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俗)의 세상에서 성(聖)의 세상으로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뉴스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특별한 사건이 있어야만 가능함을 말하고 있다. 인분뿌리기 사건이 있었다. 자신의 주장이 전혀 먹혀 들어 갈 것 같지 않자 기자 회견장에서 주변에 인분이 든 패트병을 휘둘러서 기사화 된 사건이다. 기사화 되기 위하여 자신을 알리는 행위는 눈물겨울 정도이다. 그런데 너무나 쉽게 기사화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다. 국민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사람들이다.
세례명(Christian name) 과 법명(法名)
종교에 귀의 하면 다른 세상에 살게 된다. 속(俗)의 세상에서 성(聖)의 세상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즉 다시 태어 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름도 다시 지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기독교에서는 세례명이고 불교에서는 '법명(法名)'이라고 한다.
세례명에 대하여 인터넷 사전을 사전을 들여다 보았다.
세례명 [Christian name]
세례명(洗禮名)은 로마 카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 세례성사를 집전하면서 주어지는 이름이다. 성공회에서는 신명이라고 한다. 이러한 세례명 또는 신명의 목적은 성인들을 본받으라는 의미가 있다.
법명[法名]
중이 되는 사람에게 종문(宗門)에서 지어 주는 이름.
국어사전에 '중'이라는 비하적인 표현과 함께 짤막 하게 나와 있다.
천주교에서 세례명을 받듯이 불교에서도 불교에 귀의한 신자들에게 대승보살계와 함께 법명을 부여 한다. 알고 지내는 법우들의 법명은 여자신도의 경우 '대길행, 법성화, 수성행, 관음성'등과 같이 세자로 구성 되어 있고 남자신도의 경우 '청전 혜과 법진 성공'등과 같이 주로 두자로 구성 되어 있다. 같은 법명을 가진 경우 법명앞에 성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즉 '차법성화 김법성화' 하는 식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본래 이름보다 법명을 부르기를 더 좋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경우 본명보다 법명이 더 기억 나기 때문에 그 사람의 얼굴을 보면 법명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불교의 법명이 우리나라 말의 한자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기독교의 세례명은 전부 외국어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로마카톨릭의 성인이름이 대부분을 차지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동안 수 많은 성인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 하는 성인의 이름을 부여 받는 것에 자랑스러워 하고 그 성인을 닮으려고 노력 하라는 일환에서 일 것이다. 여자신도들 같은 경우
뿌리깊은 서양숭배사상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 하였을 때 우리나라도 무수히 많은 성인이 탄생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조선말에 천주교 탄압으로 희생된 신자들이 모두 성인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들이 세례명을 받으면 거의가 외국성인들의 이름을 받는데 우리나라 성인들의 이름을 받지 않는 것을 보면 으아스럽다. 아직까지 외국것을 좋아 하고 외국문화를 숭배 하는 현상이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마리아 주리아 베네딕도 요한'등의 세례명 외국성인들의 이름이다. 그리고 이들 이름들이 세례명으로 사용 되고 있다. 얼굴은 한국인데 이름은 외국이름인 것이다. 만일 외국인이 이런 사실을 안다면 어떻게 생각 할까. 자신과 종교가 같다면 동질성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외국문화를 숭상 하는 사대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불교의 법명은 철저하게 우리식 이름이다. '법성화 자비심 성공'과 같이 한글자 한글자에 뜻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민족자존이 있고 품격있는 이름이다.
광우병, 환경, 에너지등 사회 전분야에 있어서 혼란을 겪고 있다. 미래의 전망 또한 밝지 않다. 이제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 한다. 과거의 서양의 문화와 사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이다. 서양의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에 대하여 사람들이 인식을 하기 시작 하였다. 광우병과 관련된 촛불집회도 그 일환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이제 까지 주목하지 않았던 생명에 대한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런데 오래전 부터 동양의 전통사상은 생명에 대하여 관심을 많이 보여 왔다. 특히 불교는 생명과 환경에 대하여 실천적인 생활을 해 온 것이다. 지금과 같은 환경과 생명과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새로운 의식전환이 필요 할 때이다. 불교가 이제 그 역할을 맡아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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