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박원석 김광일 백은종 한용진 김동규 백성균,그들은 '촛불영웅'이다

담마다사 이병욱 2008. 11. 8. 11:38

 

원석 김광일 백은종 한용진 김동규 백성균,그들은 '촛불영웅'이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揭諦揭諦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반야심경의 마지막에 나오는 '주문(呪文)'이다. 요새는 남방불교 영향인지 산스크리트어 반야심경도 많이 유통 되고 있다. 거기에 나오는 주문은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이다. 한자로 읽었을 때와 발음상의 차이는 약간 나지만 전체적인 뉘앙스는 같다. 이와 같이 경전이나 게송의 마지막 부분에 후렴처럼 들어 가는 것이 주문 즉 진언(眞言, 만트라)이다. 그런데 경전에만 주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문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동아일보의 주문(呪文)

 

동아일보를 보고 있다. 아니 모니터링 하고 있다. 사설과 컬럼이 있는 페이지를 유심히 살펴 보면 공통적으로 주문 하는 사항이 있다. 꼭 막바지에 들어 가는 주문은 '전교조' '촛불' '좌파'비판 이다. 마치 반야심경의 마지막 부분인 "아제 아제..." 를 보는 것 같다. 새내기 기자이건 중견기자이건 논설위원이건 컬럼니스트 이건 간에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기자들도 전문분야가 있을 것이다. 의학전문기자, 경제전문기자, 체육전문기자등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주문을 넣는 데도 전문기자가 있는 듯하다. 어떤 기자는 '촛불'까기 전문이 있고 또 어떤기자는 '전교조'까기 전문기자가 있다.  어떤 여성 칼럼니스트는 '좌파'를 주제로 하여 즐겨 글을 올리기도 하고 어떤 386칼럼니스트는 포털같은 '인터넷권력'에 대한 글을 쓰기도 한다. 고참기자나 논설위원들은 이들이 제기한 주제에 대하여 북한과 엮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되면 촛불과 전교조와 좌파는 졸지에 북한의 지령을 받는 빨갱이가 되어 버린다.

 

한 새내기 기자의 글을 보고

 

한새내기 기자의 글을 읽었다. 제목은 '‘잠행농성’ 그만두고 법정서 밝히라 '이다. 사진을 보아도 매우 젊은 기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사진과 이름과 이메일이 모두 공개 되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글에서 광우병대책회 멤버들이 도망다니는 것을 비판하고 그들의 행동이 정당 하였다면 농성도 잠행도 그만 두고 법정에 나와서 떳떳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펴라고 주장 하고 있다. 또한 그는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를 인용 하면서 발생된 손실이 26938억원에 달한다고 정확한 수치까지 제시 한다. 그의 글만 본다면 촛불수배자들은 도망만 다니는 비겁자이고 사회에 엄청난 손실을 안겨준 중범좌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이 글이 나온 다음날 촛불수배자는 검거 되었다. 그리고 법정에 설날만 남았다. 그의 말대로 법정에서 떳떳하게 자신들의 주장을 펼칠 날만 남았다는 것이다.

 

신문은 한번 발행되면 수백만부이다. 거기에 글을 쓰고 자신의 생각을 올린 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라 볼 수 있다. 여론을 주도 할 수 있고 사회의 아젠다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새내기 기자이건 중견기자이건 글을 씀으로서 짜릿한 흥분과 쾌감을 느끼는 것임에 틀림 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신문기자를 무관의 제왕이라고 하였다. 관직만 없을 뿐이지 휘두르는 권력은 3부 못지 않게 막강한 것이다. 인터넷시대가 되면서 많이 약화 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는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들 기자들이 보수신문의 타이틀을 벗어 버리고 인터넷 공간에서 글을 올린다면 그 반응은 어떨까. 소위 계급장 떼고 붙어 보면 어쩌 겠느냐이다.

 

누가 비겁한가

 

보수신문의 광고를 보면 백화점 광고 아니면 건설사 분양광고가 주류를 이룬다. 이들이 신문사의 가장 큰 광고주인것이다. 왜 이들은 보수신문에 광고를 내는 것일까. 바로 보수층이 가장 많이 보기 때문이다. 보수층은 기본적으로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구매력도 크다. 이들이 아파트를 사고 고가 상품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신문에 나는 광고는 돈 많은 보수층을 겨냥 할 수 밖에 없다. 신문사로 보아서도 이들 광고주가 최대의 고객이다. 이들이 장사가 잘 되어야 더 많은 광고수주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사회안정은 필수적이다. 가급적이면 큰 변화가 없어야 한다. 그냥 이대로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촛불이다 전교조다 좌파다 하여 들고 일어서면 좋을 리 없다. 변화를 요구 하기 때문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면 그냥 이대로가 좋은데 자꾸 변화 하자고 하는 것에 대하여 불편 하게 생각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새내기 기자건 중견기자건 글의 말미에 주문처럼 달고 다니는 것이 '촛불' '전교조' '좌파'까기 라는 것이다.

 

뉴스만 전문적으로 하루종일 방송 하는 라디오 채널이 있다. 듣다 보면 의외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신문이 보수층만 대상으로 하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공평하다고 볼 수 있다. 신문과 같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보수층과 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고 국민을 상대로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 일 것이다. 그 라디오 프로에서 '조국교수'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검찰의 행태에 대하여 비판 한 것이다. 왜 검찰은 죽은 권력에 대해서는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 주느냐는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하여 견제하고 잘못을 지적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지금의 검찰은 매우 비겁하다고 말한다. 비겁한 것이 비단 검찰 뿐일까.

 

 

 

 

7.4시국법회에 등장한 촛불소녀 장엄연등

 

 

 

 

조계사농성 9일�의 모습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촛불시위를 보는 눈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변화 없이 그냥 이대로 가기를 바라는 보수층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를 불안과 혼란으로 몰고 가는 매우 불순한 행동으로 보고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층에서는 환호 한다. 인터넷으로도 생중계 된 촛불시위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목격 하였다. 심지어는 외국인과 스님도 보았다고 한다. 그 정도 파급효과가 큰 일대 사건 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동참한 사람만 해도 수백만이다. 심정적으로 응원한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다. 그 시위를 주도 한 사람들이 이제 잡혀서 법정으로 나가게 되었다. 잡힌 사진을 보니 당당 하다. 보수신문이라면 고개숙인 장면을 보여 주었어야 하나 그런 장면을 찍지는 못한 모양이다.

 

어느 시대나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스님들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이다. 모든 것을 소유 하려는 사람들과 반대로 살아 가는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은 두려움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버려야겠다는 마음까지 버렸다면 더이상 말 할 수 나위가 없을 것이다. 촛불수배자들은 조계사에서 농성 하면서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일종의 수행으로 생각 하고 매일 108배도 하고 3000배도 했다는 말도 들었다.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전원이 수계를 받고 법명도 받아서 불자가 되었다고 전한다. 물론 보수신문이 이런 사실을 보도 할 리가 없다.

 

촛불소녀. 촛불집회가 시작 되면서 유행한 말이다. 최초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 바로 어린 소녀 들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앞에 나서야 했다. 그리고 앞에 나선 댓가로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된 것이다. 촛불로 인한 소녀들이 있었다면 촛불로 인한 영웅도 있어야 할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을 대신 가준 사람들에게 '촛불영웅'이라고 불러 주면 어떨까.

 

 

 

2008-11-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