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신용불량자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더니

담마다사 이병욱 2008. 7. 18. 10:50

 

신용불량자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더니

 

 

누구나 카드를 가지고 있다. 주로 은행에서 발급 하는 신용카드 이지만 백화점카드부터 시작해서 주유소카드에 이르기 까지 두장이상은 가지고 있는 것은 보통이다. 그런데 누구나 가지고 있는 카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대단히 많은 것도 현실이다. 통계를 보면 금융권 신용불량자가 370여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의 상당수가 길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카드를 발급하던 시절의 희생자라고 한다. 남의 돈 무서운 줄 모르고 마구 쓰다가 자신도 모르게 신용불량자가 된 것이다.

 

신용불량자에 대한 이야기를 올렸더니

 

신용불량자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는데 메인뉴스에 까지 뜨게 되었다. 조회수가 14만여명으로 커다란 관심을 보인 모양이다. 아무래도 현재 겪고 있거나 미래에 겪을 지도 모르는 자신의 문제로 생각 했던 모양이다. 그만치 우리사회에 있어서 신용불량자라는 키워드가 큰 화두임을 알 수 있었다.

 

댓글을 읽어 보면 실제로 경험한 눈물겨운 사연이 많았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재기를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는 치열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가 하면 죽을 힘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글에서 부터 실제로 성공한 사례도 보여 주기도 하였다. 심지어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가르쳐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움을 주고 싶다고 쓴 사람도 있었다. 이 모두가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자비심의 발로라 생각 된다.

 

댓글을 쓰는 사람은 0.1프로에 불과

 

조회수에 비교하여 댓글을 쓰는 사람들의 비율은 0.1 내지 0.2프로에 지나지 않는다. 99.9프로는 한번 읽고 지나치는 정도이다. 설령 글에 공감을 했을지라도 표현 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또는 PC를 잘 다루지 못해서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매우 극소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출 한다. 공감 하는 의견이든 비판 하는 의견이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정리 한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이런 소수의 적극적인 참여자들이 세상을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있다. 나머지는 이들의 주장 하는 대로 따라 갈 뿐이다. 이런 현상은 정치 경제등 사회전분야에 있어서 공통적인 현상이다. 촛불시위에 참여 하는 사람이 전체 국민의 0.1프로에도 지나지 않지만 나라의 정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마찬가지고 인터넷 시대의 소수의 논객이나 댓글 참여자로 인하여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 나갈 수 있고 역사의 물줄기 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다. 그런 예를 또한 촛불집회의 시발에서 발견 할 수 있다.

 

 

 

 

 

 

1프로를 위한 마케팅전략

 

1프로 마케팅이 있다. 소득수준 상위 1프로에 해당 되는 사람을 겨냥해서 만든 영업기법이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소비 또한 커지게 마련이다. 이들에게 남다른 서비스를 함으로써 남들과 다르게 보이게 하려는 차별화전략의 일환이다. 이들 1프로는 전 사회분야에 있어서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 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판매 되는 물품은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적극 활용 하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1프로는 전체국민으로 보았을 때 약50만명 정도 된다. 1프로를 겨냥해서 자동차를 팔았을때 50만대가 될 것이고 이들을 대상으로 해외여행 사업을 한다고 해도 50만명은 내 보낼 수 가 있다. 소득수준과 소비수준을 따졌을 때 이들 1프로의 위력은 일반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것보다 10프로이상의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은 잘 알려 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기업마다 1프로 마케팅에 관심을 기울이고 차별화 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상위 1프로들만을 위한 사회일까.

 

구조적으로 존재 할 수 밖에 없는 하위20프로

 

어느 나라든지 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대략 상위 20프로, 하위20프로로 구성 되어 있다. 그 중간 층이 60프로 정도이다. 중간층이 두터워야 사회가 안정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최근에는 갈 수록 하위층이 늘어나고 중간층은 얇아 져 간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하위 20프로에 해당 되는 사람들은 세상 살아 가기가 힘겹다. 경제적으로도 고통을 받을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소외 되어서 삶의 질을 높이거나 인간적인 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더구나 신용불량자라는 낙인까지 찍히면 취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불한정한 고용 상태에 있을 수 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미래에 대한 투자가 있을 수 없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한번 가기도 힘들다. 한 공동체에 살면서 마치 봉건시대와 같이 신분의 차별이 존재 하는 것처럼 여겨 지게 만드는 것이다.

 

하위 20프로는 구조적인 문제라 볼 수 있다. 언제나 하위 20프로는 존재 할 수 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났는지 모른다. 이들은 상류층을 떠 받치고 있고 떠 받치고 나오는 댓가로 근근히 살아 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 나지 않는 한 언제나 그런 모습으로 살아 가야 한다. 많이 가지지 못해서 또 많이 못 배운 탓도 있지만 타고난 능력이 그 것 밖에 되지 않는 다면 고단한 일생이 될 수 밖에 없다. 남보다 더 떨어지는 체력 남보다 더 부족한 지능 더구나 장애까지 가지고 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상류층으로 올라가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과도한 욕심과 탐욕으로 인하여 있는 재산 다 날리고 하류층으로 내려 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그래도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보여진다. 신용불량자로 살아 가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있다면 언제든지 만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 다면 타고난 능력은 복이라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능력 마져 없는 경우이다. 이들이 하류층으로 전락 하고 하류층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0.1프로를 떠 받치고 있는 99.9프로

 

모든 나라가 복지국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골고루 잘살고 평등한 이상적인 사회를 바라고 있다. 일찌기 이런 실험을 공산주의에서 하였으나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아마도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수준이 따라 오지 못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너무 시대를 앞서간 급진적인 체제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빈부의 격차이다. 구조적인 모순이라 볼 수 있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잘 살 수 밖에 없고 타고난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못 살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시정 하기 위하여 모든 나라는 복지국가를 지향 하는 것이다. 같이 호흡하고 살아 가는 공동체에서 한편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면 한다면 도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인정 할 수 없다. 신용불량자와 같이 한때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하여 나락에 빠진 사람들은 구제 해 주어야 한다. 좀 더 빠른 시간에 재기 할  수 있도록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 해야 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속에서 사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즐기면서 산다면 과연 그런 정부와 그런 체제를 마음속으로 인정 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열에 아홉은 실패 하고 그 중에 하나가 성공 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와서는 100 99는 실패하고 하나 정도가 성공 한다고 바뀌었다. 벤처의 성공률이 그 것을 증명 한다. 1프로의 확률인 것이다. 나머지는 근근히 유지 하거나 망한다고 볼 수 있다. 성공에 있어서 10프로대는 옛말이 된 것이다. 특히 디지털시대에 들어와서 이런 현상은 심화 되고 있다. 이제는 1프로의 확률을 가지고 도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더 확률은 낮아질 것이다. 승자독식시대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미래에는 0.1프로의 가능성으로 바뀔지 모른다. 1000명에 한명꼴이다. 0.1프로 안에 들어야 이 시대를 살아 가야 되는 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핵심 인력은 0.1프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논리는 인터넷에서도 적용 될 수 있다. 글을 쓰고 댓글을 다는 층은 사용자의 0.1프로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시위를 하는 인원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0.1프로가 실제로 나라를 의제를 설정 하고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있다. 이들 0.1프로가 가장 관심을 보여야 할 대상은 이들을 따르고 떠받치고 있는 99.9프로가 아닐까.

 

 

 

2008-07-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