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필업과 한풀이로서의 가상공간

담마다사 이병욱 2008. 7. 15. 11:09

 

필업과 한풀이로서의 가상공간

 

 

 

 

"어떤 사람이 미친 척 하고 인터넷에 올려 놓았을지 모른다" 사람들끼리 하는 이야기 이다. 특히 엔지니어들은 개발을 하면서 인터넷을 지주 활용한다. 원하는 기술자료는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왠만한 자료는 다 나온다. 그런데 회로도와 같이 회사의 재산과 같은 자료는 좀체로 찾기 어렵다. 그러나 가능성을 가지고 뒤지는 것이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어느 사람이 미친척하고 자신의 블로그나 카페에 올려 놓았는지.

 

가상공간과 집단무의식 그리고 아뢰야식

 

과거 30년간의 발전이 인류역사 5천년의 발전과 버금 간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10년간의 발전은 과거 30년간의 발전보다도 더 혁명적이다. 바로 가상공간이라는 인터넷의 영향 때문이다. 네트워크만 연결 되어 있으면 누구나 접속 할 수 있고 원하는 정보를 가져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사 표현도 할 수 있다. 그런 가장 좋은 본보기가 바로 '이메일'이나 '메신저'의 활용 또는 '개인블로그''카페'등이 될 것이다. 여기에다 일인 미디어의 역할 까지 하게 된다면 가상공간에서 또 다른 인격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가상공간을 보면 심층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무의식이 떠 올려지게 된다. 의식하고 사는 세상이 현실이라면 의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이 무의식의 세상이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공간이 일종의 집단무의식으로 느껴 진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온 갖 정보가 축적 되어 있다. 누군가 올려 진 자료가 보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하는 자료는 키워드 검색을 하면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거대한 창고와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창고에는 새로운 자료가 계속 쌓여 갈 것이다. 설령 좋은 자료이든 해로운 자료이든 사람들의 행위가 그대로 저장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이 떠 올려 지기도 한다.

 

아뢰야식은 제8식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정보의 저장 창고와 같다. 수많은 인류가 한 행위가 모두 고스란히 보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선행을 했던 악행을 했던 하나도 버림 없이 보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아뢰야식과 집단무의식 그리고 인터넷과의 관계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즉 저장 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이다.

 

필업을 짖는 가상공간

 

불교에서는 신구의 3업을 이야기 한다.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지은 의도적인 행위는 업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업은 없어 지지 않고 전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창고에 보관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업을 짖지 않고 살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업도 상대적으로 증대 한다고 볼 수 있다. 선업을 많이 지으면 세상이 향내가 나겠으나 악행을 많이 지으면 세상은 탁해 지는 것은 뻔한 이치 일 것이다.

 

인터넷공간은 아뢰야식과 비슷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업의 개념에서 본 다면 '필업'을 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 한다면 '의업'을 짖고 볼 수 있다. 자신의 의도한 바를 글로서 표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필업이 현실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도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보는 촛불집회가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필업도 일종의 업이다. 의도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 것이 지나쳐 남에게 해를 끼친다면 현실세계로 부터 제재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의 법의 잣대로 가상공간을 재단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현실에서의 권위가 그대로 가상공간에서 통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풀이로서의 가상공간

 

가상공간은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이다. 마치 탈을 쓰고 탈춤을 추면서 현실을 풍자 하는 '탈춤놀이'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탈춤놀이에서는 현실의 권위를 부정 할 뿐만 아니라 조롱거리로 만들기도 한다. 얼굴을 가리는 탈을 �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마음껏 풍자하고 조롱해도 그 때 만큼은 눈감아 주는 것이다. 일종의 한풀이 인 것이다. 현대에 들어 와서 그런 탈춤놀이를 가상공간에서 펼치고 있다고 보면 지나친 비약일까.

 

가상공간에서 탈춤놀이에 대하여 단속 하겠다고 한다. 현실에서의 권위가 가상공간에서 무너지는 것을 지켜 보지 못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멍석을 아예 걷어 내겠다고 한다. 멍석을 걷어 내면 가상공간에서도 권위가 유지 될 것을 기대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멍석을 걷어 낸다고 그 마음까지 걷어 낼 수 있을까.

 

마음에 맺힌 한은 어느 정도 풀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예로 부터 축제가 있어 왔다. 철이 되고 때가 되면 정기적으로 축제를 열어서 불만을 간접적으로 풀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만은 마음껏 먹고 마시고 풍자해도 게의치 않았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농사를 짖지 않는 현대에 와서 그런 역할을 인터넷 공간에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공간에서는 권위가 인정 되지 않고 오히려 조롱거리로 전락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조롱당하는 권위

 

보수신문과 인터넷포털의 싸움이 치열하다. 아니 보수신문이라기 보다 보수세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신문을 비롯한 검찰과 경찰 심지어는 보수화한 종교세력까지 전방위적으로 포털을 압박 하면서 각종 규제를 만들어 자신의 입맛대로 만들어 나가고져 한다. 2.0을 앞둔 시대에 구시대의 발악이라 여겨 진다. 설령 규제가 된다 할지라도 표현의 자유로움에 맛들여진 네티즌을 단속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기에는 인터넷이 너무 보편화 되고 너무 커져 버렸다. 현실의 보이는 유형의 세계가 있다면 실체가 없는 가상의 공간에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유일신교 종교에서 심하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자신이 한 행위는 선이고 자신에 반대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는 언제나 악으로 보았다. 그래서 악은 쳐서 없애 버려할 대상으로 보았다.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 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반대하거나 비방 하는 사람들은 지옥에 쳐 넣어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선악2분법적 사고발상이다.

 

선악2분법적 사고방식이 지배 하는 곳이 현실공간이다. 잘 못 해서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감옥에 쳐 넣어 일정기간 수감시킨다. 악행에 대한 과보를 받는 것이다. 선행을 많이 하면 존경도 받을 뿐만 아니라 잘 살 수도 있다. 이 또한 선행에 대한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선행을 많이 했다고 해서 잘 사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악행을 많이 했다고 해서 감옥에 가거나 못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악행을 많이 하고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사는 사람이 더 큰소리치고 잘 사는 경우도 있다.

 

가상공간은 평등한 세상

 

인터넷과 같은 가상공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 현실공간에서는 빈부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나 가상공간에서는 빈부의 차이는 발견 할 수 없다. 다만 얼마나 활동을 많이 하느냐에 따라 또 얼마나 잘 활용 하느냐에 따라 빈부가 결정 되는 것이다. 돈 많은 것과 사회적지위와는  무관 한 것이다. 사회에서 불평등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유토피아와 같은 곳이라 볼 수 있다. 얼굴이 잘 생겼는지 못 생겼는지 알 수 없고 또 옷을 잘 입었는지 못 입었는지 알 수 없다. 좋은 집에 사는지 단칸셋방에 사는지도 알 수 없다. 가상공간에서 만큼은 모두다 평등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공간에서 권위와 권력이 통할리 없다.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현실공간에서 존경받는 인물도 가상공간에서는 위선자로 둔갑한다. 현실공간에서 틀림없는 사실이라 여기는 경전도 가상공간에서는 소설로 둔갑한다. 현실공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는 보수신문도 가상공간에서는 처참하게 깨진다. 현실공간에서 권위와 기득권이 가상공간에서는 철저 하게 부정되고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다. 마치 탈춤놀이 할 때 양반의 위선적인 행태를 공격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맛 본다고 할까 그런 역할을 하는 것도 가상공간이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이다.

 

가상세계를 지배 하려는 현실권력

 

현실의 권력이 가상공간을 손 보겠다고 나서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여지 없이 무너지는 권위를 회복하겠다는 취지 일 것이다. 가상공간에서도 현실공간에서와 같이 권력을 행사 하고 권위를 회복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위에 도전 하는 글을 찾아 내고 댓글을 단 사람을 찾아 내고 구속하겠다고 한다. 현실세계에서나 통용될 법한 일을 가상공간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가상공간에서의 활동은 매우 자유롭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욕도 할 수 있다. 상대방에 대하여 비난도 할 수 있고 모함도 할 수 있다. 물론 제제조치도 있지만 철저하게 이 것도 시장경쟁의 원리에 지배를 받는다. 쓰레기 같은 글들이나 내용이 없는 글들은 찾지 않는다. 정보로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노력이 들어가고 정성이 담긴 글은 누군가는 알아 주게 되어 있다. 공유되다면 삽시간에 퍼져서 현실공간의 의제로 설정 되기도 한다.

 

현실에서 보수세력이 문제 삼는 것은 그들의 권위가 가상세계에서는 먹혀 들어 가지 않는 다는 불만이다. 현실세계에서는 부와 지위와 권력이 지배 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 든지 할 수 있는 힘이 있지만 가상세계에서는 속수무책이다. 현실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상세계도 지배 하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는 토론사이트를 압박하고 특정포털에 뉴스를 공급하지 않고 하는 이유는 가상세계에서 굴욕을 당하지 않겠다는 이유이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가상공간

 

게릴라는 치고 빠지는데 명수 이다. 한 군데 고정 되어 있지 않고 늘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타격을 준다. 정부와 현실세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 이념과 사상으로 무장 되어 있다. 거기다가 민중의 지지까지 받으면 더욱 더 힘을 받게 된다. 게릴라 활동으로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를 전복시켜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많이 보아 왔다. 가상공간에서의 활동도 역시 게릴라들과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총만 들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세력을 뿌리 뽑겠다고 보수신문을 필두로 보수종교 보수검찰등 보수세력의 총공세가 시작 된 것이다. 가상공간에서 디지털게릴라들은 거점을 잃게 되면 또 다른 곳에 거점을 마련 할 것이다. 마치 쫓고 쫓기는 게임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게임이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날 것 같지 않다. 설령 뿌리를 뽑는다고 할지라고 디지털게릴라는 계속 생겨 날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를 모조리 파괴 하지 않는한 계속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옛날의 정보독점시절이 좋았을 것이라고 회상에 잠길만 하다.

 

인터넷 가상공간은 권력과 권위가 통하지 않는 공간이다. 현실에서 아무리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법으로 지배 해서 권위를 마음껏 높이는 사람도 가상공간에서는 조롱거리이다. 조롱거리 당했다고 해서 현실공간에서나 통용 되는 법의 잣대를 적용 해 보았자 권위가 회복 되지 않는다. 거짓과 위선과 불법으로 점철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 할 수 있고 잘 못된 것을 잘 못 되었다고 말 할 수 있는 공간이 가상공간이기 때문에 가능 한 것이다. 거짓은 드러나고 진실은 밝혀 질 수 있는 곳도 가상공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특히 현실공간에서 마음껏 위세를 부리고 권위를 구가하는 집단일 수록 타격이 크다. 가상공간에서는 이들을 인정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본격화 된지 10년이 되었다. 과거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 나고 있다. 바로 시민참여 이다. 누구나 블로그나 카페를 만들어 자신의 의견을 주장 하는 것만 해도 혁명과 같은 현상이다. 그 동안 은폐되고 가려 져 왔던 사항들이 가상공간에서 낱낱이 들어나고 있다. 권위의 상징이러 여겨지던 종교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가상공간에서 활동 여하에 따라 기존의 질서가 붕괴 될 수 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장이 될 수 도 있다.

 

 

 

2008-07-1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