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많이 소유하면 행복할까

담마다사 이병욱 2008. 6. 22. 11:37

 

많이 소유하면 행복할까

 

 

 

 

 

오디오매니아가 있다. 그는 학교 다닐때 자작으로 오디오를 만들기도 한 경험이 있다. 그런 취미가 있어서 일까 회사도 오디오를 만드는 회사로 취업했다. 그리고 오디오 중에서도 고급오디오를 직접설계 하고 생산까지 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또 다른 취미는 CD판을 모으는 것이다. 월급탄 돈에서 일정부분을 할애 하여 한장 두장 모으다 보니 수백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집에는 오디오시스템이 잘 꾸며져 있고 하루종일 음악에 묻혀서 살곤 한다.

 

많이 소유하면 행복할까

 

사람들은 무언가 원하는 것을 가졌을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리고 만족한 표정으로 쳐다 보고 즐기기도 한다. 일종의 소유한 것에 대한 안심 작용 일 것이다. 그리고 노력에 의하여 얻어 진 결과로서의 뿌듯함 일 것이다.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아파트나 자동차와 같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애써 쫓아 다닌 애인과 결혼하게 되었다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일 것이다. 또 아들이나 딸이 생겼다면 큰 재산이나 생긴 듯한 가슴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

 

소유 한다는 것은 일종의 욕망의 작용이다. 마음속에 가지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이 현실화 된 것이다. 곧 자신의 수중에 들어 왔으니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물건이건 사람이건 집이건 간에 자신의 노고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그만치 자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고 그 결과로서 소유의 즐거움을 만끽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유가 결코 행복 그 자체는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소유함으로써 일시적으로 행복감을 맛 볼 수는 있겠지만 영원히 지속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자동차건 아파트건 애인이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식상해 지고 또 다른 자극을 위해 찾아 나서는 것이다.

 

내가 사라지면

 

열심히 뜨게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 돈도 되지 않는 일을 집중해서 반복적으로 하고 있다. 그 뜨게질 하는 순간에는 아무 잡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거기에 몰두 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도 모르고 뜨게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즉 뜨게질 하는 행위만 있을 뿐이지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놀라운 정신 집중이다. 그런 상태에서 나란 존재는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뜨게질을 하고 나서 진행된 결과에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진행중에 일어나는 무아의 경지가 진정한 행복이라 볼 수 있다.

 

무언가 열중하고 있다는 그 자체는 나라는 존재가 일시적으로 사라진 상태이다. 나가 사라졌기 때문에 시간관념도 사라진다. 또 나가 사라졌기 때문에 객관적인 대상도 사라졌다고 보아야 한다. 내가 있다고 생각 한다면 이미 주관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세계도 엄연히 존재 한다. 그런데 나가 사라졌다면 동시에 객관적인 세계도 사라지는 것이다. 당연히 시간도 사라지고 공간도 사라진 상태가 될 것이다. 즉 주관과 객관이 합일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고통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의 상태 즉 '()'의 상태가 된다고 보아야 한다.

 

'아상(我相)'을 지우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소유 하기 위하여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 하면서 살아 간다. 그리고 그 소유와 욕망이 영원히 지속 되기를 바란다. 천국이라는 개념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이기적인 욕심의 발로라 여겨 진다. 살아 있는 동안에 소유와 욕망은 개인의 수고로 이루어지지만 천국에서의 소유와 욕망은 수고 없이 이루어진다. 즉 수고가 들어간 것과 수고 없이 이루어진 결과의 차이라 보여진다. 어느 경우이든지 나라고 하는 주관이 존재하는 한 일시적이고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영원히 살고 영원히 행복해 지려거든 나가 있다는 생각을 지워 가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아상을 지우라고 누차에 걸쳐서 말한다. 타종교에서는 나가 있다고 말하고 영원히 사는 나를 말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철저하게 나란 존재를 부정하고 나를 지웠을 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엄연히 존재 하고 있다고 느끼는 나를 지우기는 쉽지 않다.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한 결코 자유로울 수 가 없기 때문이다. 몸이 있고 나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매일 매일 매순간 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나가고 있다. 즉 업을 짖고 있는 것이다.  그 업이라는 것이 자신이 의도한 행위의 결과인 것이다. 말로써 몸으로써 또 마음으로써 행위를 한 결과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매순간 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세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마다 새로운 세계가 생기기 때문에 그 세계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무한대라 볼 수 있다.

 

영원히 살려거든

 

수많은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진 세계는 매순간 하는 행위에 따라 또 수많은 세계가 만들어진다. 즉 새로운 시간과 공간이 창조 되는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가 진짜의 세계로 여기고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런 세계를 다 허상이라고 말한다. 즉 일체행위에 의하여 만들어진 세계는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이 실체가 없다고 말한다. 또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이 일시적이라고 말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의도적인 행위를 중지 한다면 더 이상 새로운 세계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소유와 욕심의 산물이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이다. 그 세계가 영원히 지속 되기를 바라지만 나가 있다는 생각을 진한 일시적이다. 그리고 소유하고 욕망을 이루었지만 진정한 행복은 되지 못하고 일시적인 행복감만을 맛 볼 뿐이다. 또다시 무료함과 권태감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진정한 행복을 맛 보고 영원히 살려거든 나라는 생각을 지우는 길 밖에 없다고 불교는 말한다.

 

나라는 생각을 지웠을 때 지혜가 생기고 동시에 자비심이 우러나온다고 말한다. 즉 우주와 합일 하는 순간이다. 하나가 되었을 때 영원히 사는 것이고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것은 머리로 이해 하면 알 수 없다고 한다. 체득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행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습관을 들여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 한번 제대로 해 보고픈 욕심이 들기도 한다.

 

 

 

2008-06-2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