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기대수명 100세에 생각해 보는 '노후공동체'

담마다사 이병욱 2008. 7. 25. 16:02

 

기대수명 100세에 생각해 보는 '노후공동체'

 

 

 

 

초년운

 

한 친구가 있다. 비교적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고생이라고는 별로 모르고 살았다. 한번도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은 적이 없다. 또한 동아리활동이나 적극인 현실참여운동과 같은 집단 모임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 자격증을 딴다든가 어려운 등용시험에 도전하는 것과 같은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부모가 대주는 학비로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도 대기업으로 입사 하였다. 결혼도 하고 모든 것이 무난하게 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IMF가 닥치면서 회사를 나와야 했고 주식에 손을 대는 바람에 가진 돈을 모두 날렸다. 그 후에 이혼당하고 애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이 놀고 있다.

 

또 한 친구가 있다. 그의 학창시절은 매우 어려웠다. 어머니는 일찍 돌아 가셨다. 아버지가 있었지만 돈을 벌 능력이 안 되어서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지방이 집인 그는 학교 부근에서 하숙을 하며 아르바이트도 하고 공사판에 가서 등짐을 나르는 노동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만만했고 무엇이든지 적극적이었다. 외국계회사를 들어 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서 오퍼회사를 차렸다. 처음부터 가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서 아내와 일을 함께 하였다. 곧 터질 듯 하던 오더는 좀처럼 연결되지 않았고 그런 채로 몇 년이 흘렀다. 오랜만에 들은 그 친구이야기는 이제 부자가 되어 있다고 하였다. 빌딩이 몇 개가 되고 아파트가 몇 채 된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중년운은

 

흔히들 초년운 중년운 말년운 이야기를 한다. 부모를 잘 만났다면 초년운이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렵게 성장 하였다면 부모덕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시련이 나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바로 자립심을 키우기 때문이다.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능력을 키운 다는 것은 가장 큰 자산이다. 일부로 돈 주고 경험도 해 보지만 절박한 상태에서 하는 경험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런 차이는 중년이 되면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립심이 무척 강하다는 것이다.

 

초년운은 부모에 달려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중년운은 자신이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꾸어 나갈 수 있다. 초년운이 좋다고 중년운 까지 좋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또 초년운이 나쁘다고 중년운 마저 나쁠 것이라고 생각 할 필요가 없다. 중년운이야말로 자신이 개척한 자신의 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 더 남은 것이 있다. 노년운이다.

 

평균수명이 79세로 높아 졌다고 한다. 기대 수명 또한 이 보다 훨씬 더 높게 잡고 있다. 평균수명과 기대수명이 높아 졌다고는 하지만 노후의 복지문제는 여전히 커다란 관심거리이다. �었을 때 열심히 벌어 놓아서 노후를 편안하게 지내자는 생각이 많지만 모두에게 해당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부 소수만이 이에 해당 될 뿐 대다수는 노후에 대하여 매우 불안 하게 생각 하고 있다. 그 많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대하여 특별한 대책이 없다. 이렇게 된다면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말년운이 더 좋아야

 

중년운이 좋아서 많이 모아 놓은 사람은 문제 없겠으나 대다수 사람들은 노후에 대하여 대비 하지 못하고 산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 살기도 버거운 판에 노후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원고갈과 유류파동, 지구온난화 환경파괴, 식량과 물부족등 나쁜 소식을 들으면 미래의 사회가 반드시 유토피아적인 복지사회라기 보다 오히려 더 퇴보한 원시사회가 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 자원의 고갈이 일어 났을 때 식량폭동이 일어 날 수 있고 전쟁이 벌어 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하여 대비 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만 그 것이 개인적인 목적으로만 쓰여 진다면 결코 잘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

 

누구나 말년을 맞이 할 것이다. 그런데 그 말년이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진다면 중년에 열심히 모아 두었던 재물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누구나 비참하게 죽음만 기다리는 말년을 상상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품위 있고 격조 높은 말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대비만으로는 부족하다. 국가에 의지 하고져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노후공동체'를 구성 하는 것이다. 함께 모여 밥도 먹고 일도 하고 종교를 가졌다면 함께 기도 하고 수행 하는 것이다. 초년운 중년운도 좋지만 가장 바람직한 것은 말년운이 좋아야 한다. 국가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개인들이 모여서 이런 노후공동체와 같은 형태의 말년운을 만들어 나가도 되지 않을까.

 

 

 

200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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