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범죄와 죄의식

담마다사 이병욱 2009. 2. 5. 11:36

 

범죄와 죄의식 

 

 

떼 쓰는 아이에게

 

아이들이 떼를 쓰면 대책이 없다. 어르고 달래고 해야 겨우 진정이 되곤 한다. 좀더 심한 아이들은 드러 눕기도 한다. 모두다 자신의 뜻을 관철 시키기 위해서이다.

 

떼 쓰는 아이들을 위해서 매가 최선일 때도 있다. 엄하게 다스리면 다음 부터 떼 쓰는 빈도가 줄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떼를 쓸 때 마다 매를 든다면 이 또한 구업과 신업을 한 꺼번에 지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이럴 경우 가장 최선의 방법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무조건 하지 말라고 윽박 지르기 전에 먼저 자존심을 세워 주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 준다면 태도는 다르게 되어 있다.

 

완전범죄를 위하여

 

용산철거민 참사가 한 연쇄살인범 사건에 의하여 묻히고 있다. 메스콤에서는 특히 TV뉴스에서는 연쇄살인범 이야기로 도배 하고 있다. 정작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뉴스는 말미에 한 꼭지에 불과 하다. 마침 터진 연쇄살인범 검거 사건이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덮고 있는 형국이라 볼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용산철거민에 대한 수사는 진행 되고 있지만 매우 편파적이란 인상이 지배적이다. 철저 하게 기득권층을 위한 불공정한 조사 라는 것이다. 사람이 죽었는데 경찰은 전혀 책임이 없다는 식이고 정부 또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 한다. 진상규명 이야기만 있었지 억울하게 죽어 간 사람에 대한 일말의 동정 같은 것은 전혀 느낄 수 없다. 죽을 짖을 했으니까 죽었겠지 하는 식이다.

 

사람의 목숨이 질기기도 하지만 때로는 맥없기도 하다. 한번 밀쳤더니 죽어 버렸다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와 같이 급작스런 상황이 발생 하였을 때 두가지 부류가 있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수를 하고 범죄에 대한 댓가를 달게 받는다. 반면에 비양심적인 사람이라면 범행을 숨기기 위하여 암매장한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한 완전범죄를 노리는 것이다.

 

서로 다투다가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는 비일비재 하다. 한 두번 말로 해서 듣지 않으면 신체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참을성이 없는 것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 하였을 때 자신과 생각 대로 따라 오지 않으면 힘에 의존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힘을 잘 못 사용 하여 사람이 죽어 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자신이 주장 하는 바가 옳았다고 할지라도 살인자임에는 틀림 없다. 더구나 완전범죄를 위하여 쥐도 새도 모르게 암매장 해 버렸다면 세상사람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 범죄행위는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있어서 죄의식에 시달릴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그들

 

우발적이든 계획적이든 살인행위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그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치루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국가 공권력에 의한 살인은 정당하다고 주장 하는 부류가 있다. 주로 보수층에서 이다. 여기에 가장 앞장 서는 곳이 신문이다. 보수신문을 보면 그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법과 질서와 원칙은 지켜야 한다고 앵무새 처럼 이야기 한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자사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해관계가 걸여 있지 않다면 매우 비판적으로 나왔을 것이다.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불쌍한 민초들의 죽음 또한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생존이다. 이대로 가다간 신문이 망할 것 같으니 무언가 대안을 생각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문과 방송의 융합이라는 거대한 플랜을 두고서 거기에 촛점을 맞추다 보니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기사를 쏟아 내는 것이다. 전형적인 싸이코패스적인 감정이라 볼 수 있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싸이코패스의 특징이다. 따라서 이들을 내버려 두면 제2의 제3의 범죄가 일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런 싸이코패스적인 모습을 지금의 기득권층에서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에게 일말의 양심의 가책이나 미안함을 찾아 볼 수 없다. 더구나 범행을 은폐 하기 위하여 유족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채 시체를 해부 하는 가 하면 모든 잘못을 철거민에게 떠 넘긴다. 마치 살인범이 완전범죄를 하기 위하여 암매장 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증거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나중에 증거가 나오면 일부 시인하기도 한다. 그런 점으로 보아 국가공권력에 의한 수사는 증거인멸을 위한 완전범죄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파충류 아니면 싸이코패스

 

용산철거민 참사는 우발적인 요소와 계획적인 요소를 모두 포함 하고 있다. 연인끼리 다투다가 밀쳤더니 죽어 버렸다는 식이 우발적인 요소이고, 연쇄살인범 같이 완전범죄를 위하여 매장 한 것 같이 모든 증거를 없애 버리는 것이 계획적인 요소이다. 어쨋든 사람이 죽었다는 데 있어서 살인자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다. 여기에 직접적인 지희계통에 있었던 사람들이 직접적인 살인자이고 그런 환경을 부추긴 사람들 또한 간접살인자들이다. 위로는 대통령 부터 진압한 경찰 들까지 모두 살인자들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보수층에서는 이들에게는 아무 잘 못이 없고 농성을 한 철거민 탓이라고 몰아 세우고 있다.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파충류를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파충류처럼 또는 싸이코패스처럼 냉정 한 것일까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기득권 지키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권리와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 집단은 변화를 싫어 한다. 그냥 이대로가 좋은 것이다. 변화를 요구 하는 집단이 있다면 자신의 파이가 줄어 들기 때문에 매우 단호 하다. 마치 떼 쓰는 어린아이에게 매를 들어서 다스리려고 하는 것과 같다. 또한 자신들에게 비판 하는 것을 용납 하지 못한다. 그래서 법으로 다스리려고 한다. 인신구속을 한다든지 과도한 벌금을 물리는 것이다. 옛날과 달리 인터넷 공간에서 비판이나 비난, 비아냥, 조소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법이 사이버모욕죄법 신설이다. 또한 이해관계를 극대화 하는 것이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재벌이나 언론에게 선물을 안겨주려 하는 것이다. 방송법 개정 같은 것이다. 이들에게 방송을 접수 하게 함으로서 비판적인 언론을 잠재우자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의 입과 귀를 틀어 막아 놓기 위하여 마치 장기판의 졸과 같은 국회의원을 앞장 세워 법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 기득권층의 계획이다. 여기에 저항 하는 세력에게는 본 때를 보여 주기 위하여 진압작전에 나선 것이 용산철거민사태이다. 그것도 농상 하루만에 벌어진 사건이다. 사람들이 6명이나 죽어 나갔는데도 불구 하고 아직까지 공식적인 사과성명 하나 없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연쇄살인범과 같은 파충류 아니면 싸이코패스임에 틀림 없다.

 

 

 

2009-02-05

진흙속의연꽃