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개종(改宗)을 생각 하는 친구에게

담마다사 이병욱 2008. 6. 1. 10:04


개종(改宗)을 생각 하는 친구에게

 

 

미래는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의 '은혜'와 불교의 '가피'

 

"은혜 잘 받았느냐" 기독인 친구로 부터 들은 말이다.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치루고 다음날에 반갑게 맞이 하면서 던진 이야기이다. 기독교에서는 언제나 은혜를 받는 것으로 생각 하는 모양이다. 비슷한 말이 불교에서는 '가피'를 받는 다는 말이 있다. 하는 일이 잘 풀리고 금전적으로 큰 이득을 보았을 때 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종교가 기복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불가항력적인 일을 당 했을 때 신을 찾고 또 해결해 주십사 하는 간절한 바램이어서 일 것이다. 용케 문제가 되었던 일이 잘 해결 되었다든가 원하는 일이 성취 되었을 때 열심히 기도 하던 덕분이라고 말하면서 은혜와 은총을 듬뿍 받았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만일 원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거꾸로 더 꼬여 갔을 때 뭐라고 말하는 것일까.

 

열심히 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인친구는 요새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고 믿음이 바뀐것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제는 천주교로 개종을 하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열심히 아내를 설득중이라고 한다. 그는 교회에 나가서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해도 예전 같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렇다고 신이 없다는 생각은 해 본적은 없고 항상 신은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천주교에 가더라도 같은 신을 믿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 되어서 어찌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때 그토록 열심히 믿던 대상에 대하여 회의감이 일어나는 것은 인간인 이상 당연할지 모른다. 그 기독인 친구도 한때 잘 나가던 시절에는 신의 은총을 듬뿍 받아서 모든 것이 잘 이루어 졌을 것으로 생각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상태를 보면 과연 신이 있는지 의심을 정도로 형편없이 바닥에 처해 있다. 그것도 일생동안 노력해도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금전적인 고통을 겪고 있다. 사업을 하다 접었기 때문에 그 충격파가 엄청난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았을 때 불교를 기복신앙이라고 말한다. 특히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점집과 다름없는 미신이나 우상숭배 하는정도의 미개한 종교로 알고 있다. 기독친구와 이야기 하면서 느낀점이다. 기복신앙으로 오해 받을 만한 요소는 많이 있다. 연등을 달아도 의례히 자신의 가족과 사업번창에 관한 발원이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 하고 절에 열심히 다녔더니 가피를 많이 받았다는 이야기로 보아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 받는 말과 디름이 없다. 기복적인 신앙요소에 있어서 기독교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만일 열심히 절에 다니고 기도 했음에도 불구 하고 일이 풀리지 않고 오히려 더 꼬여서 최악의 상황을 맞이 하였다면 믿음이 흔들릴 것임에 틀림 업다.

 

신으로부터 벗어 난다는 것

 

종교는 크게 두가지로 갈라진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와 그렇지 않은 종교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신을 믿고 있다. 그것도 천지를 창조 하였다는 오로지 하나의 신을 믿는다. 그래서 그 세계관에서 본다면 믿지 않는 사람이나 타종교의 행위는 모두 불쌍하고 불경스러운 것이 된다. 그렇다고 유일신을 믿는 모든사람이 반드시 은혜를 받고 잘살지는 않는다. 열심히 기도 하고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 하고 거꾸로 갈때 그들의 신앙에 대하여 한번쯤 의심을 가져 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천지창조와 하나의 신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들 신을 포기 하고 그 세계에서 벗어 난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고 빠져 나올 용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 신에 대한 배신으로 생각 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신에게 단단히 속박 되었다고 보여진다. 기독인친구도 지금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타개 하고져 개종을 생각 하고 있지만 그의 신으로 부터 벗어 난다는 생각은 꿈도 못 꾸고 있는 것 같다.

 

기독인 친구는 불교의 교리에 대하여 거의 모른다. 가장 기본적인 불교교리인 3법인조차도 들어 본 바가 없다고 말한다. 교회에서 타종교에 대하여는 알필요도 없고 공부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 대한 상식 역시 매우 부정적인 내용들 뿐이다. 즉 점집이나 무당과 같은 기복신앙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3법인과 사성제 인연법등을 이야기 하면 깜짝 놀라게 된다. 불교에도 그런 고차원적인 사상이 있었냐는 식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가 처한 현실도 어쩌면 자신이 의도한 결과한 산물이라 이야기 하고 업보라고 말하면 상당히 수긍이 가는 듯한 눈치이다.

 

사실 불교인들은 기독교에 대하여 어느정도 알고 있다. 교리자체가 단순하고 명료 하기 때문이다. 또 어려서 부터 교회 한번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교회가 흔하게 있고 중고등학교에 미션스쿨 또한 얼마나 많은가. 이런 환경에서 고차원적인 불교교리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다. 모르기 때문에 불교 하면 이들 입장에서는 기복신앙으로 인식 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에는 불교교양대학도 많이 생기고 인터넷을 통하여 불교의 훌륭한 교리가 전파 되고 있어서 기복신앙이라는 오해는 줄어 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된다. 어떤 면에 있어서 자금과 조직에서 열세인 불교가 인터넷시대를 맞이 하여 날개를 핀다고 볼 수 있고 반대로 기독교는 문단속 하기에 바쁜 인상이 든다. 그러나 언젠가는 좋은 교리와 종교는 알려지게 되어 있다.

 

복이 될 수도 있고 또한 독이 될 수도 있는 기복신앙

 

기복신앙은 복이 될 수도 있고 또한 독이 될 수도 있다. 불교에서는 하근기의 사람들을 위해서 방편으로 취급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는 기복신앙의 틀에서 크게 벗어 나지 못한다. 복을 주고 받는 행위는 누군가 절대자가 있어서 은혜와 은총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자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운 좋게 일이 잘 풀렸다면 은혜를 받는 다고 말하고 일이 꼬여서 더 악화 되었다면 차마 절대자를 원망 하지는 않겠지만 신앙의 열정이 식을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러면서 점차 그 소속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일이 잘 되었을 때 은혜 받았다는니 가피를 받았느니 말하는 것은 매우 경솔한 처사라 보여 진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도한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받는 것이다.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행위를 하였다면 좋은 결과를 받을 것이다. 설령 좋은 의도 였다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게 나왔다면 과거에 지은 업보를 다시 한번 떠 올리면 된다. 어떤 식으로든지 관련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자신의 의도한 행위에 대한 과보를 받는 것이다. 지금 잘 나간다고 우쭐하고 교만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이를 두고 은혜니 가피니 하는 표현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 고통스럽다고 해서 그들의 믿음의 대상에 대하여 회의 할 필요도 없다. 그에 대한 과보를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 하면 그만이다.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2008-06-0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