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회암사지, 나옹선사와 무학대사의 부도비가 있는 곳

담마다사 이병욱 2008. 9. 29. 18:31

 

 

회암사지, 나옹선사와 무학대사의 부도비가 있는 곳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암사지

 

 

 

회암사지는 양주에 있다. 정확히 의정부 북쪽의 3번국도를 타고 가다 동두천 못미쳐 우측에 있다. 이 곳 까지 가는데 서울외곽고속도로를 타고 시원하게 질주 하였지만 3번국도를 타고 가다 몇 번에 걸쳐서 가다 오다를 반복 한끝에 도달 할 수 있었다.

 

 

 

 

북쪽에서 바라본 모습. 아직도 발굴작업이 진행 되고 있다

 

 

 

잠실주경기장 정도 되는 면적

 

회암사지는 기대한 것 보다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다. 몇 년 전에 TV로 보았을 때는 무척 넓어 보였지만 그래도 잠길주경기장 정도 되는 면적이다. TV에서 축구나 야구장을 보면 무척 크게 느껴 지나 막상 가서 보면 그리 커 보이지 않는 이치와 같을 것이다.

 

 

 

북쪽 뒷편의 계단식터는 궁궐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궁월의 모습을 본 떠 만들어 졌다고 한다

 

 

 

지형은 좌우가 돌출되어 있고 가운데 움푹 들어간 형태로 되어 있는 전형적인 분지이다.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곳에는 석축과 돌 무더기 뿐이지만 지난 10년간 발굴 되어서인지 잘 정비 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회암사지는 마치 궁궐의 모습을 연상 시킨다. 특히 뒷편의 모습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하나의 소규모 궁전처럼 느껴 지는 모습이다. 이 곳이 조선시대 때는 왕실에서 관리 하던 사찰 이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 일인지 모두 불타 버리고 지금 보는 광경은 그야 말로 터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일설에는 1566년 부터 1595년사이에 유생들에게 파괴 되었을 것으로 추정 되고 있다.

 

 

 

 

 

도에서 나온 전문해설위원이 있어서 발굴과정과 역사에 대하여 상세 하게 설명해 준다

 

 

 

복원계획이 없다는 회암사지

 

회암사지는 오로지 터만 있고 석축만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간간이 찾아 오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 것에 대비 한 것일까 도에서 나온 전문해설자가 있어서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회암사의 역사와 발굴과정, 그리고 가람의 배치까지 전문적인 내용까지 알려 준다. 회암사지 안에는 들어 가지 못하도록 펜스를 쳐 놓았고 어느 정도 정비가 끝나면 코스를 만들어 안내 할 것이라 한다. 언제쯤 완전히 복원 될 것인가에 대하여 물어 보았다. 아직 복원계획은 없다고 한다. 지금 이대로의 발굴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외에는 계획이 없다고 한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 사실 복원 하는 것인데 그 말을 듣자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만약 복원 된다면 우람하고 거대한 또 하나의 사찰이 탄생되고 전통문화가 복원 되는데 왠일인지 복원 계획이 없다고 하니 이것도 종교편향의 바람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복원 된다면 이런 모습일 것이다. 전망대에 있는 복원도이다. 중앙의 이층 누각이 주불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나옹선사와 무학대사의 부도비가 있는 곳

 

단지 터만 둘러 보고 만다면 그다지 볼 것은 없다. 다만 인근에 박물관을 지어서 발굴과정에서 나온 유물들을 전시한다고는 하나 어느 정도 효과를 볼지는 미지수이다. 터만 남아 있는 곳은 그다지 신심을 불러 일으킨다거나 사람을 끌어 모으지는 못 할 것 같다. 오히려 절터 뒷편에 있는 같은 이름의 회암사에 볼거리가 많았다.

 

 

 

 

같은 이름의 회암사가 회암사지 뒷편에 있다.

 

 

 

이 곳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무학대사의 부도비가 있고 발원문으로 유명한 나옹선사의 부도비도 함께 있다. 또 회암사를 중창하게끔 한 인도의 고승 지공선사의 부도비도 있다. 즉 새로지은 회암사 오른편 기슭에 위에서 부터 나옹선사, 지공선사 무학대사의 부도비가 쌍자자 석등과 비문과 함께 3분이 모셔져 있는 것이다. 말로만 듣던 무학대사와 나온선사의 부도비가 있는 것 만 해도 충분히 역사적인 가치는 있다고 보여진다. 이들 3분을 추모 하기 위해서 일까 회암사 경내에는 영성전이 있어서 3분의 화상도 볼 수 있었다.

 

 

 

 

 무학대사 부도비와 쌍사자 석등. 조선 태종7년(1407)에 건립 되었다. 보물388호.

 

 

 

 

 

회암사의 영성전에 모셔진 화상. 좌측에 무학대사의 영정이 보인다.

 

 

 

불국토가 완성 되는 날은

 

전국에 걸쳐서 수많은 폐사지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오래된 석탑이 있는 곳이다. 그런데 회암사 같이 주춧돌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기록물이 남아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원형대로 복원 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여 진다. 아직 복원계획이 없다고 말하는 문화재설명위원의 말에 실망은 하였지만 언젠가는 복원 되리라고 믿는다. 지금 당장 가능하지는 않을 지라도 몇십년후 또는 몇백년후에 복원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런 날이 바로 불국토가 완성 되는 날이 아닐까.

 

 

 

 

남쪽에서 바라본 회암사지 

 

 

 

 

 

구멍이 3개인 개수구가 보인다. 여기서 나온 물은 바닥이 돌로 깔려진 물길을 따라 아래로 흘러 내려 가게 되어 있다.

 

 

 

 

 

 

회암사지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본존불이 있었던 전각터. 복원도에는 2층 누각으로 되어 있고 비로자나 부처님이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정료대. 이곳에 가마솥 같은 용기를 놓고 불을 밝혔다고 한다. 이런 정료대가 무려 10개나 된다고 한다.

 

 

 

 

 

 

북쪽에 있는 이름 미상의 부도탑. 안정감이 있고 조각이 뛰어나다. 조선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발굴되기전의 회암사지 모습

 

 

 

 

 

회암사지 뒷편에 있는 회암사의 종무소

 

 

 

 

 

회암사의 영성전. 지공선사, 나옹선사, 무학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삼성각

 

 

 

 

 

 

무학대사의 비. 조선태종10년(1410)에 세워졌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51호.

 

 

 

 

 

 

무학대사 비문에 있는 일부 비문 내용

 

 

 

 

 

 

지공선사 부도와 석등. 고려우왕4년(1372)에 건립 되었다.

 

 

 

 

 

 

나옹선사 부도와 석등. 고려 후기에 건립 되었다.

 

 

 

 

 

2008-09-2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