇴화된 날개는 나는 데 있어서 무용지물이다. 또 날개가 꺽인 새도 날 수가 없다. 새장에 갇혀 있는 새는 날수는 있지만 자유롭게 날 수 없다. 날아야 되는 새가 날지 못하면 불행한 것이다. 자유롭게 나는 새는 나는 것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응당 나는 것으로 생각 하기 때문이다. 마치 호흡을 하면서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행복한 상태를 감지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의 산소가 부족하면 고통을 느낀다. 그 고통의 특징은 점점 더 가중 된다는 것이다.

 

사람 몸 받기가 힘들다고 한다. 흔히 ‘눈먼 거북이’ 비유를 많이 애용 하곤 한다. 힘들게 몸은 받았지만 날지도 못하는 새와 같은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TV를 보면 온통 행복한 사람들만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날개 꺽인 새처럼 하루 하루를 보내는 수 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있다는 것이다. 일부 소수 만이 행복감을 느끼고 극 소수만이 진정한 행복을 누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날개가 있어도 날수 없는 날개를 가졌거나 날개가 꺽인 새처럼 고통 스럽게 살아 간다. 그 고통은 생이 다 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화엄경의 클라이막스는

 

화엄경의 클라이막스는 선재동자가 보현보살로 부터 10가지 큰 행원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그 첫째가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모든 부처님은 ‘삼세제불’을 말한다. 과거의 부처님과 현재의 부처님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부처님에게 까지 예경 하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덧 붙여 설명 하기를 “허공계가 다해야 나의 예배와 공경도 다하겠지만, 허공계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이 예배와 공경도 다함이 없다” 라고 말한다.

 

우리는 단순히 부처님만을 예배하고 공경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화엄경에서는 미래의 부처님까지 예경 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허공계가 다 할 때까지 하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중생이 성불 할 때 까지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 새처럼 잘 날아 다니는 사람들은 물론 날지도 못하는 날개를 가진 새와 같이 사는 사람들 모두가 미래의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이들이 허공계를 다해야만 나의 예경도 끝난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중생이 성불 할 때까지 결코 혼자만 가지 않겠다는 어마어마한 다짐이다.

 

화엄경은 매우 어렵고 난해한 경전

 

화엄경은 매우 어렵고 난해한 경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제일 먼저 21일 동안 설 하였지만 알아 듣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근기가 낮은 중생들을 위하여 12연기와 사성제 부터 설하였다고 전해져 온다. 소승에 대한 대승경정의 우월성을 전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 된다. 화엄경의 어렵고 난해한 사상이 바로 법신사상이라 여겨진다. 우주의 삼라만상이 다 여래의 성품이 일어난 것 이라는 것이다. 즉 우리와 우주는 한 몸이고 한마음 인 것이다. 이것을 노래한 유명한 게송이 ‘법성게’이다.

 

법성게에서는 ‘제법은 법성이 드러난 것’ 이라고 말 하고 있다. 즉 법성과 제법은 ‘불일불이’의 관계라 볼 수 있다.  법성은 ‘불성’이라고도 말 할 수 있고 여기에 인격을 부여 하면 ‘법신’이 된다. 법신이 ‘비로자나’ 부처님인 것이다. 보현행원품에서 모든부처님에게 예경 하라는 말은 곧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한 몸체임을 선언 하는 것이다. 비록 날개는 가졌으되 날지는 못하는 새, 날개가 꺽인 새, 그리고 새장에 갇혀 있는 새들도 언젠가는 날아 가는 날이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시간이 허공계가 다 하는 우주적인 시간일 지라도 말이다. 화엄경에서는 그 미래의 부처님들이 바로 우리 옆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예배하고 공경 하라고 말 하고 있다.

 

 

200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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