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배흘림기둥의 태백산 부석사, 어떤 열정이 이런 깊은 산중에까지

담마다사 이병욱 2008. 10. 6. 20:50

 

 

배흘림기둥의 태백산 부석사, 어떤 열정이 이런 깊은 산중에까지 이르게 하였을까

 

 

 

 

 

 

 

인연이 무르익으면

 

추계정기순례법회를 다녀 왔다. 오래 전부터 부석사를 가 보려 하였으나 인연이 닿지 않았는지 가 보지 못하였다. 이번 순례법회를 통하여 가게 되었으니 모든 일은 인연이 되면 저절로 무르익음을 알 수 있다.

 

부석사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천년고찰이다. 유명한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이나 아미타불이 있는 바로 그 절이다. TV로도 여러번 본 바 있는 부석사는 서울과 수도권에서 보았을 때 꽤 오지에 있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뚫리고 교통이 발달해서 금방 도착 할 수 있었지만 그 옛날에는 첩첩산중 깊숙히 자리 잡고 있었던 수행 도량이었을 것이다.

 

 

 

 

조사당가는길에서 내려단 본 부석사와 부석사 앞 전경 

 

 

 

부석사는 아미타도량

 

부석사는 영주에 있다. 영주는 지대가 높아서인지 사과재배단지를 많이 볼 수 있었다. 빨갛게 익은 사과가 가지가 찢어지도록 매달려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일주문 까지 가가전까지 죽 늘어선 노점에는 이 곳에서 나는 사과가 전시되어 있었다. 마침 휴일이라 수 많은 참배객과 관광객이 북적이는 입구에서 보는 사과는 예전에 많이 먹었던 사과의 대명사 처럼 여겨졌던 '홍옥'도 볼 수 있었디다. 매우 새빨간 빛깔에 겉은 반질반질하기 윤기 나는 것이 특징이다. 홍옥은 대체로 신맛이 나기 때문에 단맛이 나는 부사와 같은 외래종 사과에 밀려 소량만 재배 되고 있는 듯 하다.

 

 

 

 

 사과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다.

 

 

 

 

 

 

입구에는 영주에서  생산 되는 사과를 직판 하고 있다. 특히 홍옥은 빛깔이 좋고 먹음직 스러 보였다. 

 

 

 

늦게 출발해서 인지 늦게 도착 하였다. 올라가자 마자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정근은 아미타불 정근을 하였다. 이곳 부석사의 주불이 아미타불이고 아미타도량이어서 일 것이다. 관음도량에 가면 관음정근을, 지장도량에 가면 지장보살정근을 하듯이 사찰의 특성에 맞게끔 정근도 달라 지는 모양이다. 많은 전설과 신화를 간직한 부석사는 꽤 너른 부지에 자리 하고 있었다. 또 국보와 보물급 불교문화재도 많아서 별도의 박물관도 볼 수 있었다.

 

 

  

 

무량수전을 올라가기 전에 보는 안양루.  4번째 관문이라 볼 수 있다. 안양은 극락과 같은 말이다. 이 문을 통하면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바로 그 극락이라는 것이다.

 

 

 

의상대사와 인연이 깊은 부석사

 

부석사는 의상대사와 인연이 깊다. 대표적인 이야기가 선묘낭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무량수전 뒤편에 한칸도 안되는 작은 전각이 있는데 이 곳이 선묘각이다. 이 곳도 많은 사람들이 참배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부석사를 대표 하는 문화재는 무어니 무어니 해도 무량수전과 아미타불일 것이다. 가보지 않은 사람도 교과서나 매스콤을 통해서 알고 있는 바로 그 곳이다. 홍준의 전통문화순례기에 보면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대하여 극찬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너무나 기대가 컷던 탓인가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하다. 중간 부분이 약간 돌출 되어 있기는 하나 있는 듯 없는 듯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이다. 하나를 보아도 예술가나 문학인이 보는 눈은 심미안적인 모양이다. 아마도 그런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 하는 특별한 눈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무량수전. 부석사 본전이다. 정면5칸 측면 3칸으로 규모가 웅장하다. 고려 우왕2년(1376)년에 다시 지어진 이 전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중의 하나이다. 주불인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국보 제18호이다.

 

 

 

 

 

 

유명한 배흘림기둥이다. 가운데가 잘록하게 나온 것이 특징이다.

 

 

 

 

마치 관광명소와 같은 분위기

 

다들 열심히 기도 하고 있지만 시간은 한정 되어 있고 순례기를 작성해야 된다는 생각에 여기 저기 돌아 다니며 사진 촬영을 하였다. 더구나 식사후에는 다른 곳으로 장소를 이동해야 한다기에 여기 저기 돌아 보는 것도 빠듯 하였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기도도 하고 유심히 문화재를 관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으련만 시간이 허락해 주지 않는다. 수 많은 관광객과 사람들로 인하여 도량이 마치 관광지와 유사한 분위기가 들었다. 참배나 기도 하는 사람 보다는 한번 둘러 보는 것과 같은 분위기 인 것이다. 일주문 아래에는 대규모 음식점과 주차장이 있어서 이곳이 관광명소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점심공양도 사찰에서 하지 않고 단지 식당에서 하였다. 워낙 대규모의 인원이라 사찰측에서도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고 더구나 참배객과 관광객이 섞여 있어서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식당에서 먹는 비빔밥은 반찬 종류는 많았지만 사찰에서 먹던 단촐한 공양 보다는 확실히 맛이 떨어졌다.

 

불교전래 2-3세기 만에 불국토가 되었다는 사실

 

부석사는 7세기 창건된 천년이상된 고찰이다. 어느 절과 마찬가지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와 관련 되지 않을 정도로 이 두분 스님 이야기는 많이 나온다. 그런데 부석사야말로 가장 의상스님과 직적적인 관련이 있는 절이라 볼 수 있다. 선묘낭자 이야기나 지팡이를 꽂아서 나무가 되었다는 '선비화' 이야기가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부석사와 같은 천년고찰은 보통 깊은 산중에서 많이 만나게 된다. 어떤 열정이 이런 깊은 산중에까지 이르게 하였을까.

 

 

 

 

 조사당 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선비화.  잎을 따서 먹으면 아들을 낳는 다는 전설 때문에 수난을 당했으나 지금은 철망으로 보호 되고 있다. 신기 한 것은 토방에 심어져 있는데  비도 맞지 않는 곳에서 살아 있다는 것이 매우 신기 하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 된 것은 기록상으로는 372년이 최초이다. 고구려 소수림왕때 이야기 이다. 이후에 급속하에 불교가 퍼졌고 특히 신라의 경우는 이차돈의 순교후에 공인 되었다. 이후에 전국의 유명산에는 사찰이 들어 서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천년 고찰이라 불리우는 대표적인 전통사찰이 불교가 전래 된지 불과 2-3세기 안에 세워 졌음을 알 수 있다. 마치 기독교가 전래 된지 1-2세기 만에 전국방방곡곡에 교회가 들어찬 기세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도시와 사람 사는 곳은 교회가 점령 하였지만 교통과 통신이 지금 보다 훨씬 못한 시대에 불과 2-3세기 안에 전국이 불국토화 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석사 전경과 아래로 보이는 첩첩산중

 

 

 

 

부처님이 모셔진 곳이 바로 불국토

 

순례법회와 사찰순례를 다니다 보면 천년고찰을 많이 보게 된다. 그 것도 심산유곡에 들어차 있는 천년고찰을 보면 우리나라가 과거에는 불국토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탑이나 불상, 전각들은 불교의 열정이 들어간 작품이다. 천년전에도 종교적인 열정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 부처님나라에 가고픈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 하는 것이 불상과 탑과 전각으로 구현 된 것이리라.

 

 

 

 

부량수전에 모셔진 아미타여래부처님. 흙으로 빚어서 만든 불상으로 높이가 2m80이나 되는 큰 불상이다. 고려초기에 조성 되었고 국보 제45호이다.

 

 

 

사찰은 부처님 나라를 표현 한 곳이라 볼 수 있다.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 바로 부처님나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천왕상이 호위 하고 있고 법당에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부석사와 같이 주불이 아미타부처님이면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세계라 볼 수 있다. 잠시나마 고통스런 현실에서 벗어나 극락세계로 온 것이다. 이런 부처님 나라가 방방곡곡에 있다는 것이 바로 과거에 우리나라가 불국토 이었다는 증거 일 것이다.

 

 

 

 

일주문. 소백산이 아니라 태백산 부석사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로 높이가 4m28cm 이다. 부석사 창건 당시인 7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 된다. 보물 제255호.

 

 

 

 

 

천왕문. 이 곳이 일주문에 이어 두번째 관문이라 볼 수 있다.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상.

 

 

 

 

 

 

천왕문을 지나면 3번째 관문인 범종루가 나온다.

 

 

 

 

 

범종루 아래에 있는 3층석탑. 동탑과 서탑 2기가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 된 것으로 추정 된다. 경북유형문화재 제130호.

 

 

 

 

 

보장각. 성보박불관과 같은 곳이다. 이 곳에는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 되어 있다.

 

 

 

 

 

 

지장전

 

 

 

 

 

 

삼성각

 

 

 

 

 

 

무량수전 앞에 있는 석등.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 된다. 국보 제17호이다.

 

 

 

 

 

 

부석사 지명의 유래지인 부석. 떠 있는 바위라는 뜻이다.  

 

 

 

 

 

 

의상대사와의 선묘낭자 간의 설화를 간직한 선묘각. 한평 정도 되는 매우 자그마한 전각이다.

 

 

 

 

 

 

조사당 가는 길에 있는 3층석탑.  높이가 5m나 되는 큰 석탑이다. 통일신라시대 때 조성 되었으며 보물 제249호이다.

 

 

 

 

 

 

무량수전 뒷길로 150미터 정도 올라가면 조사당이 나온다. 무량수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중의 하나이다. 고려 우왕3년(1377)에 지어 졌다고 한다. 이 조사당에서 나온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벽화는 보장각에 보존 되어 있고 국보 제46호이다. 조사당은 국보 제 19호이다.

 

 

 

 

조사당에서 산길을 70미터 정도 가면 응진전과 자인당이나온다.  

 

 

 

 

 

자인당에 모서져 있는 석불. 폐사지에 있던 것을 부석사로 옮겨 놓은 것이다. 보물 제 220호이다.

 

 

 

 

 

 

 부석사 석축길. 이끼낀 바위가 부석사의 역사를 말해 주는 듯 하다.

 

 

 

 

 

돌아 오는 길에 풍기인삼축제에 들렀다.

 

 

 

2008-10-0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