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티벳 스님들의 발원 "거지라도 좋으니 제발..."

담마다사 이병욱 2008. 11. 11. 12:05

 

 

티벳 스님들의 발원 "거지라도 좋으니 제발..."

 

 

 

 

 

신록 6개월, 단풍 1개월

 

산이 벌겋게 타오르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 쯤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전반적인 색조는 붉은 계통이다. 노랑색도 있지만 붉은색 계통이 더 많아 벌겋게 보이는 것이다. 초록색옷에서 울긋불긋한 때때옷으로 갈아 입는 것 같다. 신록에서 벌겋게 되기 까지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신록이 6개월정도 지속 된다면 단풍기간은 불과 1개월 남짓하다. 사람으로 따지자면 70대의 노년기에 해당 될 것이다. 그 마지막 1개월간에 자신의 존재 과시를 하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모든 잎사귀가 다 단풍으로 물들지 않는다. 물들지도 못하고 시든 채로 떨어지는 잎사귀도 허다 하다. 설령 노랗게 벌겋게 물들었다 할지라도 수분이 부족하거나 일조량이 부족 하면 그 선명함이 떨어진다. 멀리서 보았을 때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가까이서 보면 온통 벌레 먹고 구멍이 뚫린 잎사귀 천지이다. 온전하게 곱게 물든 단풍은 보기 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단풍잎은 땅에 떨어짐으로서 잎사귀로서의 생을 마감하게 된다. 조금만 건드려도 떨어지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떨어진다. 심한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그야말로 비 오듯이 우수수 떨어진다.

 

40이상이 되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40이상이 되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까" 이런 말은 젊은 사람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40이 되기 전에 죽어 버리겠다고 말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비단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은 사람들도 과거에는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나이 먹고 늙어 지면 힘도 없고 정열도 없을 뿐만 아니라 모습 또한 추해 보이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로 그런 모습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나이 먹고 늙어 지는 것을 두려워 하는지 모른다. 머리는 허였게 새고 허리는 구부정 하고 피부는 쭈글쭈글 해서 볼품 없는 모습을 보고 젊은이들이 암담하게 생각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젊고 싱싱한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늙고 추한 모습으로 사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한 시대를 사로 잡았던 영화배우들이 늙어 지면 한사코 세상에 얼굴을 들이 내밀지 하려고 하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보는 젊고 싱싱했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늙고 추한 모습을 보면 팬들이 너무나 실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굳이 보여 주기 싫은 것이다. 특히 인기를 머금고 사는 연예인들이 늙어 가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 항상 갈채와 환호속의 엑스터시에서 보내다가 사람들로 부터 잊혀 졌을 때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 과거에 화려 했던 순간과 지금의 형편없이 찌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비교 하면 다 이상 삶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연예인들의 자살이 많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도 있을 것이다. 연예인 못지 않게 마음껏 생을 즐기는 사람들도 마찬 가지이다. 영원한 지금의 상태가 지속 되면 좋으련만 세월은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저 늙은 왜가리처럼

 

사람들 마다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 몸이 아파서 못 나오고 길이 막혀서 늦고 하는 식이다. 따라서 이런사정 저런사정 봐 주다가는 아무 일도 못한 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가장 인정 사정 없는 것이 세월만한 것은 없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 된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부지런한 사람이나 게으름뱅이나 모두에게 에누리 없이 적용 되는 것이 시간이다. 그런 시간과 함께 살다 보면 먹기 싫어도 먹게 되는 것이 나이이다. 그리고 거침 없이 떠밀려 가게 된다. 매 앞에 장사 없듯이 시간 앞에 귀천이 없다. 그 인정 사정 없는 시간에 떠 밀려 가다 남는 것은 늙고 추한 모습 뿐이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아무 한일 없이 늙게 되었을 때를  가장 잘 표현한 구절이 경전에 있다.

 

 

그 젊은 날에

보람  있는 삶을 살지 않았고

인생의 진정한 재물(진리)

얻지 못한 이는

고기 없는 연못가에 서 있는

저 늙은 왜가리처럼 쓸쓸히 죽어간다.(법구경155)

 

 

젊었을 때 허송세월한 사람을 늙은 왜가리에 비유 하고 있다. 그 것도 고기 없는 연못가에서이다. 그리고 쓸쓸히 죽어 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젊었을 때 즐기기만 하다가 아무 것도 해 놓은 것 없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가련한 늙은이의 모습을 왜가리에 비유 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40이상 되면 더 이상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현실에서 이런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회향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절정으로 치닫는 단풍도 떨어지고 말 것이다. 마지막을 벌겋게 물들이며 존재를 과시 하고 있지만 한번 세찬 바람이 불면 우수수 비오듯이 떨어진다. 떨어지는 것이 이번 한번 뿐이었을까 . 매년 피었다가 떨어지곤 해 왔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한번 피었다고 영원히 초록으로 있고 영원히 꽃을 피우고 있지 않는다. 때가 되면 시들고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렇게 자연은 알게 모르게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 주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설법을 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자연만 무상할까. 무상 하기는 인생도 마찬 가지이다. 젊음이 항상 유지 되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지속 되는 것도 아니다. 당장 주변을 살펴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보고 있는 현실이 미래의 모습이다.

 

사람들은 이 젊음이 이 행복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죽어서도 영원히 살기를 바라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런 곳이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천국일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천상개념은 영원하지 않다. 일시적이다. 즐거움만 누리고 복을 짖지 않으면 내려 오게 되어 있다. 지옥도 마찬가지이다. 업이 다하면 지옥도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이 불교의 지옥개념이다. 영원한 천상도 영원한 지옥도 없다. 존재 하는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것이다. 단지 수억겁 동안 3계와 6도를 지은 업에 따라 윤회해 온 것이다. 이 윤회계를 떠나는 것 만이 진정한 행복의 길로 가는 것이라고 말해 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하고 진리를 탐구 하는 것이다

 

진리를 탐구 하는 것은 육체적인 나이와 관계가 없다. 젊은이들이 나이 40이상 되면 의미 없다고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삶에 관한 것이다. 생물학적인 나이를 보았을 때 의미가 없다고 절망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늙은 왜가리와 하등의 다를 바가 없다. 나이들어서도 진리를 추구 하는 것은 아름답다.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회향이라 볼 수 있다.

 

거지라도 좋으니 제발...

 

인생이 원타임이라고 생각 한다면 늙어가는 것이 서글플 것이다. 제대로 해 놓은 것도 없이 나이만 먹고 늙어 가는 것이 의미가 없어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 없는 생을 사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 한다면 늙어 가는 것이 그리 억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번 생에서 못하면 다음 생에서 하면 되기 때문이다. 티벳스님들은 이 다음에 태어나면 인간세계로 태어나기를 발원한다고 한다. 그 정도로 수행하고 공덕을 쌓았으면 당연히 천상에 태어나서 즐겁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으련만 굳이 인간세계로 오겠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세계가 수행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즐거움과 고통을 함께 맛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거지라도 좋으니 제발 인간세계에서 태어날 수 있도록 발원 한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쌓은 공덕을 찾아 먹지 않고 마치 저축 하듯이 쌓아 놓겠다는 것이다. 성불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대 삶의 나무에서 낙엽은 지고 있다.

죽음의 사자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그대는 이제 머나먼 길을 가야 하나니

그러나 아직

길 떠날 준비도 되지 않았구나.(법구경235)

 

그대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서

부지런히 노력하라.

지혜로운 자가 되라.

이 모든 더러움을 저 멀리 날려보내고

번뇌로부터 벗어나라.

그대는 이제 머지않아

저 위대한 나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법구경236)

 

 

 

2008-11-1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