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수경스님 "대운하중지 하지 않으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체투지 하겠다"

담마다사 이병욱 2008. 5. 27. 10:07

 

수경스님 "대운하중지 하지 않으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체투지 하겠다"

 

 

 

 

 Photo, cafe213.daum.net/

 

 

 

성직자들이란

 

TV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관한 특별프로그램을 보았다. 과거 민주화투쟁시절에서 부터 삼성비자금비리까지 사제단의 활약상을 보여 주고 정의를 위하여 적극적으로 현실에 참여 하는 성직자의 인간적인 모습도 보여 주었다. TV에 나오는 사제들은 수염을 기른 사람도 있고 머리가 장발인 사람도 있다. 일반인들이 입는 일상복을 입은 모습을 보면 일반인이지 사제인지 구분이 갈 수 없다. 다만 사제복을 입었을 때 사제인줄 알 정도이다.

 

반면에 스님들은 겉 모습을 보면 일반인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먼저 머리를 깍은 모습이 가장 큰 차이이고 입는 옷에서 또한 큰 차이를 느낀다. 스님들이 일반복을 입었을 지라도 때 삭발 하였기 때문에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한편 목사들은 외관과 복장면에 있어서 일반인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종교인들을 성직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스런 직업에 종사 한다는 의미 일 것이다. 종교인도 하나의 직업이라 한다면 성직자라고 불러 주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스스로 성직자라고 불러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목사들일 것이다. 목사는 일종의 직업이라 보아야 한다. 일반인들과 똑같이 결혼도 하고 재산도 소유 하기 때문에 일반인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천주교의 신부와 같이 결혼도 하지 않고 불교의 스님과 같이 아예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삭발한채 승복하나만 입고 사는 사람과는 다른 종교인이다. 그런데 아니러니 하게도 신부나 스님보다도 먼저 성직자라고 주장 하는가 하면 성직자라고 불러 달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천주교에 호의적, 개신교에 비판적, 불교에 비하적인 매스콤

 

TV나 신문등 매스콤을 보면 천주교에 대하여 대단히 호의적인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 교리자체가 훌륭해서라기 보다 사회각계각층에 골고루 퍼져 있는 오피니언 리더 덕분일 것이다. 다종교 사회에서 가장 개신교와 불교 사이에서 중간지대에 있으며 완충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보여 진다. 그런 점이 작용 해서 일까 유독 정치인에게서 천주교신자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 매스콤에서 조차 긍정적인 면으로 보도가 나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천주교가 개신교에 비하여 교리적으로 훨씬 유연 한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구원관에 볼 수 있다. 타종교에도 나름대로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극히 일반적인 상식을 인정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조건부이다. 언젠가는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돌아 오게 될 예비그리스도인으로서이다.

 

매스콤이 천주교에 대하여 우호적인 것에 반하여 불교에 대해서는 비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개신교에 대하여 비판적인 것 하고는 또 다른 이야기 이다. 드라마를 보게 되면 불교에 대한 비하적인 표현을 많이 볼 수 있다. '중이 제머리 못 깍는다' '염불보다는 잿밥'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다. 다른 표현이 있음에도 불구 하고 굳이 불교비하적인 표현을 쓰는 이유는 무었일까. 지역비하적인 표현과 함께 불교비하표현은 결국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자의 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일 제작자가 불교인이었다면 그런 표현을 허용 했을까.

 

인재불사를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 한다. 똑 같은 표현을 두고 굳이 불교비하적인 표현을 쓰는 이유는 인재가 그 만치 없기 때문이다.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많이 일으켜도 보도 되지 않고 넘어 가는 가 하면 사이비승려가 벌이는 행각에 대해서는 불교전체의 일인양 매도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 또한 인재 부족에서 오는 현상 일 것이다. 사소한 것을 트집잡아 불교 전체를 매도 하는 현상을 종종 볼 수 있다.

 

쇠고기와 대운하, 서구물질문화세력의 작품

 

쇠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이제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 동안 청계광장에서 촛불축제형식으로 진행되던 것에서 이제는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요구를 들어 주지 않고 무시전략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명동성당이 단골 시위 장소 이었다. 그러나 시대와 함께 시위장소도 바뀌는 모양이다. 민주화투쟁시대에 있어서 시위장소는 명동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민주화가 완성 된 시점에서 명동성당의 위치는 감소한 느낌이다. 이번 촛불시위는 바로 생명과 관련된 사항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관련하여 대운하 역시 빼 놓을 수 없다. 대운하 건설로 인하여 자연환경이 파괴 될 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사는 수 많은 생명들의 안전도 위협 받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대운하 건설로 식수도 오염 될 수 있어서 곧 생명의 문제로 직결 되지 않을 수 없다. 주로 사찰이 산중에 있는 불교로 보아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에 대한 반대표시로서 수경스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103일간에 걸쳐서 국토순례를 하고 대운하 건설의 부당성을 알린바 있다.

 

쇠고기나 대운하 모두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현정부의 작품이다. 생명과 환경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는 정부라 보아야 할 것이다. 구성원들 대부분이 개신교 신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소중하게 여기지만 사람외의 생명에 대하여는 예외로 생각한다. '살인하지 말라'는 있어도 '살생하지 말라'는 없는 것이다. 국토는 길을 내고 굴을 뚫어서 물류가 효율적으로 흐르는 것 만 생각 하였지 그 안에 어떤 생명이 살고 있는지에 대하여 전혀 개념이 없는 사람들만 모아 놓은 것 같다. 서구물질문화에 물든 사람들만 있어서일까 동양의 전통과 문화와 생명에 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 진다.

 

생명운동, 서구문화세력과 전통문화세력의 한판 대결의 장

 

이제는 환경의 시대이고 생명이 화두가 되는 시대이다. 생명과 환경에 대하여 무시하는 정부에 대하여 의식있는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고 있다. 과거 민주화시대에 명동성동을 중심으로 하여 천주교와 정의구현사제단이 역할을 하였다면 이제는 불교가 역할을 하여야 한다. 특히 생명과 환경에 관해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 하여야 한다. 불교의 계율중의 하나가 '살생하지 말라' 이다. '살인 하지 말라'가 아니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죽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살처분이니 광우병 이니 모두 생명과 관련된 문제이다.

 

대부분의 사찰은 산중에 있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물류라는 명목으로 산허리가 잘리는가 하면 구멍이 뚫리기도 한다. 산중에 있는 사찰에 당장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밀어 붙이기 식으로 하여 얼마나 많은 산허리가 잘려나가고 환경이 오염 되었는가. 자연은 그대로 놓아 두었을 때 가장 자연스럽다. 서구물질문화세력에 의한 개발논리로 속수무책으로 자연이 유린 당하였다. 대운하추진이 가장 정점에 있다고 본다. 서구문화세력과 전통문화세력의 한판 대결의 장이 대운하건이다.

 

수경스님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체투지 하겠다"

 

수경스님은 하 인터넷뉴스에서 "앞으로 대운하을 계속 추진 하게 된다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체투지를 하며 걸어 가겠다"고 말하였다. 그 것도 5-6개월 걸려서 하겠다는 것이다. 삼보일배도 쉽지 않은데 오체투지를 검토 하고 있다는 것이다. 티벳에서 하는 그 전체투지을 말하는 것이다.

 

21세기는 과거 20세기와 많이 다른 시대이다. 먼저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터넷 보급이 되었다. 네트워크만 연결 되어 있으면 전세계 어느 곳이든지 접속 할 수 있다.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삽시간에 모든 정보가 전달 되는 시대이다. 청계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디지털 게릴라'라는 표현도 쓰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의 관심은 생명과 환경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과거 명동성당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민주화에 대한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면 이제는 불교가 역할을 할 때이다. 생명과 환경은 불교와 너무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삶의 연속이고 당면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도시에 있는 교회나 성당은 현실정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여당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산중에 있는 사찰은 현실정치세력과 무관한 야당의 입장이다. 자연이 파괴되고 환경이 악화 되면서 생명이 위협 받고 있는 현실에서 불교가 이제 시대의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2008-05-2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