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아상(我相)이 센 사람, 크게 깨져야 크게 깨닫는다

담마다사 이병욱 2008. 5. 27. 17:43

 

크게 깨져야 크게 깨닫는다

 

 

지금 이 행복이 영원히 계속 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지금 이 고통 또한 영원히 지속 되리라는 법은 없다

 

 

 

 

  

10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은 나일까

 

나는 누구인가. 흔히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그 나가 싫어 질 때도 있다. 특히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이다. 그럴 때면 성질도 내고 난동을 부리기도 한다. 그 때 당시에는 몰랐지만 차분할 때 생각 하면 과연 그 때 난동을 부리던 사람이 나 이었을까 생각 하게 된다. 범죄자의 대부분은 평소에는 매우 착하다고 한다. 저런 착한 사람이 어떻게 저런 흉악한 사건을 저질렀을까 의심 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범죄자 자신도 말하기를 내 안의 어떤녀석이 나서서 일을 저질렀다고 하는 영화의 한줄거리도 있다. 이럴 경우 착한 나가 숨어 있었던 또 다른 나에게 잠시 자리를 양보 한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과 함께 살아온 흔적을 가지고 있다. 기억이라는 메커니즘에 의하여 나의 연속성이 유지 되는 것이다. 10년전의 나와 20년전의 나를 떠 올리리는 것은 그 때 당시의 사건을 떠 올리기에 가능 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 당시의 나와 지금 이순간의 나는 정말로 같은 사람일까.

 

사람의 세포는 100일이 지난면 완전히 다 바뀐다고 한다. 몸이 현상을 유지 하는 것 같이 보여도 그 안에서 생멸현상이 이 순간에도 지속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0년전의 나와 20년전의 나는 육체가 바뀌어도 수십번 수백번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정신현상은 어떤가. 한순간도 정신이 멈추지 않은 경우가 없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일초에 7번 생각이 나왔다가 사라진다고 한다. 그 생각 중에는 미쳐 인식 하지 못하는 생각이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진다고도 한다. 아마 범죄를 저지를 경우 바로 이런 순식간에 일어나는 생각과 공명했을 것이다. 또 좋은 아이디어 역시 순간적으로 생멸하는 생각과 공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몸도 변하고 마음도 시시각각 변하는 나는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 단지 기억만 가지고 나라고 주장 하는데 그 기억도 때에 따라서 왜곡 되고 편집 될 수 있다고 하는데 진정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아상(我相)이 무지하게 센 사람

 

가끔 아상(我相)이 무지하게 센사람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일 수록 자존심이 세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몰아 가려고 한다. 남의 이야기에 좀처럼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부딪치게 되어 있다. 자존심이 상해서 기분을 나쁘게 해서가 주된 이유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한번 되게 깨지고 나면 깨닫게 되는 수가 있다.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자존심이 무너진 순간 다시 한번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 실연을 하였다든가 시험에 떨어졌다든가 직장에서 퇴출 되었다는가 또는 몸이 많이 아팟다든가  하였을 때이다. 유행가 가사 처럼 아픈만큼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이 무상함을 깨닫게 된다.

 

깨닫는다 라는 말은 수행자의 전용용어는 아니다. 일상인들도 살아 가면서 순간순간 깨닫는 경우가 많이 있다. 작은 깨달음 일지라도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크게 깨져야 깨우칠 수 있을 것이다. 안락한 일상에서 큰 변화 없이 생활 하는 사람들은 크게 깨달음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깨질 것이 없다면 더구나 그렇다.

 

사람들의 표정은 사람들의 생긴 얼굴만큼이나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이세상에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사람이 없듯이 표정과 개성 또한 다 제각각 다르다. 생전 고생 한번 해보지 않고 평안 하게 지낸 얼굴 하고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겪고 난 얼굴하고는 분명 다르다. 마치 희고 고은 손과 마디 마디가 갈라진 거친 손과도 같은 차이 일 것이다. 맑은 얼굴과 희고 고은 손을 가진 사람이 한번 크게 깨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인생은 너무 길기 때문이다.

 

무상 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깨달은 사람은 깨달은 사람을 알아 본다고 하였다. 그 것이 작은 깨달음이든 큰 깨달음이든 한번 깨지고 나면 깨닫게 되어 있다. 그리고 표정으로 나타난다. 어느 깨달음이든지 깨지고 나면 무상함을 느낀다. 항상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지금 이 행복이 영원히 계속 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지금 이 고통 또한 영원히 지속 되리라는 법은 없다. 모든 것이 무상 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 아닐까

 

아직 깨닫지 못한 말간 얼굴은 언젠가 한번 크게 깨지게 될 날이 있을 지 모른다. 더구나 나라는 아상이 너무 강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매우 가혹한 것 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번 크게 깨지고 나면 왠만한 작은 깨짐에는 끄덕 없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지는 것을 두려워 한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일부러 깨지는 사람들이 있다. 크게 깨우치려고 노력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들은 이런 사람들을 수행자라 부른다.

 

 

 

2008-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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