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손해 보며 살기

담마다사 이병욱 2008. 6. 23. 09:43

 

손해 보며 살기

 

 

 

훔친 금액만큼 생명이 단축 된다는 사실

 

 

 

 

 

거래를 하다 보면

 

거래를 하다 보면 손해 보는 경우가 있다. 특히 처음 거래 한 경우에 당하기 쉽다.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상태인지 파악 할 수 없다. 다만 회사의 크기나 짜임새 그리고 사회적인지도등을 따져서 파악 할 수 밖에 없다. 대게 규모가 크고 알려진 회사들은 사회적 책임이 있기 때문에 떼먹는 일은 없지만 문제는 소규모로 하는 인지도가 없는 회사의 경우이다. 특히 대표가 부도경험이 있거나 신용불량인 경우는 손해 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애써 작업해 놓고 그에 대한 댓가를 못 받는 경우 상실감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고 신사다운 언행을 해서 거래 하지만 알고 보면 상습적으로 떼어 먹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더 나쁜 케이스는 가격을 반으로 내려 쳐 놓고 납기는 매우 촉박하게 재촉한다. 그리고 결재는 가급적 늦게 하거나 아예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금액이 크면 소송을 해서라도 받아 내겠지만 금액이 크지 않다면 언젠가 주겠지 하며 내버려 둔다. 차라리 손해 보았다고 생각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현대를 신용사회라 하는데

 

현대를 신용사회라 한다. 특히 금전관계에서 신용을 말한다. 아무리 옷을 잘 빼입고 하는 행동이 신사 숙녀같이 보일지라도 두세번만 거래 해 보면 본 바탕이 나오게 되어 있다. 처음 거래 했을 때는 잘 모르나 두번 세번 거래 하게 되면 독특한 패턴이 나오게 되어 있다. 한번 요주의 인물로 찍히면 그 다음 부터는 매우 신중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매우 민감 하다. 조금이라도 나에게 손해가 된다면 절대 거래 하려 하지 않는다. 반면에 원수지간일지라도 나에게 이익이 된다면 거래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적인 거래 뿐만 아니라 국가간의 거래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쇠고기파동도 역시 국민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손해 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에서 일방적으로 이득을 취하고 한편에서는 손해 본다고 느꼈을 때 그 거래는 깨지게 되어 있다. 정부에서 아무리 설득하고 노력하지만 결국은 깨지게 될 수 밖에 없는 거래이다. 더구나 금전적인 손실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에 관련된 문제라면 정부가 이길 수 없는 게임이 되는 것이다.

 

훔친 금액만큼 생명이 단축 된다는 사실

 

한번 떼어 먹겠다고 달겨 드는 사람한테는 어쩔 수 없다. 마치 가벼운 자동차 접촉사고가 났는데 병원에 드러누운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경우와 같다. 그냥 손해 보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그에 대한 과보는 반드시 받을 것이다. 예로부터 남의 돈 떼어 먹거나 훔쳤을 경우 그 금액만큼 생명이 단축 된다고 하였다. 즉 한달월급을 통채로 누군가 훔쳐 갔을 경우 그 사람의 수명은 한달이 단축 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 한달간 투자한 댓가를 가로채 갔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명을 늘리고 오래 살려면 많이 도와주어야 된다는 논리도 생긴다.

 

길거리에서 장사 하는 할머니들 한테 물건 살때 깍지 않는 것이 좋다. 이왕이면 더 보태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푼 두푼 깍아서 모아 보았자 엉뚱한데서 커다란 손실이 생긴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작은 것에 목숨 걸지 말자는 것이다. 내가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남을 도와 줄 여유가 있느냐고 반문 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도 충분한 여유가 있으면 그 때 해도 늦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 때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잔치에 쓰려고 우유를 짜지 않고 내버려 두었을 경우 막상 잔치날 우유를 짜려 하니 나오지 않는 경우와 같다고 할까.

 

때에 따라서는 내가 손해 볼 때 도

 

한푼 두푼 모으고 미래를 대비하는 생활은 권장 되어 진다. 저축이나 보험회사로 보아서는 이 보다 좋은 캠페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파는 사람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결코 달갑지 않은 말이다. 많이 소비를 해주어야 경제가 활성화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푼 두푼을 모아 이웃을 위해 쓰자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한다면 종교단체에 가져다 바치는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어떤 댓가성인 경우가 많이 있다. 10000원을 내고 그에 천배나 만배에 해당되는 복을 바라기 때문이다. 또 이것을 은근히 부추기 까지 하는 종교인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지 손해 나는 장사는 하지 않으려 한다. 이익이 나는 곳을 찾아 나선다. 종교를 믿는 목적도 나에게 어떤 이익이 있기 때문에 믿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다 못해 사람들을 사귀게 되면 자신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적극 참여 하는 경우도 있다. 철저하게 계산적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은 처음에는 모르지만 두세번만 겪으면 알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진정성에 대하여 의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래를 하다 보면 손해 날 수 도 있다. 또 아예 못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손해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비록 손해 본다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지원해 준다면 마음이 바뀌어 돌아 설 수도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여간해서 그런 마음을 기대 하기 힘들다. 때에 따라서는 내가 손해 볼 때 도 있는 것이다.

 

 

 

2008-06-23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