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인작은법회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리산 토굴로 떠난 어떤 선지식

담마다사 이병욱 2008. 5. 12. 09:02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지리산으로 떠난 어떤 선지식

 

 

 

 

 

지리산 토굴에서 수행 하던 선지식을 만나다

 

부처님법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두고 맹구우목(盲龜遇木)과 같다고 한다. 눈먼 거북이가 백년에 한번씩 물위로 머리를 디 미는데 마침 그때 나무가 지나간다. 그런데 그 나무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 구멍으로 머리가 나올 확률을 말하는 것이다. 수 많은 종교가 있고 수 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제대로 된 가르침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선지식을 만났다. 지리산에서 수십년간 수행 하다 뜻이 있어 서울에 오게 된 스님이다. 불교교양대학 동기되는 법우님이 음식점을 하고 있다. 사찰 가까이 있다 보니 가끔 스님들도 많이 찾는 모양이다. 그 법우님께 음악CD를 준적이 있다. 만트라 음악중에서도 베스트를 모아 한장의 CD로 만들었다. 그 법우님도 음악이 좋았던지 식당에서 틀어 놓고 자주 듣는 다고 한다. 한번은 그 스님이 음악이 매우 좋다고 하면서 구해 줄 수 없겠느냐고 하면서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스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지리산 토굴에서만 생활해서 그런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듯 하다. 승복은 누더기라 할까 덕지덕지 천조각을 대어 기워 만든 것 이지만 깨끗해 보였다. 상호는 기품이 넘치고 풍채는 우람했다. 범상치 않은 인상이다. 따로 모임 장소가 없어서 그 식당을 이용하여 법문을 듣기로 하였다. 그런데 바쁜 다들 사정이 있어서 인지 그 날에 모인 인원은 식당의 법우님을 포함해 고작 3명이었다. 그 것도 한 사람이 올때 까지 한참 기다린 후에 법문이 시작 된 것이다.

 

스님이 하는 이야기

 

스님이 하시는 이야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경지가 이해 되지도 않았다. 분별망상을 내려 놓고 본래청정 자리를 보라는 것이다. 지금 보고 있는 온갖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 즉 의식을 함으로써 대상이 생기고 거기서 시간과 공간이 생겨 나고 생사윤회가 시작 된다. 따라서 의식하지 않는 세계인 무의식 즉 무심을 보아야 한다. 무의식의 경지는 의식을 다 포괄 하고 있기 때문에 시방삼세가 다 한자리에 있고 본래 청정한 자리라 한다. 그런데 그런 경계가 반드시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을 많이 쌓는 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선방에서 앉아 있는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스님은 많이 비우라고 이야기 한다. 방에 책만 잔뜩 쌓아 놓은면 그 책에서 말하는 분별로 인하여 본래의 것을 보지 못한다고 한다. 말하는 순간 이미 개념화 형상화 되어서 본래의 취지하고는 멀리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알고 있는 사항을 내려 놓으라고 이야기 한다. 철저 하게 비워 버려야� 본래청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행자시절 이야기도 하였다. 3년간 어느 스님의 시봉을 들면서 행자 생활을 하면서 참선부터 배웠고 또 3년간은 교학을 배웠지만 공부가 진척이 되지 않아 오대산에서 범어사로 걸어서 한달 반동안 내려 갔다고 한다. 어느 날 휘엉청 밝은 기분좋은 달밤에 산길을 가다가 홀연히 찰나적으로 경계가 열리더라는 것이다. 그전에 알음알이로 알았던 지식으로 인하여 공부가 진척이 되지 않아 모두 비워낸 상태에서 경계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까지 의문 났던 모든 사항이 단 한순간에 다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 당시 자신이 체득한 경계에 대하여 누군가에 의하여 점검 받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현실을 따르자니 자신이 본 경계를 부정 하는 꼴이 되고 자신이 본 경계를 따르자니 현실을 부정 하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지리산 토굴로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 된다.

 

 

뜻을 펼치지 못 한 채 다시 지리산으로

 

이번에 서울에 머문 기간은 3개월 이었다고 한다. 어떤 인연으로 인하여 서울에 와서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펼치려고 하였으나 이상으로만 그치고 만 셈 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이틀 앞두고 지리산에 내려 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그 동안 시봉 하던 분들 두분과 식당법우님 이렇게 4명이 앉아서 법문을 들었다. 그 것도 식당 한켠에 있는 거우 한두사람 누을 수 있는 비좁은 공간에서 였다. 홀에는 술손님들이 있어서 떠들썩 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자신의 뜻이 펼쳐 지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아쉬워 했다. 다른 선원에서 법문을 할 기회도 알아 보았으나 여의치 않았나 보다. 그렇지만 처음에 3명으로 시작한 법문이 이제 회향법문 때는 4명으로 늘었지 않았느냐 하면서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스님이 하는 이야기는 누구나 부처님의 경지에 다가 갈 수 있다고 강조 한다. 오히려 많이 배우고 많이 아는 것이 더 방해 될 수 있다고 한다. 몇 십년 선방에 앉아 있다고 그 경계에 간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비워 낸후 분별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인 다면 범부들도 부처님의 경지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금강경의 한구절을 이야기 한다. 그 유명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이다. 바로 약견제상비상 하면 여래의 경계를 볼 수 있다고 강조 한다.

 

스님의 말하는 경계가 어떤 경계인지 알 수는 없다. 또 말씀 하신 내용을 어느 정도 받아 들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러이러 하리라고 생각 되지만 머리로 이해 하는 것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마음을 비우고 분별망상을 내지 않는다면 홀연히 보게 된다는 그 경계. 설령 그 경계를 본다고 할지라도 일상생활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현재 하고 있는 열심히 하고 열심히 살면 된다는 것이다. 스님은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모인분들이 여비에 보태 쓰라고 봉투를 내어 놓았다. 그래 보았자 결혼식때 축의금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본 스님은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스님은 이제 지리산의 자신이 기거 하던 토굴에 도착 했을 것이다. 아무도 찾아 오지 않은 심산유곡이라 한다. 언젠가 인연이 되면 도반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 하고 식당문을 나섰다.

 

 

 

 

2008-05-1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